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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알면 삶이 아름답다

기자명 법보신문

국녕사 임사(臨死)체험 현장

<사진설명>임사체험을 한 참가자들은 “죽음은 피하고 싶은 그 무엇이 아니라 또다른 삶을 시작하기 위한 관문”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내가 수십 년 동안 정들었던 나의 육신과 이별해야 할 시간입니다. 마지막 이 호흡이 끊기고 나면 나의 육신은 곧 생명 없는 고깃덩이가 되어 냄새를 풍기겠지요. 짧디짧은 인생에서 맛보았던 성취와 쾌락이 모두 꿈같기만 할 뿐입니다. 그동안 일생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었던 많은 잘못 참회합니다.”

발원 후 입관 …장엄염불도

짙은 먹구름이 상현달을 삼킨 10월 23일 자정 무렵, 북한산 의상봉 자락에 위치한 국녕사에서는 올해 마지막 임사(臨死)체험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 능인선원에 다니고 있는 이철교(57·무량광) 씨도 그 중의 한 사람. 하얀 수의를 갈아입고 입관발원문을 읽은 그녀는 검은 도포에 갓을 쓴 저승사자를 좇아 산으로 향했다. 오솔길 양 옆으로는 희미한 촛불들이 길게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100미터 쯤 올랐을까. 조그마한 공터에 10여 개의 관이 늘어서 있다.
‘아! 죽음이 저기 있구나.’ 순간 소름이 돋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 씨는 애써 무서운 마음을 억누르고 2미터 남짓한 관에 들어갔다. 저승사자가 손과 발을 묶고 관에 못질까지 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어둠의 심연….

“삼계는 우물 속 두레박과 같으니
백천만겁 지내온 것 티끌과도 같아라.
금생에 이 몸이 도를 얻지 못하면
어느 생에 다시금 이 몸을 구제하리.”

관 밖의 애달픈 장엄염불 곡조가 전신을 휩싸고 돈다. 그 때 이 씨는 6년 전 자신과 아이들을 남기고 떠나간 남편을 떠올렸다. 그녀는 남편을 오랫동안 원망했었다. 이 척박한 세상을 홀로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무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으로 향하던 남편이 얼마나 겁나고 마음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뼈에 사무치게 다가왔다. 그러자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듯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나는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막연히 아주 먼 훗날 일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러나 임사체험을 하고는 정말 내가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심각한 반성도 하게 됐습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너무 고맙고요.”

강연-시청각 자료 적극 활용

비단 이 씨만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참가자들은 임사체험을 통해 삶을 다시 보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마음이 너무 가벼워지고 깨끗해진 느낌입니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이웃에게 왜 베풀며 살지 않았을까 너무 후회가 되더라고요. 이제라도 나누며 살아야지요.”(구관음성)
“허무함과 두려움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정말 죽어 관에 다시 들어가는 그 날을 떠올리며 남은 생애 업장소멸하며 살려고 합니다.”(이선묘행)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는데 이제 순리대로 물 흐르듯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잘 죽기 위해 수행과 봉사를 게을리 하지 않을 각오입니다.”(남명불선)
북한산 국녕사가 임사체험 프로그램을 처음 실시한 것은 지난 2002년 여름이다. “죽음을 올바로 알아야 현재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는 능인선원 지광 스님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때마침 호주에서 ‘정신복지’ 분야를 전공하고 귀국한 김기호 씨가 이러한 임사체험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 참여했다. 오래 전부터 ‘죽음’에 관심을 갖고 세계 여러 나라의 임사체험 프로그램을 연구하기도 했던 그는 이론과 체험을 병행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죽음을 주제로 한 강연과 다양한 영상 자료, 특히 티베트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삶 자체가 업장을 소멸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임을 설명하려 했다. 또 자신이 곧 죽는다는 상황을 설정한 후 자신의 삶을 반조하며 인생 곡선을 그리는 ‘회상명상’과 ‘유서 쓰기’ 프로그램도 실시했다. 특히 실감나는 임사체험을 위해 진짜 관을 준비하고 자원봉사자들은 저승사자 복장을 했다. 여기에 엄숙한 입관 및 탄생발원문과 실제 스님이 죽은 이들을 위해 염불할 때 읽는 장엄염불을 독송했다.

<사진설명>수의를 입은 참가자들이 저승사자로 분장한 자원봉사자를 따라 산에 오르고 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생사관을 갖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라마가 말했듯 죽음은 육식의 옷을 갈아입는 과정, 나아가 가장 심오하고도 풍요로운 내적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때로 받아 들입니다. 우리 수련원은 참가자들이 죽음과 직면토록 함으로써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갑작스런 죽음에도 편안히 맞을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자 했습니다.” 수련원 김기호 실장의 말이다.

“삶이 새롭게 보인다” 한 목소리

예상대로 수련원 참가자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불길하다는 생각 때문에 참가를 꺼려하던 사람들도 일단 임사체험을 하고 나면 “죽음을 피하고 싶은 그 무엇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을 시작하기 위한 관문”으로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도 늘었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의왕시 대안중학교 2학년 법광 군은 “내가 1시간 뒤면 죽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내가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며 “비록 이곳에 우연히 오게 되었지만 내 가슴에 한 획을 그은 큰일이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죽음을 직시해야 불교의 가르침 또한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수련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즉 삶이란 태어나는 순간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죽음을 향해 한 걸음 씩 내딛는 존재이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삶을 더욱 가치 있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3월초 다시 시작

수련원은 참가자들의 호응이 높아짐에 따라 불자들을 대상으로 하던 임사체험을 내년 3월부터는 일반인들로 점차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수련원 최은영 원장은 “죽음을 체험하는 것은 곧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많은 이들이 참다운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이를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국녕사수련원 02)387-0743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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