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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타·낙가산 ①- 한송이 붉은 연꽃 바다에 피어나니

기자명 법보신문

중국불교 성지 기행-보타·낙가산 ①

한송이 붉은 연꽃 바다에 피어나니
雲山海 스친 바람소리 법음으로 들려오고…


<사진설명>불긍거관음원 입구서 바라본 전경. 왼편의 관음원 앞으로 펼쳐진 바다가 일품이다.

<사진설명>2003년 일본 37개 사찰이 시주해 새롭게 조성한 불긍거관음원. 건축양식은 일본풍이다.


<사진설명>순례단은 10월 6일 보타낙가산 앞바다에서 방생대법회를 봉행했다.


<사진설명>좌. 불긍거관음원 바로 아래에 위치한 조음동.
우. 간절한 기도를 올리면 관세음보살이 나툰다는 범음고동의 누각.



본지가 주관한 ‘중국 보타·낙가산 성지순례’가 원만히 회향했다. 10월 4일부터 8일까지 4박5일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 순례단(단장 각현 스님) 82명은 상해의 옥불사와 용화사, 항주의 영은사와 정자사, 영파의 아육왕사와 보타·낙가산을 참배했다. 순례단의 발길을 따라 중국불교 성지를 소개한다.

“산과 호수의 으뜸은 서호에 있고, 산과 강의 명승은 계림에 있으며 산과 바다의 절경은 보타에 있다.”
중국 시인들이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을 두고 노래한 그대로였다. 천보사(千步沙)를 비롯한 모래사장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 작지만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작은 산들이 빚어낸 조화로운 풍경은 보타산에 첫발을 내디딘 순례단을 단박에 감탄케 했다. 보타 낙가산에 당도하기 하루 전, 항주의 서호를 보고 왔으니 절경을 보는 감동은 두 배였으며 무엇보다 이 섬 전체가 사원으로 둘러싸인 불국토라는 점이 가슴을 뭉클케 했다.

관음도량 성지 보타·낙가산에 돛을 내리면 누구나 제일 먼저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보타 ·낙가산 최초의 절 불긍거관음원(不肯去觀音院)이다. 누가 이토록 멋진 절경의 바닷가 기슭에 관음보살님을 모셨을까? 그 연원은 당나라 시대(846년, 혹은 863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국의 문수도량 성지 오대산에서 공부하던 일본 승려 혜악(慧鍔) 스님은 어느 날 산사에서 관음상을 난생 처음 친견한다. 경전을 통해 관음보살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관음상을 직접 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일본 귀국길에 오를 때 혜악 스님은 이 관음상을 산사에서 모시고 나와 보타산으로 왔다. 귀국하려면 보타산을 거쳐 일본행 배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보타낙가의 산수절경 압권

관음보살상을 품에 안은 채 보타산을 떠나려 했으나 심한 바람을 대동한 파도가 뱃길을 가로 막았다. 이튿날도 날씨가 좋아 배에 올랐지만 출발하려고 하면 심한 바람이 불어 배를 띄울 수 조차 없었다고 한다. 며칠동안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혜악 스님은 관음보살님이 일본 중생과의 인연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급기야 관음상 앞에서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관음보살님. 일본으로 가지 않으시려면 가고 싶은 곳을 알려주십시오. 배가 닿는 곳에 관음보살님을 모셔드리겠습니다.”기도가 끝나자 심한 바람은 멎었고, 관음상을 모신 혜악 스님은 배에 올랐다. 배는 지금의 불긍거관음원 바로 아래인 조음동(潮音洞)에 닿았다. 조음동 위쪽에는 어부 한 명이 살고 있었다. 혜악 스님의 사연을 들은 이 어부는 친히 자신의 집에 이 관음상을 모시는데 이곳이 바로 후에 불긍거관음원으로 자리매김 한다. 이같은 내용의 관음암 혜악 창건설은 ‘보견사명지’에 기록돼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 2000년 효탄 스님이 공개한 ‘관음원기 오홍 조맹부서’에 주목해야 한다.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1090년 전란으로 폐허가 된 보타·낙가산 관음원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실이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 4대 명필가로 꼽히는 조맹부가 374자의 송설체로 기록한 글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의천 스님 ‘관음원’ 재건 사실인듯

“보타·낙가산이 있는 명주에서 전란이 일어나 관음원의 백의관음이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대중 스님들은 백의관음을 숨기고 떠났다. 후에 관음원을 다시 찾은 스님들이 관음상을 찾았으나 허사로 끝났다. 그런데 의천 스님이 관음원 내 통지전 우물을 지나며 ‘이상한 소리’를 듣고서 ‘백의관음’을 찾았고, 보타낙가산의 대표 관음도량으로 발전시켰다. 고려조에서도 관음원에 새로운 전각을 시주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같은 기록은 ‘관음원’ 창건·부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분이어서 향후 연구가 주목된다. 혜악 스님이 관음상만 어부에게 맡기고 귀국했다는 설도 있으니 일본학계가 주장하는 ‘관음원 창건설’도 되짚어보아야 한다.

