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율, 생명의 화두를 들다

기자명 법보신문

대자연의 생명이 끊어지고 난 뒤에
평화와 깨달음이 무슨 소용 있으랴

오늘 날씨는 정말이지 너무 덥다. 그런 더위를 피하고자 나는 지금 방안에서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시원한 자연 바람을 쐬며 앉아 있다. 산 속 다실에서 시원한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며 저 숲을 응시하고 있자니 어느덧 더위는 물러가고 시원한 마음과 함께 저 자연과 하나되는 듯 평온과 고요가 차분히 내 마음을 적셔 준다. 더위도 자연과 공명하는 내 마음을 휘두르지는 못한다.

이런 더위뿐 아니더라도, 혹간 복잡하거나 잘 안 풀리는 일이 있거나,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자연을 찾는다. 숲 속으로 들어가 온갖 풀과 나무며 한 줄기 바람과 함께 하곤 한다. 때때로 다실 문을 활짝 열고 차 한 잔을 마시며 대자연을 호흡한다. 그러면 아무리 복잡하고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더라도 내 마음은 곧 평온을 찾는다. 이런 듯 자연은 내게 큰 위안이고 스승이며 참 좋은 도반이다.

그런데 요 몇 일 동안은 이러한 자연과 하나되는 명상의 즐거움이 그 빛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내내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고 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이 어언 30일을 넘어서고 있다는 소식. 그 소식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이 더운날 더위 좀 식혀 보겠다고 선풍기를 켜 놓고 다실에 앉아 자연을 응시하며 평화를 찾는다는 것이 사치인 것처럼 느껴지고, 수행자의 오롯한 길에 직무유기를 하는 것처럼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명상적인 모든 것들 그리고 법신의 숨결은 자연이 있는 그대로의 본래 모습을 하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자연이 파괴되고 나면, 생명이 사라지고 나면 평화가 깨달음이 무슨 소용인가. 어떤 수행자는 그 소중한 한 생명을 위해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데, 또 다른 한 수행자는 그나마 훼손되지 않은 남아있는 자연 속을 걸으며 평화를 찾고 자연과 하나됨을 노래하고 있다. 나는 지금 내 안의 풀리지 않는 화두를 들 듯 내 안에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지율 스님은 왜 저렇게 생사를 넘나드는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가. 그 이유는 오로지 대자연의 모든 생명을 위해서다. 이런 저런 너저분한 이유가 붙지 않는다. 사사로운 마음이나 명예나 정치적인 것들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다만 한 수행자의 자비와 생명에 대한 명징한 정신 바로 그것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그대로 나의 생명이며 우리 모두의 생명이다. 내 목숨이 중요한 만큼, 인간의 생명이 중요한 만큼 똑같은 크기로 자연의 생명은 소중하다. 법신(法身) 비로자나 부처님이라는 것, 법계(法界)라는 것이 바로 대자연의 생명을 그대로 부처님으로, 불성으로 바로 알았던 불가의 자연에 대한 이해가 아닌가.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그대로 내 생명이 파괴되는 것이며, 법신 부처님의 몸이 파괴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이 땅에서는 온갖 종류의 파괴가 개발과 발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가차없이 행해지고 있다. 왜 그러한가. 무명(無明)때문이다. 정치인도 경제인도 이 사회를 움직이는 모든 기득권층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개발과 발전을 바라는 모든 이들이 근본적인 생명의 정신에 어둡기 때문이다.

지율 스님이 저 뙤약볕 아래 단식하며 앉아 있는 것은 단지 천성산을 살려야 한다는 그런 단편적인 요구가 아니라고 본다. 이 세상을 향해 참된 지혜를, 참된 깨달음을 주문하는 것이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대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생명을 죽여가며 인간의 편리를 도모코자 하는 그간의 삐뚤어진 역사와 이 세상의 모든 어리석은 이들에게 인류 구원의 화두를 온몸으로 온 생명으로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법상 스님 buda1109@korea.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