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초와 금붕어

기자명 법보신문
넘치는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적당함의 미덕은 만물 살리는 지혜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찬바람에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애석하게도 북경 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나무들은 가을이 되어도 단풍이 들지 않는 품종으로만 골라 심어져 있는 듯 하다.
하늘을 바라보니 오늘밤은 유달리 달이 밝다. 평소에는 공해 때문에 하늘 속 모습을 잘 볼 수 없었는데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덕에 북경의 하늘도 모처럼 깨끗하게 세수를 한 듯 하다. 조금은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서 달을 보며 걸으니 정신이 맑아지면서 예전에 비해 많이 단순해진 북경에서의 내 삶에 감사함이 느껴졌다.

지난주에 나는 작은 화초 하나와 금붕어 다섯 마리를 내 방의 새 식구로 맞아 드렸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노상에서 파는 화초들과 금붕어들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혼자 오랫동안 지내다 보면 본인 정서에도 좋지 않고 성격에도 이상이 온다던 옛 도반의 농담이 불쑥 생각나서였다. 화초는 잎이 좀 크고 건강해 보이는 놈으로 금붕어는 눈이 옆으로 뽈록하니 나온 재미있게 생긴 놈으로 골라서 데리고 왔다.
집에 와서 나와 인연이 닿은 화초와 금붕어에게 일단 목욕을 시켰다. 헝겊에 물을 묻혀서 화초 잎 하나 하나를 정성드레 닦아주었다. 그리고 나서 화초에 적당히 물을 준 다음 햇볕이 나는 창문 근처에 화초의 자리를 잡아 주었다. 금붕어도 같이 사온 작은 어항에 깨끗한 물을 부어 금붕어 집을 마련해 주었다. 금붕어 먹이도 한 20알 정도 같이 주었다.
온통 하얀색으로만 가득했던 내 방에 녹색과 주황 빛깔이 들어서니 갑자기 생기가 나는 듯 했다. 금붕어가 들어 있는 어항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좋던 것도 잠시. 화초와 금붕어를 사 온지 일주일이 채 되기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화초는 잎새가 힘없이 시들해지고 어항에 있는 금붕어는 한 두 마리씩 죽어 가는 것이다.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마도 내가 물과 먹이를 너무 많이 준 것 같다. 죽은 물고기 배가 뽈록하니 나온 것을 보니 먹이를 한 10알 정도만 주어도 되었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깨닫겠다고 큰스님을 찾아 나선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만나 뵌 큰스님들은 쌀쌀맞을 정도로 제자들에게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아무리 깨달음에 목말라 하는 제자들에게도 따로 특별한 가르침을 주는 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스승님의 무관심에 어떤 제자들은 마음을 상해서 떠나는 경우도 보았다.

그런데 큰스님의 무관심은 적당한 때를 기다려 화초와 금붕어에 물과 먹이를 주는 주인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너무 많은 먹이를 한꺼번에 주면 오히려 해가 되는 것을 알기에 스승님은 무관심처럼 보이는 관심으로 제자를 지켜 본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마음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마음 상해 떠나갔던 도반들을 진작에 위로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날이 추워진다. 내일은 은사 스님께 문안 전화를 올려야겠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