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으로 얻은 자비[br]평생 베풀며 살고파
수행으로 얻은 자비[br]평생 베풀며 살고파
  • 채한기
  • 승인 2004.08.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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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위파사나 수행 이 선 향 법사



서울 안국동 위파사나 선원의 이선향 지도법사(47세)는 일주일에 3번 선원에 나와 일반인들을 지도하고 있다. 1999년 위파사나 수행에 입문한 이 법사의 수행경력은 비록 짧지만 지금은 언제 어느 장소에서든지 선정에 들 수 있을 정도로 그 수행의 깊이가 깊다.

1999년 당시 능인선원에서 위파사나 강의를 하던 김열권 법사와의 만남이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경전 공부에 여념에 없던 이 법사는 “위파사나 강의를 듣는 순간 수행에 매진하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이후 지난 5년여 동안 모곡 사야도, 아짠 담마다로, 파욱 사야도의 수행법을 거쳐 염불위파사나까지 섭렵한 상태다.

수행중 허무감 밀려와

여느 수행법보다도 염불과 위파사나의 장단점을 살려 수행하는 ‘염불위파사나’의 효험(?)이 궁금해 단도직입적으로 “염불위파사나로도 삼매에 들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 법사는 ‘미소’로 답했다. 주부이기도 한 이 법사는 일상에서 어떻게 수행했을까? 더욱 궁금했던 것은 수행의 단계를 거치며 체험한 현상이 무엇이었는지였다.

<사진설명>1999년 김열권 법사와의 인연으로 위파사나 수행을 시작한 이선향법사는 모곡 사야도, 파욱 사야도 등의 수행을 섭렵했다. 언제 어디서든'선정'에 들 정도로 수행이 무르익은 이 법사는 서울 위파사나 선원에서 재가수행자를 지도하고 있다.

이 법사는 밥먹을 때나, 대화할 때나 잠에 들기 전이나 ‘붓도’염송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대화할 때 ‘붓도’를 염송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어느 순간엔 붓도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았고 이후에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도 ‘붓도’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고 한다. ‘붓도’를 염송하며 소리를 관찰하다 보니 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기이하게도 소리는 소리대로, 아는 마음은 아는 마음대로 따로따로 구분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관찰이 더욱 예리해질수록 점점 더 분명하게 소리와 아는 마음이 따로 구분되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여기서 더 정진하자 ‘붓도’가 일어나는 원인과 결과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오온의 무상과 고(苦), 무아가 느껴지더니 곧 사라지고 다시 느껴지고가 반복됐다. 이러한 생멸현상이 빨라지면서 현상이 일어났던 자리에서 바로 사라지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법사의 정진은 계속됐다. ‘붓도’라는 소리도 의도에 의해 나오는 것이라는 원인과 결과를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인과의 끊임없는 일어남과 사라짐이 ‘붓도’소리의 실체임이 인식되어지면서 울컥 무상감이 일어났다. 뒤이어 허무감이 세차게 밀려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도 ‘붓도’염송은 여전히 이어졌다.

나아가서는 울고 싶은 감정이 사라지고, 고통스러움도 사라지고, 무상감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붓도’만이 낮게 가라앉아 이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종국에는 내 마음, 내 몸뚱이, 내 것 등 나라고 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절감했습니다. 그 순간 허무감이나 무상감 보다도 더 강한 무엇인가가 와락 덮쳐왔습니다. 슬픔보다 강렬하고 허무감보다 더 진하고 무상감 보다 더 공허한... 개체의 소멸이라고나 할는지...아무튼 그러한 느낌이 한동안 일어났다 사라졌다 되풀이 됐습니다.”

