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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 ④

기자명 법보신문

다라니는 번뇌 없애는 ‘의미 없는’ 도구

하나의 책이 마땅히 존재해야 할 이유는 다른 책들에는 없는 그 나름의 새로움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이런 기준을 나의 『천수경이야기』에 적용시켜 본다면, 무엇보다도 다라니의 의미를 번역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이러한 다라니는 얼른 들어서 그 뜻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그 의미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되고, 또 알고자 한다. 다라니를 다시 산스크리트로 복원한 뒤, 그로부터 그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을 학자들은 앞다투어 취해왔다. 나 역시 정식으로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과 함께 현재 전하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이본(異本)들에 대한 언어적 해석을 탐구해 본 바 있다. 그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것은 다른 학자들이 상세한 연구를 발표하고 있다는 데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게는 그러한 의미 찾기가 애시당초 문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양의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의미를 묻지 말고 용법을 물어라”고 말했다. 그렇다. 정히, 나의 관심은 다라니 속에 담겨진 의미에 있지 않고 다라니가 도대체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나의 견해는 사실 『천수경이야기』에 이미 제시되어 있다. 물론, 의미를 찾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좀더 보완된 논의가 필요함을 느꼈다. 「밀교 다라니의 기능에 대한 고찰」(『인도철학』 제6집)이라는 논문은 그런 의미에서 쓰여진 것이다. 그 논지를 간단히 이야기해 보자.

의미는 번뇌 타파 걸림돌

인도에서 최초로 다라니가 성립되었을 당시에는 의미가 있는 부분도 있었고, 의미가 없는 부분도 있었다. 의미가 있는 부분 역시 그렇게 의미가 파악된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모국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면, 우리는 다라니를 번역함과 동시에 원문을 지우고 번역된 의미만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본다. 그런데, 그래도 좋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한다면, 불교 안에는 밀교(密敎)는 사라지고 현교(顯敎)만 남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현실에 반대한다. 밀교의 존재에는 그 나름의 다른 이유와 기능과 용법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다라니는 번뇌의 타파를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을 한다. 다라니의 수지독송을 통하여 우리는 번뇌를 타파하고 성불할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 다라니 속에 담겨진 애시당초의 의미가 무엇인지 하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아니, 그렇게만 말해서는 불충분하다. 오히려 그 의미를 탈락시키는 작업이 필요해진다. 이를 통찰한 분이 있었다. “다라니는 번역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현장 스님을 비롯한 역경가들이었다. 소리로만 음사(音寫)함으로써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의미는 번뇌의 타파를 위해서는 장애일 뿐이다. 번뇌는 의미를 갖고 있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언어라는 불을 끄는 데 또 다른 언어를 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이 되려면 의미가 없어야 한다. 의미 없는 것만이 의미의 연쇄로서의 번뇌의 불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묘장구대다라니가 곧 화두

의미 없는 다라니를 외움으로써 번뇌를 타파하는 기능을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다라니는 선에서 화두가 하는 기능을 정확히 담당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선과 밀교가 하나가 될 수 있으며, 함께 닦을 수 있는 이유이다. 이러한 나의 해석은 밀교에 대한 선적 해석에 다름 아니다. 「밀교 다라니의 기능에 대한 고찰」은 「선종에서 대비주를 외우는 이유」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더욱 새롭게 수정, 보완되어서 일본의 하나조노(花園)대학 선학연구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일본 학자들 역시 선과 밀교, 화두와 다라니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임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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