‘관음원’을 두고 한일간의 논쟁이 뜨거워서인지 37개 일본 사찰은 시주를 모아 2003년 옛 불긍거관음원을 확대해 지금의 관음원으로 새롭게 조성했다. 따라서 건축양식은 일본풍이다. 일본 37개 사찰에서 조성해 온 37개 석조 관음보살상도 전시돼 있다.
‘조음동’에 얽힌 일화는 흥미진진하면서도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절벽 사이로 파도가 밀려오는 이 동굴을 가리켜 ‘파도소리를 음미하는 동굴’이라고 명명한 사람은 바로 청나라 강희 황제다. 지금도 강희 황제가 직접 썼다는 ‘조음동’글씨가 암벽에 새겨져 있다.
인도에서 건너 온 한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조음동에서 3일동안 정진한다. 3일이 지나도 관세음보살을 볼 수 없자 ‘연지공양’을 올린다. 연지공양을 올리는 순간, 인도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친견했고 관세음보살이 사라진 순간 손을 보니 ‘칠보’가 쥐어져 있었다고 한다.

인도 스님의 관음보살 친견 소문은 보타·낙가산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에 퍼져갔다. ‘조음동에 가면 관세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속속 조음동을 찾았다. 직접 불 수 없었던 사람들은 연지공양을 올려서라도 친견하겠다며 자신의 몸 일부를 내놓았다. 뿐만이 아니다. ‘조음동에서 죽으면 관세음보살이 극락으로 이끌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청나라 장군이었던 진구사(陣九思)와 지방관리사 이분(二分)은 불긍거관음원 앞마당에 ‘금지사신연지’비석문을 세우기에 이른다.

<사진설명>청나라때 세운 '금지사신연지' 비석.


“관세음보살님이 이곳에서 현신설법하는 것은 중생들을 구고구난하려 하는 것이지 조음동에서 사신연지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신심을 갖고 수행을 하면 원만할 것이고, 여기서 사신연지하는 것은 관세음보살님의 뜻에 반대로 나가는 것이며 선림(禪林)을 더럽히는 것이다.” 글은 간곡한 당부에 그치지 않는다.

“만약 이 비석을 세운 후에 또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으면 주지승이 제재할 수 있다.”고 적시해 주지에게 제재 권한까지 부여하고 있다.
낙가산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다고 소문난 도량은 불긍거관음원 외에 또 하나 있다. 바로 범음고동(梵音古洞)이다. 명나라 때 창건된 이 사찰의 백미는 바로 절벽에 세워진 2층 누각이다. 절벽과 절벽 사이에 마련된 이 누각 아래로는 파도가 밀려오고 나간다.

<사진설명>순례단이 범음고동에서 사찰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누각 1층에는 옥으로 조성된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으며 2층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안치돼 있다. 청나라 때부터 누각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관세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순례단은 2층 누각에서 30여분간 관세음 정진을 하기도 했다.

관음원-범음동누각 홍련암과 흡사

불긍거관음원의 조음동이나 범음고동 누각의 절벽 사이로 나툰다는 관세음보살을 본 불자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보다는 순례단 자신의 가슴속에 담긴 관세음보살을 친견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이번 순례의 보람은 차고도 남음이 있다 할 것이다.
또 하나. 불긍거관음원이나 범음고동은 우리나라의 동해 홍련암과 매우 흡사하다. 분명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중국의 두 사찰과 홍련암의 연구에 박차를 가히기를 기대한다.
중국 주산=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보타·낙가산은?

‘중국 제1 불교왕국’
절강성 영파 동쪽에 위치




‘해천불교 왕국’, ‘중국제1 불교왕국’, ‘남해불교 왕국’ ‘해상봉래절’이라 불리는 보타·낙가산은 지장보살을 모신 안휘의 구화산, 보현보살을 모신 사천성의 아미산, 문수보살을 모신 오대산과 더불어 중국 4대 불산 중 하나로 꼽힌다.
보타·낙가산은 절강성 영파시 동쪽 바다에 위치한 주산군도의 한 섬에 있다. 주산(舟山)군도는 가장 큰 섬인 주산본도와 1390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져 주산시로 불린다. 하늘에서 내려볼 때 한척의 큰 배가 작은 배를 거느리고 항해하는 형국이어서 ‘주산’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이중 사람이 거주하는 섬은 98개이며 인구는 100만이 채 안된다.
보타산은 주산본도에서 쾌속선으로 약 10여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낙가산은 보타산에서 쾌속선으로 약 20여분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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