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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스리랑카

기자명 법보신문

향신료와 스투파의 땅

스리랑카의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사건은 의심할 여지없이 기원전 3세기에 아쇼카 대왕의 아들이었던 마헨드라 왕자에 의해 불교가 도입된 것이다.

마우리아 왕조를 계승하기 위해 자신의 라이벌들을 가차없이 제거했던 무자비한 폭군 아쇼카 왕은 칼링가를 정복하기 위해 많은 유혈의 전투를 치른 후 후회에 사로잡혔다. 그는 전쟁이 덧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불교를 받아들이고 정복, 번영, 위엄 대신에 관대함, 올바름, 불교의 법을 강조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선언했다. 또 그는 그의 아들 마헨드라 왕자(팔리 언어로는 마힌다)와 딸 산가미트라 (팔리 언어로는 산가미타) 공주를 불교의 교리를 전파하는 임무를 주어 스리랑카로 보낸다.

스리랑카를 방문했을 때 나의 첫 목적지는 기원 전 457년과 기원 후 1017년 사이에 불교를 믿던 왕과 힌두교를 믿던 왕 250여명을 배출해 냈으며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꼽히는 성스러운 도시 아누라다프라였다.

도시 아누라다는 남아시아에서 불교의 중심지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남인도의 촐라 왕조의 침입 때문에 황폐화 된 후 이 곳은 수세기 동안 깊은 정글 속에 숨어있었다. 다행히도 이제는 이 곳의 멋진 왕궁들과 수도원들을 모두 방문할 수 있다.
나는 어젯밤 악몽 같았던 5시간의 비행 후 아누라다프라의 팜 가든 빌리지 호텔에 도착했다.

도착한 그 날은 보름달이 뜬 날이어서 불교력에 비추어보면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몇몇 공작새들이 화려한 깃털을 보여주며 나를 환영해주었다. 꿀맛 같은 시원한 샤워를 즐긴 후 2500여 년 전 싯다르다 왕자가 깨달음을 얻었던 보리수가 있는 스리 마하 보디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종교가 잔인한 희생이나 의미 없는 의식만 강조하던 시절 부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 속 비어있던 곳을 채워주시기 위해 새로운 철학을 가지고 오셨다. 어두움이 깔리더니 네 개의 하얀색 스투파와 그 주변을 둘러싼 금빛 논들 위로 찬란한 달빛이 비춘다.

나는 나무 근처에 마련된 단에 앉아 순례자들이 공양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문득 수많은 은과 보석들로 장식된 9층 석탑과 화려하게 장신된 신할라(스리랑카의 주요 민족) 귀족들의 대저택, 외국에서 온 부유한 상인들이 지은 멋진 저택, 달빛과 같이 반짝이던 궁전들 이 있었던 2000여 년 전의 이곳을 상상해보았다.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을까! 나는 아쇼카 대왕의 칙령에 명시되어 있었던 인류애의 정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 철학적 산책은 비어있던 장에서 나는 꼬르륵 거리는 소리 때문에 갑작스레 방해를 받았다. 부처님께서 7일 밤과 낮으로 명상을 하시며 금식을 하시던 보리수 나무 아래서 배고픔을 느꼈다는 것에 수치심을 떠나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멀리서 풍겨오는 커리 향의 유혹은 물리치기에 너무 힘들었다. 낡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호텔 식당으로 가니 매운 삼발 (코코넛을 간 즙에 고추와 향신료를 넣고 버무린 음식)과 어마어마한 양의 야채 커리 (감자, 콩, 호박, 질경이, 바나나 꽃이 재료로 들어간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커리는 매우 매워 고추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커피는 한 때 실론 섬 경제의 주춧돌이었지만 내가 맛있는 커리 후에 마신 커피는 두유를 덥힌 것만 같은 괴상한 맛이었다.

하여간 나의 식사시간은 끝났다. 이제 푹 자고 내 불심을 깊게 할 다른 여정을 계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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