이윽고 이 법사는 그것이 바로 ‘무아’임을 알아차렸다. 순간 모든 느낌들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이 와중에도 ‘붓도’ 염송은 이어지고 있었다. 더 정진하자 어느새 염송 소리는 멈춰지고 가슴에서 ‘붓도’가 전광석화처럼 저절로 일어났다 사라졌다. ‘붓도’는 빙빙 돌아가듯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일어났다 사라졌고, 한동안 그렇게 반복되다가 급기야는 너무나 빨라져서 ‘붓도’의 일어남을 채 보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그 뒤로는 사라짐만 연속적으로 사라라지고, 사라지고를 거듭했다.

사라짐의 속도가 더 이상 빠를 수 없을 만큼 빨라졌음을 느끼는 순간, 너무도 빨라서 마치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딱 끊겨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붓도’도 끊겼다. 돌연, 몸도 마음도 ‘붓도’도 그 무엇도 없는 일어남도 사라짐도 없는 그런 무엇이 불쑥 나타났다. 잠시 후 지극히 고요하고 고요한 평안으로 들어갔다.

‘붓도’마저 끊겨야 평안해져

단순한 적적이나 무아공이 아닌 진정한 삼매의 경지에 들어선 것일까!
수행하기 이전의 이 법사는 건강이 좋지 않아 신경질적이고 매사 부정적이고 허무적이었다고 한다.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날마다 반복되었고, 오만가지 번뇌로 인해 항상 초조하고 불만족스러웠다.

“학력이나 외모, 재력 등에 언제나 열등감이 앞섰습니다. 열등감을 지우기 위해 욕심이 산더미처럼 쌓여 스스로 마음에 상처를 내곤 했습니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화가 들끓었고 화를 낼 수 없는 상황일 때는 토라져서 자신을 책망하고 타인을 원망했습니다.“
이러한 성격은 우울증 환자로까지 몰아가기도 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다. 큰 병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조금만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소화가 안되고 온몸이 아픈 것은 물론 불면증에 시달리곤 했다.

매일 아침 죽고 싶은 심정

“삶 자체가 힘들고 짜증스럽고 지리멸렬하게 느껴졌습니다. 허무감에 사로잡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죽고 싶은 마음이 일고 무기력해져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겹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하면서부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힘이 생겨나고, 몸에서 일어나는 세포들의 생멸을 보게 되면서부터는 모든 인간사가 외부의 상황을 조건으로 삼아 자기 내면의 마음, 업, 환경의 부딪힘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임 확실하게 알게 됐다.

“이 몸이라는 것이 업과 마음과 물질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고 나니, 몸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고 건강에 대한 우려 같은 막연하면서도 강한 불안감과 열등감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욕망이나 성냄이 일어날 때도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무의식의 흐름까지를 보게 되니 자연적으로 욕망, 성냄, 허무감, 죽고 싶은 마음 등등의 원인이 보였고, 그런 감정들이 일어남과 동시에 알아차림으로써 과거의 나쁜 기억이나 습관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외부상황에 반응하려는 마음을 미리 알아차리게 되자, 매 순간 그 상황에서의 상대방의 심리가 가슴에 와 닿아 이해하게 되고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인간관계가 아주 원만하게 유지됐다고 한다. 이전의 이선향 법사의 아닌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자비와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이 법사는 수행의 정진을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수행전의 인생 부끄러워

“저는 이제 제 자신을 좀 보고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릴 뿐입니다. 분명 예전에 비해 지금의 제가 좀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와 지혜를 발하고 얻기에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이전에 만났던 수행자들과는 달리 위파사나 수행을 한 이선향 법사이기에 원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수행이란 무엇입니까?”

“이전에는 수행이라면 왠지 까다롭고, 또 대단한 끈기를 지닌 특정인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실제로 해 보니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며 다듬듯이, 수행 또한 거울 보듯 몸과 마음을 스스로 비춰 보며 ‘알아차림’을 이어가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선향 법사가 걷는 지금의 한걸음 한걸음에 의미가 있는 것은 분명 깨달음을 향한 걸음 때문만은 아닌듯 하다. 지금 걷고 있는 순간 자신을 변화시키며 만물에 자비를 베풀려는 그 마음이 생생히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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