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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비구 48대원, 성취되었나요?

기자명 법보신문

아미타불 되면서 모든 서원 성취

Q : 법장비구가 발원하셨다는 48대원(四十八大願)을 독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그렇게 거룩하고 감사한 원은 언제 성취가 되는 것입니까?

A :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법장보살은 자신이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무한성을 동시에 갖춘 아미타불이 되셨습니다. 이는 곧 아미타부처님이 되시기에 앞서서 법장비구가 발원한 48대원이 성취되었음을 증명합니다. 이는 적당히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막상 법장비구의 48원을 외우면서도, “법장비구야 위대하셔서 그런 대단한 성취를 이루셨겠지만 나 같이 못난 사람이 어떻게…”하면서 자신을 중생으로만 자리매김 하려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법장비구의 48원은 이미 성취되었기에, 앞으로 언젠가 벌어질 별개의 사건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마지 않는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합니다. 더 바래야 할 구원도, 더 채워야 할 만족도 없다고 하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의 생명은 그 자체로 처음부터 완전무결하며, 원만 성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무아미타불!”하며 염불을 하는 이유는, “나는 완전히 성취된 부처님생명입니다”하는 기쁨의 표현이지, “구할 것이 따로 더 있습니다” 하는 구걸의 절규가 아닙니다. 또한 “나는 모자란 중생인데, 무엇을 더 필요로 합니다”하는 한숨 섞인 탄식도 아닙니다. “나는 부처님생명으로서 완전한 생명을 살아가겠습니다”하는, 자기 삶에 대한 넉넉한 찬탄인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신경안정제를 먹으려는 듯한 독경이어선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근거가 아닙니다. 지혜의 근원에서 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내 생명의 바탕에서 울리는 소리를 스스로 듣게 됩니다. 눈이 열렸는데 안보입니까? 귀가 뚫렸는데 안 들립니까? 그것을 보고 듣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눈으로만 보고 귀로만 듣는 게 아닙니다. 여태까지 내팽개쳐왔던 나의 참생명이 듣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세상을 만나는 인연을 따라 받은 몸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대입할 것인지, 자신의 삶에 솔직하게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간혹 온갖 법문을 들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기를 능사로 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수집하다보니 그 사람의 귀는 하도 좋은 말씀을 많이 들어서 자기가 만든 극락에 둥둥 떠있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은 요지부동인데 말입니다. 많이 듣기만 해서 그래 어쩌겠다는 겁니까? 부처님의 말씀, 참생명의 내용을 스스로에게 비추어보고는 수정해 가야합니다.

오염된 시냇물에는 철새가 날아들지 않습니다. 그러다 그 물이 정화가 되었을 때 거기엔 펄떡이는 물고기들이 노닐고 따라서 철새도 자연히 날아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맑은 물이었을 때 철새가 날아들고 더러운 물에는 날아들지 않는 것처럼, 내가 부처님의 가르침 그대로를 받아들여 생명 자리를 맑게 하였을 때만 제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문사수법회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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