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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심수행장(14)

  • 불서
  • 입력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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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미루는 데는 끝이 없다 착 끊고 결단내려 ‘지금’ 수행해야

〈제 12 과〉

遮言이 不盡이어늘 貪着不已하며 第二無盡이어늘 不斷愛着하며 此事無限이어늘 世事不捨하며 彼謀無際어늘 絶心不起로다. 今日不進이어늘 造惡日多하며 明日無盡이어늘 作善日少하며‘이 말’이 다하지 않건만 탐착을 그치지 아니하며, ‘이 다음’이 다함이 없건만 애착을 끊지 아니하며, ‘이 일’이 한정 없건만 세상일을 버리지 아니하며, ‘저 모책’이 끝이 없건만 끊을 마음 일으키지 아니하는구나.

‘오늘’이 다하지 않건만 악을 지음이 날로 많아지며, ‘내일’이 다함이 없건만 선을 지음이 날로 적으며, 차언부진 탐착불이(遮言不盡 貪着不已)

결단력이 부족하여 우유부단한 사람은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룬다. 다음에 하지, 다음에 해, 하는 식으로 다음, 다음, 하다가 끝장난다. 늦잠을 잘 때, 방 청소를 미룰 때, 빌린 물건을 돌려 줄 때, 밀린 빨래가 있을 때, 읽을 책이 있을 때 등 등. 신뢰가 떨어지고 주위 사람이 싫어해도 게으름에는 하는 수가 없다.

피모무제 절심불기(彼謀無際 絶心不起)

이렇게 허투루 세월 보내기를 끝없이 하는 데도 끊을 마음을 내지 않는다.

옛날 청 화원(靑畵員)이란 단청(丹靑)장이 스님이 한 분 있었는데, 그가 홀연 죽음을 맞게 되었다. 출가는 했지만 수행은 뒷전에 두고 단청 일에만 매달리다가 일을 당한 것이다. 단청 일과 수행이 둘이 아니라는 탁견(卓見)도 없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꿈속에서 일직사자와 월직사자가 나타나더니, “너를 지금, 명부세계로 데려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청 화원은 무조건 애걸복걸하며, “앞으로 꼭 7일간만 기다려 주시오.”하고 청했다. 이때 사자들은 청 화원의 청을 들어주었다. 청 화원이 악몽 같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등골에 식은땀이 착 배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노력해오고 애쓴 일들이 허무하고 공허할 뿐, 죽음 앞에서는 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청 화원은 이제 딴 사람이 되었다. 심기일전으로 목욕재계를 하였다. ‘다음, 다음’하고 미뤄오던 참선이 아닌가. 청 화원은 7일간을 기한하고 입산 당시의 행자가 된 기분으로 좌복(坐服) 위에 앉았다. 어느 날 옆방 스님들이 나누는 법문이 좌선 중인 청 화원의 귓전에 들렸다. 내용은 옛날 방 거사와 그의 따님 영조와의 법담(法談)이었다.

“부녀로, 방 거사와 영조란 따님은 다 도인이셨지. 하루는 낮 시간에 방 거사가 큰절에 가서 한 선사와 나눈 이야기 내용을 따님 영조에게 드려주었을 때였어. 불법의 대의는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에 한 선사가 이렇게 대답을 하였지.

명명 백초두(明明百草頭) 명명백백한 백초의 풀 끝머리에는명명 조사의(明明祖師意) 명명백백한 조사의 뜻

이 말을 아버지 방 거사가 하기가 무섭게 따님 영조가 즉석에서 욕설을 하였어. 소위 머리가 희고, 이빨이 누렁이가 된, 늙은이란 작자의 소견이, 고작 이 정도 수준인가요? 하고 막 책망을 해대는 거야. 이때 방 거사가 말을 잇는다. 그럼, 너는? 순간 따님 영조가 천연스럽게 읊는다.

명명 백초두(明明百草頭) 명명 조사의(明明祖師意)

방 거사는 따님의 공부를 이렇게 인정한다. 그렇구나. 여기까지가 ‘명명 백초두’법문 일화인데, 수좌들이 이 법문을 잘 기억한다면, 염라대왕이 합장을 하고 두 무릎을 꿇는다는 거여.” 청 화원이 여기서 감동을 받는다.

염라대왕이 무릎을 꿇는다?

이때부터 맹렬한 마음으로 화두에 크게 의심을 내었다.

“왜, 영조는 그때 ‘명명 백초두 명명 조사의’라고 했을까?”7일 낮 7일 밤이 다 찬 어느 날이었다. 저승사자가 청 화원을 데리러 왔을 때였다. 청 화원의 방안은 텅 비어 있었다. ‘명명 백초두’화두를 들어서 깊은 선정 삼매에 든 청 화원의 모습은 공(空)하여 끝내 찾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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