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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권력의 슬기로운 조정능력

기자명 법보신문
신 규 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왕의 아들이었던 석가모니는 차세대의 권좌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런 모든 혜택을 버리고 수행자의 삶을 택했다. 이로부터 불교 수행자들은 세속의 가치와는 다른 출세간의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가로서의 삶을 택했고, 그런 정신과 삶의 방식이 불교교단의 구성원들에게 전승됐다.

그런데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부터 상황은 달랐다. 중국에서는 철저히 중앙의 왕권 중심 속에서 불교의 종교행위를 인정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불교와 정부 권력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됐다. 불교가 사상적으로 꽃을 피웠던 당나라만해도 주지의 임명권은 정부의 관료에게 있었다. 중국의 불교는 항상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권력의 단 맛과 쓴 맛을 모두 경험했다. 이러한 정부 권력과 사원 간의 관계는 사원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서로 주지를 맡기 위해 임명권자인 정부 기관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속에서 권력의 무상함과 지위의 실상에 대한 경계의 말씀도 나오게 됐다.

중국불교의 영향을 받았던 한국불교도 양상은 마찬가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물론 일제 강점기에도 당시의 권력기관과 사원의 권력 구조는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조선 총독부의 관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해방이 되고서야 비로소 정교분리의 헌법이 제정돼 원칙적으로는 서로 분리됐다. 그러나 전해 내려오는 관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비구 대처의 싸움으로 알려진 이승만 대통령 당시의 불교정화도 결국은 국가의 권력 행위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주지를 하기 위해서는 권력 있는 자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 원리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 권력의 주체가 국가에서 이제는 불교교단의 내부로 들어왔을 뿐이다. 교단 내의 권력을 갖은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주지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주지를 하려는 승려들은 교단 내부의 권력을 의식하게 됐다. 주지를 하기 위한 노력이 해방 전에는 외부의 권력이었지만, 해방 후에는 교단 내부의 권력으로 바뀐 셈이다.

이렇게 보면 주지로 상징되는 불교교단의 권력을 얻기 위한 승려들의 행동은 예나 제나 변함이 없다. 사람이 모여 사는 데에는 자연 그 속에 권력 구조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요즈음 스님들만 권력을 탐내는 것은 아니다. 스님이 왜 벼슬을 탐하냐고 비난할 것도 못된다. 따라서 주지하는 스님을 비난할 것도, 주지 안하는 스님을 청정 수행승이라 찬양할 것도 없다. 그게 세속이든 산중이건 집단을 모이는 한 거기에는 힘이 모이게 되고, 그 힘의 분배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갈등의 해소방법이다. 내부의 싸움이 밖으로 흘러나오면 결국은 비난의 화살이 전체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외부 사람들은 싸우는 당사자들에게 쉽게 양비론을 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단의 지도자는 집안의 싸움이 외부로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내부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정치적 역량이 있어야 한다.
지도자의 조정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수 년 전에 조계종 서의현 총무원장을 둘러 싼 싸움이 미국 방송에까지 방영될 정도도 심각했던 일을 우리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 후 비상종단체재가 들어서서 사태를 수습하고 서정대 총무원장으로 이어지는 평화의 국면을 보여줬다. 여기에는 두 총무원장 시절 총무부장을 역임했던 명재상이 있었다. 조계사 주지를 둘러 싼 조계종 총무원의 갈등이 세상에 알려지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벼슬을 하려는 그 자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슬기로운 조정능력이 없음을 탓해야 한다. 승려들이 주지 등을 비롯한 권력을 탐한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조정능력의 부족이다. anand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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