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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 ⑦

기자명 법보신문

돈오-점수 수행 병행할 것 강조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 스님의 사상을 연구하는 보조사상연구원의 간사로 일한 시대(1987∼1992)가 있었다. 『천수경이야기』는 처녀작 「보조지눌의 이문정혜(二門定慧)에 대한 사상사적 고찰」(『한국불교학』 제14집, 1989)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뒤의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내 『천수경』 읽기에는 보조선(普照禪)의 입장이 투영되어 있었다. 과연, 보조선과 ‘독송용 『천수경』’ 사이에 존재하는 동일한 지평은 무엇이었을까?

불교의 많은 수행법은 모두 현실적 인간의 존재양상을 변화시켜 가는 치료법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진단의 문제가 처방의 제시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설정하지 않고서 제시된 수행법은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부처이다”라는 대답이 우선 가능하다. 이는 대표적으로 반야, 화엄, 그리고 선불교가 표방하는 입장이다. “중생이 곧 부처”라고 말하는 것이나, “부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너는 누구인가” 라는 대답이 행해지는 것들은 모두 이러한 인간관에 기반하고 있다. 인간을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부처성품을 깨닫는 것〔見性〕이 곧 성불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돈오(頓悟)일 수밖에 없다.

수행은 인간 변화 치료법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그렇다면, 지금 현실적으로 번뇌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 그대로가 부처라고 할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우리들의 번뇌는 너무나 많다. 수없이 많은 번뇌 속에서 업을 지으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곧 그대로 부처다, 그래서 더 이상 수행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대망어(大妄語)의 죄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우리 “인간은 중생이다.” 라고 말하게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번뇌를 하나하나 분석해 가면서 그 지멸(止滅)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유식불교가 취하는 전략이다. 점수(漸修)를 지향해 가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을까? 어느 편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가? 동일한 선종 안에서도 육조혜능은 돈오를 취하고, 신수는 점수를 택함으로써 남종과 북종이 갈라진 것이 중국 선종의 역사이다. 그런데, 우리의 스승 보조스님은 이 양자를 하나로 아울러서 돈오와 점수를 결합한다. 그의 선을 불러 우리가 보조선이라 하는 까닭이다. 본래적 차원〔理〕과 현실적 차원〔事〕을 아울러 생각하는 사상적 관점을 우리는 여래장(如來藏) 사상이라 한다. 보조선은 ‘독송용 『천수경』’과 함께 인간의 이중구조를 분명하게 직시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관점이 온당하다고 보는데, 보조선과 ‘독송용 『천수경』’에 매어있는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반야-유식 수행법 제시돼

‘독송용 『천수경』’에서는 참회와 발원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이중적 인간관에 근거하고 있다. “이제까지 지어온 모든 악업들…그 모든 것 이제라도 참회합니다”라는 것은 현실적 차원에서 행하는 점수적 참회이고, “죄와 마음 모두 다 공(空)해 진다면 비로소 참된 참회 이름하리라”는 게송은 본래적 차원의 돈오적 참회를 가리킨다.

또 “가이없는 중생을 모두 건지고”는 밖에 중생이 있지만, “마음 속의 중생을 모두 건지고”는 중생의 실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마음밖에 부처가 없다는 것, 그것은 곧 선의 모토가 아니던가. 본래와 현실, 점수와 돈오를 아우르고 있다. 이렇게 ‘독송용 『천수경』’은 참 부드럽다.

반야-화엄-선의 흐름을 유식의 흐름과 조화시키면서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조선과 ‘독송용 『천수경』’은 인간을 보는 눈에 있어서 같은 맥을 이루며, 그에 기반한 수행법 역시 함께 닦음〔兼修〕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이미 『천수경이야기』에서 충분히 한 이야기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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