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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기자명 법보신문
인생에 준비과정은 없다
바로 이순간만이 존재할 뿐


우리의 인생에서 준비는 필요 없다. 그 어떤 준비과정도 진리와 멀어지게 할 뿐이고, 수행과 멀어지게 할 뿐이다. 모든 일은 낱낱이 ‘바로 그것’이 되어야지 그것을 위한 준비과정이 되어선 안 된다.

참선·염불·독경·진언·절 등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려고 하지 말라. 참선하는 바로 그 순간이 이미 본래성품을 드러내는 순간이고, 깨달음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참선수행을 하기 위해 선방에 가는 순간도 그것이 절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기 위한 준비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절로 가는 그 걸음 걸음의 순간 또한 그대로 본래 성품을 드러내는 순간이고, 깨달음을 위한 과정이 아닌 바로 깨닫는 그 순간임을 알아야 한다.

주말에 있을 참선모임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무엇하러 그 긴 시간을 기다리느라 소모해야 하는가. 기다림을 버렸을 때 모든 순간 순간이 온전한 참선의 순간이 된다. 독경 수행을 하기 위해 경전을 꺼내어 들고, 펴고, 준비하는 그 모든 과정이 독경을 위한 준비과정이 되어선 안된다. 수행을 위한 준비는 필요 없다. 바로 그것이 수행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행위가 준비과정이 되었을 때, 그 때부터 괴로움은 시작된다. 절에 가서 1시간 수행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시간이 늦으면 괴롭고, 절에 가는 동안 차가 막히면 답답하고, 어쩌다가 절에 못가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해 괴롭게 마련이다.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모든 수행의 순간이 깨달음의 순간이지 깨달음을 위한 과정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중생’이 수행이라는 ‘마음’ 닦는 과정을 통해 깨달은 ‘부처’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 말은 방편일 뿐이다. 중생이나 마음이나 부처가 그대로 하나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세가지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깨닫음의 순간이다. 그랬을 때 우리 삶의 그 어떤 순간도 우리를 괴롭게 만들지 못한다. 모든 순간이 다 온전한 순간이고,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깨달음의 순간이라면 온전한 만족만이 있다.

절에 가는 순간 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음을 알아차리면 그것이 그대로 경행수행이 된다. 그랬을 때 절에 가는 과정도 참선이며, 절에 가서 앉아 있는 것도 참선이다.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경전을 꺼내어들고 방석을 펴는 순간 매 순간 순간을 놓치지 말고 깨어있으면 수행과 생활이 따로 없고, 과정과 목적이 따로 나뉘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이 그대로 목적이 되도록 하라.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이 그대로 수행이 되도록,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이 되도록 하라. 지금 여기에서 깨어있을 수 있다면 모든 순간이 낱낱이 절대며, 모든 행위가 그대로 참선이다.
그것을 위한 준비 과정은 없다. 오직 ‘그것’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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