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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 ③

기자명 법보신문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도와야 한다

『천수경』 강의를 법보신문에 연재했던 것은 내 나이 약관 삼십대 초반의 일이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없지 않다. 반드시 학문이 연륜과 정비례하는 것이 아닐지 몰라도 내 경우에는 세월이 흐르면서 이해가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 『천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하나의 예가 『천수경』을 『백화도량발원문(白華道場發願文)』과 심도 있게 연결시키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신라의 의상(義相, 625∼702)스님은 『백화도량발원문』이라는 글을 남기고 있다. 우리말로 옮겼을 때 3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짧은 분량인데, 그 일부에 다음과 같은 발원이 있다.
“…제자 역시 관세음보살님을 정대하오니 / 십원육향, 천수천안과 대자대비는 / 관세음보살님과 같아지며 / 몸을 버리는 이 세상과 몸을 얻는 저 세상에서 / 머무는 곳곳마다 /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이 언제나 설법하심을 듣고 교화를 돕겠습니다.…”(졸저, 『해설로 읽는 우리말 법요집』, 민족사) “십원육향, 천수천안과 대자대비”라는 표현에서 이 발원문이 『천수경』적 관음신앙에 입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십원육향은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자득대지혜”를 가리킴.)

그런데, 나는 이 『백화도량발원문』을 처음 읽으면서 놀라움으로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관세음보살이 우리를 돕는다”가 아니라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돕는다”는 생각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종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관음신앙에 대한 문법을 깨뜨려 놓기에 충분한 것이 아닌가. 실제,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의하면, 무슨 소원이든지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일심으로 일컫는다면 모든 원이 다 이루어진다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관세음보살을 돕는다니…. 가히 혁명의 선언이 아닐 수 없었다.

자비행이 관음보살 돕는 일

여기서 우리는 선재동자가 관세음보살을 찾아가서 나눈 『화엄경』 입법계품의 대화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보살행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묻는 선재에게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실천하라”고 대답하시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바로 관세음보살 자신의 일인 것이다. 따라서 자비를 실천한다는 것은 곧 관세음보살의 일을 도와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님은 어찌하여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중생들로부터 오는 SOS(구조요청)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며, 일손이 부족한 까닭에서이다. 생각해 보라. 관세음보살님은 얼마나 힘드실까! 그래서, 이제 “십원육향, 천수천안과 대자대비는 관세음보살님과 같아지기”를, 즉 관세음보살이 되고자 발원하는 천수행자들은 관세음보살님을 도와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비실천이야말로 바로 『화엄경』에서 말하는 보현행원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관음행원이 곧 보현행원이다.

관음행원이 곧 보현행원

이러한 까닭에 화엄종의 창시자인 의상스님이 보기에 『천수경』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천수경이야기』(1992) 출판 이후, 다시 『천수경』을 강의하는 기회들이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먼저 이 『백화도량발원문』의 의미부터 해석해왔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관음신앙을 한 단계 성숙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근래 나는 『백화도량발원문』을 지은 의상스님과 거기에 주해를 덧붙여 『백화도량발원문약해』를 저술한 체원(體元, 14세기)스님 이후에 정확히 관음신앙을 그와같이 이해하고 계신 선지식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광덕(光德) 스님이셨다. 그 분은 지금 여기서 말하는 바와 정확히 같은 의미에서 『천수경』의 관음행원과 『화엄경』의 보현행원을 일음(一音)으로 파악하고 계셨다. 「천수경 이해를 통해서 본 광덕의 회통불교」(『종교연구』29집, 2002)라는 내 논문은 그런 만남의 즐거움을 토로한 내 신앙고백이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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