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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과 녹차 한 잔

기자명 법보신문

에어컨 온도도 타인에 대한 조언도
지나친 것은 오히려 부족함만 못해

말복(末伏)이 지났는데도 아직 여름 더위가 한창이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 날씨가 계속 되다 보니 큰 건물 어디에도 에어컨으로 냉방을 하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다.

몇일 전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찾으려 미술학과 도서관에 가게 되었다. 어렵게 찾은 자료가 하필이면 도서관 밖으로 대출이 되지 않아 꼼짝 없이 도서관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도서관이 다른 도서관들에 비해 유달리 춥다는 것이다. 에어컨을 얼마나 강하게 트는지 긴 소매 옷을 입지 않으면 추워서 공부가 잘 안되는 곳이다. 결국 나는 도서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에어컨 바람이 가장 적게 부는 곳을 한 동안 찾아 나섰다.

그나마 조금 덜 춥다고 느끼는 곳에다 공부를 하려 책을 내려놓고 앉아 있으니 나도 모르게 이 무슨 한심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편하자고 틀어놓은 에어컨이 사람을 오히려 힘들게 하니 말이다. 더위를 식히는 정도로만 틀어놓으면 될 것을 가지고 뼈 속이 시리도록 차갑게 틀어 놓아야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데 같은 날 나는 이와 상반되는 경험을 또 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나와 목이 말라 학생 식당에 가서 녹차를 한잔 주문하게 되었다.

식당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종업원은 나에게 “녹차를 우려내는 물이 무척 뜨거우니 얼음 몇 조각을 뜨거운 물 위에다 띄워도 괜찮겠습니까?” 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그 종업원의 세심한 배려로 마시기 적당한 온도의 따스한 녹차를 편안하게 맛 볼 수가 있었다.

녹차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그 종업원을 생각하니 참 고맙다라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사찰에서 일어나는 이와 비슷한 경험들이 떠올랐다.

절에서 소임을 보니 아무래도 일요법회 때 여러 스님들의 법문을 듣게 되는데 그 중 어떤 스님은 법문을 보통 스님들 보다 아주 길게 하신다.

아무리 다음 행사가 있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법문을 끝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간곡히 말씀 드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와 반대로 어떤 스님은 법문 청탁을 드리면 그 사찰만의 특별한 상황과 분위기를 먼저 섬세하게 점검하신 후에 법문을 해 주신다. 그러다 보니 법문 내용 역시 신도님들에게 딱 필요한 말씀을 하시게 되고 법문을 듣고 나면 전 신도가 단합이 되는 느낌도 받는다.

법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하는 조언 역시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너무 지나치면 찬 에어컨 바람처럼 오히려 해가 되는 것 같다.

아이들 키우시는 부모님들께서 종종 아이들이 말을 안들어서 힘들다고 하시는데, 먼저 부모님 스스로가 아이들에게 조언을 할 때 찬 에어컨 바람처럼 하시는지 아니면 적당한 온도의 따스한 녹차처럼 하시는지 그것부터 우선 점검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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