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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카메라 대신 마음 하나를 찾았습니다”

기자명 탁효정

사진작가서 티베트 승려된 니콜라스 스님

뉴욕 티베트센터 소장인 니콜라스 브릴랜드 스님이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인 불자들에게는 스님의 이름이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스님은 한국에서만 수십만부가 팔린 『달라이라마의 마음공부(An Open Heart)』의 저자로 소개된 바 있다. 대전 자광사 영어법회에서 법문을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스님은 티베트 수행법인 ‘분석적 명상법: 자비수행’을 소개했다.

이 수행법은 스님의 은사인 라토 린포체가 항상 강조한 수행법이며 달라이라마가 『마음공부』에서 소개한 수행법이기 하다. 이 자비수행이란 우리가 생각이나 마음을 쓸 때 우리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결론에 도달하는 수행방법이다.

‘자비수행’을 세계로 펼치는 스님. 그러나 출가 전 촉망받던 사진작가 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드라마틱한 스님의 여정이 현대인들에게 강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1979년 유망한 패션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한 미국인 청년이 다람살라를 방문했다. 당시 다람살라의 어떤 누구도 그가 후에 미국에 티베트 불교를 알리는 대표적인 스님이 될 줄은 몰랐다. 세계 종교 지도자들의 초상이 담길 사진집을 제작하고 있던 그 청년은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힌두교의 지도자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달라이라마였다.

촉망받던 패션 사진작가

그는 당시로는 아주 귀했던 구형 사진기를 소지한 덕분에 다람살라 수행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으며 달라이라마의 면전에서 생생한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게다가 여러 티베트 고승들까지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연일 신이 나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그에게 청천벽력할 일이 생긴 것은 그로부터 두어달 후. 어느날 카메라가 통째로 없어져버린 것이다. 다람살라를 샅샅이 뒤져봐도 이미 주인의 손을 떠난 카메라는 돌아올 줄 몰랐다. 어쩌면 그 카메라는 이미 수일전에 인도 땅을 떠나버린 것일지도.

결국 카메라 찾기를 포기한 그가 달라이라마에게 “나중에 돌아와 다람살라의 티베트 사람들을 찍겠다”고 하자 달라이라마는 그 청년에게 나지막히 이야기했다.
<사진설명>1979년 청년 니콜라스 브릴랜드가 다람살라를 방문했을 당시 찍었던 달라이라마 사진은 후일『친절, 투명함, 통찰력』의 책표지를 장식하기로 했다

“사진기를 잃어버렸으니 이제 당신 마음을 찾는게 어떻겠습니까. 티베트 불교를 공부해서 뉴욕에서 아주 좋은 스승이 되십시오. 그것이 당신을 위한 최고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 청년이 후일 뉴욕 센트럴파크의 달라이라마 초청강연회를 주최하고 미국 내에 불교를 전파하는 사령관으로 활동하게 될 운명인 것을 달라이라마는 이미 알았던 것일까.

결국 그 청년은 6년 뒤 달라이라마로부터 직접 계를 받고 티베트 승가의 일원이 되었다.
“제가 티베트 승려가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제 삶의 모퉁이마다 티베트의 스승들이 나타나 나침반이 되어주었으니까요. 어느날 다람살라를 헤메고 있는 저에게 그들은 잃어버린 카메라 대신 내 마음을 찾는 수행자가 되도록 인도했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니콜라스 브릴랜드. 미국 최상류사회의 일원이었던 한 청년이 티베트와 미국을 잇게 된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미국인들이 니콜라스 브릴랜드 스님을 소개할 때는 아직도 뉴욕 브릴랜드 가문 사람이라는 호칭이 따른다. 브릴랜드 가문은 450년전 뉴욕에 뿌리내린 독일 출신의 명문 집안으로 그의 할머니는 미국 패션계의 전설이자 「보그(Vogue)」지의 편집장을 지냈던 다이아나 브릴랜드이며, 그의 형은 현재 세계 최고 의류회사로 꼽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eorgio Armani)’ 대표를 맡고 있는 알렉산더 브릴랜드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외교관으로, 니콜라스 브랠랜드 스님의 출생지가 제네바인 것은 이 때문이다.

로마 주재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자 인도 주재 미국 대사로 활동중인 친구에게 아들 니콜라스의 대부가 되어주길 부탁했다. 대부를 만나기 위해 1970년 시킴의 수도 강톡을 방문한 그는 한 사원에서 티베트 스님들을 처음 만났다. 그의 대부는 이들을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패션계의 유망한 사진작가로 성장하는 동안에도 붉은색 승복의 수행자들은 항상 니콜라스 브릴랜드 청년의 마음 속에 화두처럼 남아있었다. 대학과정을 밟고 잡지 일을 하는 도중에도 티베트 스님들과의 우연같은 인연은 계속 이어졌고 1977년에는 뉴욕에서 그의 은사가 된 경라 라토 린포체를 만났다. 당시 라토 린포체는 지금은 스님이 이끌고 있는 티베트 센터를 맡고 있었다.

달라이라마 조언에 출가

니콜라스 스님이 만난 라토 린포체는 너무도 인간적인 그리고 아주 단순한 진리를 설법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사진작가였던 그가 다람살라의 달라이라마를 찍기 위해 인도로 간 것도 라마의 뚤꾸(큰 스승)였던 라토 린포체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다람살라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린지 6년째 되던 1984년 니콜라스 브릴랜드 청년은 다시 다람살라로 돌아갔다. 달라이라마를 다시 만나 계를 받은 그 청년은 그 길로 라토 사원에 들어가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는 스님이 되었다.

라토 사원에서 5년간 수학하고 난 후 그는 뉴욕으로 돌아와 스승의 뒤를 이어 티베트 센터의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1998년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와 함께 달라이라마를 뉴욕에 초청, 뉴욕 센트럴파크의 법회를 성황리에 끝냈다. 지금은 티베트 센터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공부한 남인도의 티베트 수행처 라토 사원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라토 사원은 티베트 수행자 350여명과 함께 티베트 난민들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 때 스님은 이들의 지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할머니 다이아나 브릴랜드의 도움을 받아 미국 시장에서 티베트 전통 의류와 인테리어 용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티베트 불교 세계에 전파

스님 자신에게 수행자의 길을 걷게 해준 티베트 스승들, 그리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티베트인들을 위해 스님이 할 수 있는 바를 실천해가는 것 또한 라토 린포체가 스님에게 가르쳐준 ‘자비 수행’의 실천이다.

“우리는 친구와 적, 평범한 사람들과 곤충들까지 살펴보면서 우리가 아는 모든 욕계를 들어가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계에 존재하는 중생들을 생각해보면 나와 마찬가지로 모두 행복을 바라되 고통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일체 중생에 대하여 동등한 태도를 확립해나가야겠습니다. 내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에게 미운 놈이 잘되는 것도 바라야 합니다. 보살은 이러한 대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남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가 일체중생을 위하는 부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자비심을 통해 모든 중생을 위하는 부처가 돼야 합니다.”

스님에게 있어서는 브릴랜드라는 가문의 명예도 사진작가라는 전직 타이틀도 뉴욕 티베트불교의 수장이라는 직책도 큰 의미가 없다. 카메라를 놓고 티베트 승가로 들어간 과정이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현재의 위치나 타이틀은 깨달음을 만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는다. 모델들의 얼굴에서 세계 종교지도자들의 얼굴에서 찾으려했던 삶의 진실을 이제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의 카메라 렌즈는 세상 밖에 놓인 피사체 대신 내면의 자아로 향하고 있다.

탁효정 기자 tka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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