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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배’ 타고 선정의 바다 항해

기자명 법보신문

사이버 선객

무불선원 선원장 석 우 스님
(cafe.daum.net/mubulsunwon)

국내 인터넷 이용 인구 3천만 시대. 별의별 사람과 온갖 종류의 정보가 모여드는 인드라망에 눈 밝은 선지식이나 수행의 고수라고 없을까.
무불선원 선원장 석우 스님. 인터넷 다음 카페 ‘무불선원’의 운영자인 스님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사이버 스타다. 스님의 인터넷 카페가 불과 1년 만에 5000여 라이벌들을 물리치며 12위로 껑충 뛰었을 뿐 아니라 여전히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불교 카페들이 사찰순례, 봉사, 염불, 찬불가 등 보다 대중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묵묵히 선(禪)을 고집하는 ‘무불선원’의 순위는 놀라운 결과라 할 수 있다.

<사진설명>종횡무진 인터넷을 누비는 석우 스님은 전통 선으로 무장한 21세기 형 사이버 선객이다.

컴퓨터라면 그저 타이핑이나 하던 석우 스님. 그렇게 ‘컴맹’에 가깝던 스님이 인터넷의 바다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좌복을 벗 삼는 수좌로서 선(禪)을 대중화해야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 때문이었다. 스님은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도량의 이름을 따 무불선원이라는 멋진 문패도 달았다. ‘부처 아닌 사람이 없고 진리 아닌 것이 없고 행복 아닌 것이 없다’는 뜻으로 무불(無佛)이라는 말에는 선불교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1년만에 5000개중 12위로 껑충

인터넷 바다에 선의 돛을 올린 스님의 활동은 눈부셨다. 선과 관련된 실속 있는 자료를 속속 올리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선에 대한 일반의 궁금증과 오해를 하나하나 풀어주었다. 구체적인 선수행의 방법을 일러주는 것은 물론 수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까지 해주었다. 이와 병행해 스님이 올 초부터 새롭게 시작한 것이 채팅을 통한 인터넷 선어록 강의. 여느 인터넷 동호회에서 그저 안부나 묻고 잡담을 나누는 채팅을 이용해 선을 지도하겠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쇠뿔도 단숨에 빼라고 1월에 구상에 들어간 스님은 2월초 홈페이지에 실시간 선어록 강의 공고를 낸 후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깨달음이란 화두를 붙들고 마치 감 떨어질 때를 기다리듯 오래 앉아 있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알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길을 일러주는 게 바로 경전과 선어록입니다.”

스님의 강의는 쉬우면서도 명쾌했다. 선어록을 소개하되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있는 언어로 선의 핵심을 보여주려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강의를 한참 하다가 다소 뜬금없이 묻는다.

“무엇이 부처님입니까?”
“2600년 전 살았던 성스러운 분입니다.”
“아닙니다.”
“불성입니다.”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뭔가요?”
“운문 스님은 ‘똥막대기’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깊이 고민해보고 다음 시간에 다시 대답해보세요.”

스님은 정형화된 화두를 강요하기보다 화두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의심을 주지 못하면 이미 그 화두는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채팅 강의를 위해 처음에는 원고를 미리 작성하기도 했지만 실제 강의하다보면 선의 즉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만두었다. 오히려 평소에 전혀 쓰지 않던 ‘했슴다(했습니다)’ ‘젤(제일)’ ‘말이어요(말입니다)’ 등 인터넷 언어를 사용하고자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보다 많은 것을 전달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네티즌들과의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스님은 89년 전국설법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전달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실제 지난 96년 불교방송국에서 전국의 불자들을 대상으로 연 교리퀴즈에서 스님이 지도한 불교대학 학생들이 1등을 차지할 정도로 가르치는 데는 이른바 ‘선수’였다.

