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관세음보살
나무가 관세음보살
  • 법보신문
  • 승인 2004.11.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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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보살님의 말이
화두가 되어 참구

1주일간 참회의 눈물
이제는 날마다 좋은날


오래 전 공부하러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오랜 여행 끝에 지친 몸을 끌고 안거에 들어가기 위해 방부 들였던 절에 들어가던 길이었다.

일주문에서 어떤 허름한 노보살님이 몇몇 분들과 성지 순례를 오셔서 법문을 하고 계셨다. 지나가며 언뜻 들은 얘기로는 “왜 저 나무를 관세음보살이라 하면 말이죠, 나무는 어쩌고저쩌고….”

나는 지나가면서 피식 웃었다. ‘저 무식한 할매 아는 척 하는 것 좀 보소. 나무(南無)란 말은 산에 있는 나무가 아니고 인도 말인데 의지한다, 귀의한다란 뜻이에요. 제대로 알고 얘기하소, 할메요.’ 약간의 비웃음과 함께 이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귀찮기도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지나갔다.

그 해 안거는 몸이 좋지 않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좌복에 앉으면 졸리고, 나도 모르게 마음은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고, 화두는 전혀 잡히지도 않았다. 차라리 나가 버릴까?

반철 때까지 비몽사몽간을 헤맸던 것 같다. 그런 가운데 한 순간 절에 들어오며 만났던 노보살님의 영상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나무가 관세음보살이다’ ‘나무가 관세음보살이다’

화두는 오고간 데 없고 ‘나무가 관세음보살이다’란 말이 화두처럼 마음 속 깊이 박혀 마치 화두가 성성하듯 해졌다. 우연인지 그러면서 서서히 몸도 회복되고 정신도 맑아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행주좌와어묵동정 ‘나무가 관세음보살이다’가 끊이질 않았다. 예불을 드리거나 잠을 잘 때, 심지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도 ‘나무가 관세음보살이다’란 말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슴 한복판에 뜨거운 그 무엇이 울컥하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주일이나…. 마음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환희심으로 가득찼다.

그래, 법당의 관음만 관음이 아니다. 대웅전 앞마당 나무를 기어오르는 개미도 관음이고 그 개미를 발을 딛고 있는 나무도 관음었으며, 그 나무를 관음이라고 했던 할메도 관음이었다. 아니 산천초목, 삼라만상이 모두 관음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보이는 모든 건 관세음보살이 되었다. 생각하는 모든 건 관세음보살이 되었다.

출가 이전 그토록 증오하고 원망했던 아버지가 생전처음으로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내가 살아 있음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셨음이, 부처님께로 오게 해주심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마지못해 살았었다. 세상 모든 것에 불평불만이었고, 아집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말하자면 겉만 출가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 이전과는 180도 달라졌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먼저 인사하고 안아주었다.

내 안의 환희를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간혹 그런 나를 사람들은 ‘또라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좋기만 했다.

그렇게 좋은 날들을 살면서 선지식이라 하는 제방의 큰스님들을 많이 만났다. “네가 좋은 걸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마저 놓아야 한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뭔가 번쩍하며 지나갔다.

역시 이래서 선지식이 필요하고 점검이 필요한가보다. 여하튼 이를 계기로 나는 이후 나누는 기쁨 공동체에서 ‘날마다 좋은 날’을 살고 있다.

마가 스님
마곡사 포교국장·중앙대 초빙교수
cafe.daum.net/jur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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