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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 ⑥

기자명 법보신문

다라니 본질은 자비·평등심 같은 ‘마음’

사실 나는 분류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분류 매니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잊어서 안 되는 것은 어떤 것의 성격을 규정하고, 다른 것과 차별하는 것에는 위험도 따른다는 점이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키지 않고서는 분류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러한 단순화에는 잃어버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신수대장경 속에서 ‘원본 『천수경』’을 찾아보면, 그것은 밀교부 속에 분류되어 있다. 그 중심에 다라니가 존재하므로 밀교부에 분류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가피한 면이 인정된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러한 분류는 ‘원본 『천수경』’의 가르침을 밀교적인 것으로만 제한해서 이해토록 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천수경』에 대한 빼어난 해석을 남긴 분들 중에 이러한 분류에 현혹된 어른은 한 분도 안 계신다.

『천수경』에 대한 나의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것을 선적(禪的)인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다라니는 의미 없는 언어로서 선의 화두와 같이, 번뇌타파를 위한 도구의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은 이야기했다. 바로 이러한 입장은 “원본 『천수경』”은 그 자체에서 이미 말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원본 『천수경』’의 내적인 구조를 분류해 보자면, 둘로 나눌 수 있음 역시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애시당초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를 ‘고본 『천수경』’이라 부른다)과 그 이후에 부가된 부분이 그것이다. 전자에서 이미 다라니의 제시와 그 독송의 강조가 설해지고 있으므로, 새삼스러이 부가 부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부가부분이 덧보태어져 있다. 앞의 ‘고본 『천수경』’에 대한 해석이 필요했기 때문은 아닐까.

다라니는 번뇌타파 도구

이러한 부가부분에서 우리는 다라니에 대한 선적인 해석이 행해져 있음을 보고 놀라게 된다. 대범천왕이 관세음보살에게 “이 다라니의 형모상상(形貌狀相)을 설해달라”고 청한다. ‘형모상상’은 무슨 의미인가? 일본학자 노구찌 젠교(野口善敬)는 “다라니의 자형(姿形)”이라고 했는데, 내가 좀더 부연해서 이해해 보자면 “다라니〔의 내용이 나타내고 있는 마음의〕자형/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문자 그대로 ‘형모상상’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외형적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노구찌는 모습의 의미를 갖는 한자어 ‘자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대범천왕이 관세음보살에게 “이 다라니의 모습을 설해달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문장을 나는 그 문자적인 의미에서와는 달리, 다라니의 겉모습이 아니라 다라니의 속 모습을 묻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다라니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九心’ 얻는 게 다라니 목적

이러한 나의 이해는 관세음보살이 행하신 대답에서 시사점을 얻은 것이다. 관세음보살이 제시하는 대답은 아홉 가지 마음〔九心〕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자비로운 마음이 이것이며, 평등한 마음이 이것이고, 함이 없는 마음이 이것이고….”라고 말이다. 자, 관세음보살 스스로 다라니의 본질/생명은 문자적인 의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비심, 평등심, 무위심… 등의 마음임을 명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독송을 통해서 얻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마음인 것이지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게 된다. 그런 점에서 다라니의 독송이 갖는 선적인 의미를 “원본 『천수경』” 스스로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차원 높은 차원을 갖고 있는 “원본 『천수경』”을 종래에는 주술적인 것들로 휩싸여 있는 잡밀(雜密)로 분류해 왔다. 그래서 순수한 밀교인 순밀(純密)보다 못한 것으로…. 잘못된 분류가 그렇게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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