채팅강의가 진행될수록 네티즌들의 반응이 점점 뜨거워졌다. 처음에는 참여자가 서너 명이었지만 곧 수십 명으로 늘어났고, 강의내용을 보는 사람들은 매주 수백 명에 이르렀다. 지역도 서울을 비롯해 거창, 광주, 파주, 강릉, 목포 등 다양했다. ‘스님 이제야 비로소 선을 알 것 같아요.’(닉네임 꽃망울) ‘좋은 스승을 만나 제 인생의 길에 한줄기의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심을 항상 감사드립니다.’(닉네임 초원의 빛) ‘깨달음의 길을 직접 안내하는 그런 분은 정말 만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제게도 전생에 큰 복이 있었나 봅니다.’(닉네임 깐돌이) 등 고마움과 찬사가 잇따랐다. 스님 역시 가장 큰 보람은 인터넷 강의만 듣던 사람들이 실제 정진으로 이어지는 것. 이 중에는 꿈속에도 화두를 놓치지 않는 몽중일여의 단계에 접어든 고수들도 있다고….

채팅으로 禪어록 강의

스님은 강원과 대학에서 선을 전공한 후 지금까지 1600여 명의 불자들에게 교리를 지도한 이름난 강사다. 그러나 스님의 본 면목은 역시 수행자다. 70년대 초반 입산해 74년 성철 스님으로부터 ‘무자(無字)’ 화두를 받은 스님은 강원에 있으면서도 봄가을 용맹정진에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강원졸업 후에는 100일간 산꼭대기 암자에 홀로 기거하며 화두를 타파하기 위해 단식까지 해가며 온 힘을 기울였다. 스님은 ‘옛 선사들이 7일간만 일념이 지속되면 화두의 뜻을 환히 알 수 있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정진할수록 화두에 집중되는 시간도 길어졌지만 7일은커녕 단 하루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대학 졸업 후 서울 외곽 포교당에 기거하면서도 스님은 한 순간도 화두를 놓지 않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야심경의 한 구절이 가슴 밑바닥에서 터져 올라왔고 갑자기 환해지면서도 한 없이 고요한 상태에 이르렀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느낌이었고 그 기쁨은 몰아의 상태에서 한 달간 지속됐다.

그러나 그 건 수행의 끝은 아니었다. 진리가 비로소 가슴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음은 알았지만 탐진치 삼독의 오랜 습은 좀처럼 비워지지 않았다. 하루는 한 재가자의 말에 크게 분심이 일었다. 놀란 건 오히려 스님이었다. 지금까지 옷이 인사 받고, 옷이 인사하고, 옷이 눈물짓고, 옷이 웃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스님이라는, 남자라는, 난 다르다는 상이 도를 막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스님은 이 때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화두조차도….

새벽예불과 참선이 끝나면 스님은 체육복에 모자를 눌러 쓰고 공원으로 갔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고 친해지면 스스럼없이 서로 말을 놓고 지냈다. 또 한밤중에 도봉산에 오른 것도 숱했다. 스님에게는 그것이 수행인 동시에 점검이었다. 그렇게 2년여의 세월이 흐르고 스님이라는 상, 잘났다는 상, 남자라는 상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을 무렵이었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홀로 옥상에서 포행을 하며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 때 저절로 화두에 들었고 갑자기 ‘나’가 보였다. 텅 비어진 우주가 내 몸인 것처럼 느껴지더니 고요한 가운데 나를 움직이고 밥 먹게 하는 나의 근원을 본 것이다. ‘아! 이것이구나. 이거야!’ 수십 년간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질문이 사라진 것도 이 때부터다.

“옛날 영가 스님은 육조스님을 찾아가 삿갓도 벗지 아니하고 주장자를 짚은 채로 서서 ‘무상과 신속함은 본래 없느니라’ 라는 말 한마디에 즉시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영가 스님이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다거나 상근기이기 때문이 아니었고, 진리 한마디를 온몸으로 흡수할만한 간절함과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의 즉흥성 살려 네티즌 지도

스님은 불교공부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부처의 성품을 갖추고 태어났기 때문에 어떤 한 구절에서도 즉시 자기의 본성을 깨닫고 불성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현재 화·수요일 밤 8시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홈페이지에서 『금강경』과 『전심법요』를 강의하고 있는 스님은 앞으로는 화상 채팅도 활용할 생각이다. 또 내년 여름부터는 온라인상의 회원들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내려 함께 수행하는 시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부처님 가르침보다 더 객관적이고 확신할 진리는 없다”고 강조하는 석우 스님. 종횡무진 인터넷을 누비는 스님은 전통 선으로 무장한 21세기 형 사이버 선객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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