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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 한 알 꿸 때마다 번뇌 하나씩 떨어져요”

기자명 법보신문

염주 10만개 보시 조 정 희 보살

혹, 자신이 갖고 있는 염주가 ‘율무’로 만든 염주라면, 더구나 누구에게서 선물 받은 염주라면, 그 염주는 틀림없이 자비행 보살의 손길이 닿은 것이다.
조정희씨. 교계에는 그의 이름 석자 보다는 ‘자비행 보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96년 3월부터 2003년까지 8년간 무주상보시한 염주는 모두 10만개. 초겨울, 그는 오늘도 자신의 20여평 아파트에서 염주알을 꿰고 있다.

밭에 율무 심어 직접 재배

“왜 하기는요.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염주알 한개씩 꿰면서 ‘관세음’정진도 하고 좋잖아요.”

자비행 보살이 염주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지난 10년 전 가을 성지순례길이었다. 한 노인이 “염주줄이 끊어졌다”며 좀 봐달라는 거였다. 순례를 마친 자비행 보살은 새실로 그 염주를 하나씩 꿰어갔다.
“얼핏 생각이 났어요. 이 세상에 나누며 사는 사람이 참 많은데 난 무엇을 나눴나. 염주라도 만들어 보시하면 어떨까 했지요.”

그 해 당장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이미 염주와의 인연은 깊어만 갔다. 한 노보살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율무염주’를 돌리던 자비행보살은 “정말 이 알을 심으면 싹이 날까?”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그 율무알을 화분에 심어놓고 물을 주며 보살폈다.

예나 지금이나 선승은 먼 길을 떠날 때 목에 율무염주를 걸고 다녔다. 아무 산길에서라도 쓰러져 열반에 들면 몸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고 목에 걸었던 염주에선 싹이 터 율무가 됐다. 스님들은 산길에 율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는 것을 보면 꼭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독경한 후 지나가곤 했다. 이름모를 선승의 율무염주가 다시 율무로 환생하듯 자비심 보살이 심은 그 율무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열매 다듬다 손톱 3번 빠져

1996년 3월 자비행 보살은 큰 원력을 세웠다. “몇 년이 걸리든 염주 10만개를 내 손으로 만들어 뭇사람들에게 보시하자.” 자비행 보살은 화분에서 자란 율무를 아파트 앞 밭에 심었고 그 율무는 그 해 여름 다시 열매를 맺었다. 일일이 율무풀을 베어 턴 후 열매를 주워 물에 씻고는 오톨도톨한 열매의 양끝을 매끄럽게 다듬은 후 실에 하나씩 꿰어갔다. 여러개의 알이 한 줄에 꿰어져 가듯 자비행 보살의 따뜻한 마음도 하나 둘 꿰어져 갔다. 그렇게 완성된 염주는 인연의 고리를 따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8년이 된 지난 2003년 사월초파일 3일 전, 드디어 염주 10만개 보시 원력을 회향했다. 1년에 1만2500개, 한 달에 1040여개를 만들었다는 계산이다. 그 동안 왼 쪽 검지 손톱은 3번이나 빠졌다. 열매를 다듬는 판(도마)도 3개나 닳았다.

“저와 인연있는 보살님이나 동네 분들이 곁에서 거들어 주어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어린 아들 딸, 남편도 틈만 나면 도와줬지요. 거실 가득히 흩어져 있는 염주알과 도구들을 보는 남편은 ‘미안해 하지 말라’며 율무알을 다듬어줬어요.”
독실한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절에 다녔던 자비행 보살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관세음’주력을 했다고 한다. 신심 깊었던 자비행 보살은 공주불교연합합창단 단장을 14년이나 맡으면서도 장애인 복지시설에 나가 어려운 이웃을 돌봤다. 어디 그 뿐인가. 마곡사의 크고 작은 일에도 달려가 거들은 그는 이미 ‘공양주 아닌 공양주 보살’로 불리고 있다.

자비행 보살이 꼭 ‘율무염주’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봄에는 살구씨를 걷으러 방방곡곡을 다니고 가을에는 백련씨를 구하러 산사로 발길을 향한다.

“지금은 도와주시는 분이 많아졌어요. 백련씨로도 염주 만든다고 하니까 이렇게 소포로 부쳐온 분도 있어요. 이 씨도 한 번 삶아서 껍질 벗기고 드릴로 구멍 뚫은 후 실에 꿰어 예쁘게 매듭지으면 멋진 염주가 되는 거예요. 어느 분 손에 닿을지 참 좋겠지요?”

자비행 보살로부터 염주를 보시 받은 사람 중에는 이렇듯 백련씨나, 봉숭아씨 등 염주 재료를 보내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산길 산책 중 둥그런 열매만 보면 가져와 “이것도 염주재료가 되느냐”며 물어 웃음꽃을 피운단다.
“대만에 있는 한 친구는 제게 실을 보내왔어요. 불광사의 한 스님이 이 실로 염주를 만들면 좋다고 해서 보냈다는데 참 좋아요. 색깔도 예쁘고요. 어떤 분은 크림도 보내주셨지요. 크림으로 한 번 닦아 놓으면 깔끔하거든요.”

<사진설명>처음 율무알을 심어 싹을 틔웠던 화분을 자비행 보살은 지금도 애지중지한다.

장애인 시설서 봉사도 ‘열심’

자비행 보살은 지난해 11월 다리를 크게 다쳐 9개의 인대가 끊어졌다. 다리 절단 위기에까지 갔으나 다행히 인공인대로 버틸 수 있었다. 생활하는데 큰 불편은 없지만 그래도 한 쪽 다리는 전과 같지 않다. 그래도 자비행 보살은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부처님 가피로 이 정도예요. 회향 후 좀 안일했더니 부처님한테 혼난 거지요. 앞으로도 염주 잘 만들어 보시하라는 말씀일 거예요. 그렇지요?”

염주알은 보살의 뛰어난 지혜 공덕을, 염주알과 염주알 사이는 번뇌의 단절을 뜻한다. 알을 꿰는 줄은 관음보살의 자비심이요, 모주는 아미타불의 덕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염주알의 숫자에도 큰 뜻이 담겨 있다. 27현성을 뜻하는 ‘27 염주’, 4선근과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의 보살수행 계위를 뜻하는 ‘54 염주’와 108번뇌를 상징하는 ‘108 염주’.

자비행 보살이 보시한 그 많은 염주 하나하나에는 이러한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학창시절부터 수행해온 ‘관세음’주력과 함께 한 알 한 알을 다듬어 실에 꿰어 보시한 그 염주를 다시 한 번 바라 보자. 자비행 보살이 진정 나누고자 했던 마음은 ‘나눔’이 아니라 ‘보리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공주=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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