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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은 道에 드는 門이자 열반에 이르는 길”

기자명 법보신문

해인사 계율강의 日 석학 사사키 교수

“계와 율이 출가 수행자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계는 부처님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생명과 우주, 삶과 죽음을 지배하는 연기의 법칙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행위 규범입니다. 또한 율은 출가수행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 즉 형법과 같은 개념입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계율을 도에 들어가는 기초요, 번뇌를 없애는 길이며, 열반에 이르는 길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뜨거운 햇살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8월 25일 해인사 관음전. 일본 석학의 초청 강연을 듣는 100여명 학인 스님들의 학구열에 관음전 안의 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 올랐다.

승단합의로 ‘율’바꿀 수 있어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강원 해인사 승가대학에서 외국 석학이 학인 스님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승속의 구분이 엄격한 해인사 강원에서 계율 전공학자인 일본 하나조노대 사사키 시즈카 교수가 학인 스님들을 대상으로 법석을 펼쳤다. 이제 막 출가 사문의 길에 들어선 학인 스님들에게 출가 수행자로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며 또 계율이 수행자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

사사키 시즈카 교수는 율장을 근거로 고대 인도불교의 승단 모습을 학인 스님들에게 꼼꼼히 설명했다.
“여러분들도 발우가 있지요?”
“예, 있습니다.”
“발우가 왜 생겨났는지 아십니까?”
“……”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자 2명의 상인이 찾아와 공양물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들의 공양물을 받을 그릇이 없었습니다. 이 때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천상에서 사천왕이 발우를 가지고 오자 부처님은 이 발우에 음식을 담아 손으로 먹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발우의 유래입니다.”

발우의 유래를 설명하는 사사키 교수의 강의를 듣는 학인 스님들의 눈빛에는 진지함이 배어났다. 계율전공학자 사사키 교수의 강의를 놓칠세라 일일이 메모하며 일본 석학의 강의를 경청했다.

“율장에 의하면 출가 수행자는 발우가 없으면 공양물을 먹을 수 없으며 오직 신도들이 발우에 담아주는 음식만을 먹을 수 있습니다. 또 출가 수행자는 직접 집을 지어 생활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출가수행자가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며, 집을 짓는 시간도 수행에 있어 낭비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사찰에서 뷔페식으로 공양을 하고 직접 건물을 지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는 율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사사키 교수는 율장에서 강조한 출가 수행자의 본분을 설명하면서 과거에 만들어진 율이 현대에 와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점들을 꼬집었다. 그는 수행자는 계율에 근거해 생활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수행에 전념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에 대한 질문도 잇따랐다. 해인율원에서 계율을 공부하고 있다는 한 학인 스님은 “출가수행자들이 집에서 생활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은 율장의 어느 부분에 나오는 것이며 율이 현대에 있어 적용되기 어려운 점들은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나”며 질문을 던졌다.

‘율’ 무너지면 출·재가 구분도 파괴

스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사사키 교수는 다소 당황한 듯 입가에 웃음을 보이며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출가수행자들이 집에서 생활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좬바라제목차경좭등 많은 율장에 언급돼 있습니다. 만약 율이 현대에 적용되기 어렵다면 승단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율에 대한 절대적 권위로써 무조건 따르려는 것보다는 승단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현대에 맞게 바꾸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이는 부처님도 허락하신 내용입니다.”

결국 율은 승가의 화합을 이루기 위한 법적 의무이기 때문에 승가 공동체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공감한다면 이를 개정할 필요가 있음을 사사키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이에 대한 근거로 어떤 율장에도 율을 바꿔서는 안된다고 하는 내용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율장을 근거로 고대 인도불교교단의 생활상을 정립하면서 세계적 석학으로 명성을 얻은 사사키 시즈카 교수는 비문과 율장의 검토를 통해 새로운 가설을 설정, 고대 인도불교 교단사를 재정립했다. 특히 그는 99년 출판한 좬출가란 무엇인가좭라는 저서를 통해 율장이 단순히 출가자의 행동이나 생활을 규정한 딱딱하고 어려운 문헌이 아니라 역사상의 사건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최적의 자료임을 지적하면서 자료를 통해 고대 인도불교의 교단 생활사를 조명했다.

그는 이번 해인사 초청 강연에서도 율장에 나타난 내용을 바탕으로 고대 인도불교교단사가 어떻게 정립돼 왔는지와 함께 당시 승단의 생활상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이를 통해 출가 수행자에 있어 계율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왜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그는 또 일본불교가 출·재가의 구분이 묘연해진 이유를 율의 붕괴에 있다고 지적했다. 율은 승단을 유지하기 위한 규율임에도 일본 불교에 율을 지키지 않아도 용인되는 풍토가 조성되면서 출·재가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율을 지키는 것은 수행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인사 강원에서의 강연을 마친 사사키 시즈카 교수는 “한국불교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한국불교가 오랜 기간동안 수행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철저한 지계에 있는 것 같다”며 “학인 스님들도 계율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수행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해인사 강원 강주 종묵 스님은 “초청 특강을 통해 학인들이 고대 인도불교의 계율이 어떻게 정립돼 갔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특히 계율이 출가수행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계기가 됐다”며 이번 강연의 의미를 부여했다.

<사진설명>사사키 시즈카 교수는 막 사문의 길에 들어선 해인사 학인들에게 “율을 지키는 것은 수행자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인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사사키 시즈카 교수는
56년생. 87년 교토 대학 문학부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88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유학. 90년부터 일본 하나조노 대학에서 계율을 지도하고 있다. 99년 좬출가란 무엇인가좭, 2000년좬인도불교변이론-왜 불교는 다양화했는가좭등을 비롯해 수많은 저술과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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