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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장엄(莊嚴)

기자명 법보신문
마음이 만들어내는 잡음을 멈추고

내 안에서 울리는 고요함을 들어보라


아직 세상이 깨어나지 않은 초겨울의 새벽이다. 방금 일어나서 그런지 정신이 비교적 맑고 고요하다. 습관처럼 가만히 좌복(坐服) 위에 앉아본다. 그리고 조용히 들어본다. 세상의 소리, 내 안의 소리 그리고 세상과 나를 너머 있는 소리. 아무 소리가 없는 정막도 사실은 가만히 들어 보면 방안을 가득 메우는 미묘한 파장의 떨림이 있다. 이런 고요함 안에 있는 진동을 느끼다 보면 세상 전체가 나와 하나가 되어 함께 진동하는 것 같다. 소리를 듣는다는 것,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잘 듣기 위해서는 마음 안에서 만들어내는 잡음을 일단 멈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전을 펴 본다. 먼저 『법화경』에 나오는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을 소리내어 독경해 본다. 한문으로 읽다 보면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셨을 때의 모습이 그림처럼 내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하다. 특히 『법화경』이나 『화엄경』, 『아미타경』 같은 경전을 읽다 보면 경전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세계가 내 소리와 만나면서 또 하나의 세상을 그대로 만들어 내는 듯 하다.

특히 「묘음보살품」 제일 첫 구절은 더욱 더 그렇다. 「묘음보살품」 맨 앞 구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육계광명(六界光明)과 백호상광(白毫相光)이 세상 전체를 향해 비추시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소리내어 염송하다 보면 내 소리와 경전에서 말하는 빛이 하나가 되어 그 소리 속에서 바로 부처님의 광명의 가피를 받는 느낌이 든다. 염(念)하는 그 순간만큼은 빛과 소리라는 구분, 부처님과 중생이라는 분별, 2600년이 넘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공의 차이, 염하는 자와 듣는 자의 모든 나눔이 하나로 녹아져 내리는 것 같다. 아마도 이래서 과거 선배 스님들은 식음을 멈추시면서 간경(看經) 삼매에 빠지셨나 보다.

『법화경』 마지막 28품인 「보현보살 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을 펴 본다. 아 보현 어머니! 마지막까지 남으셔서 모든 중생을 현덕(賢德)으로 보살피시는 행(行)의 선지식이여! 「보현보살품」 한 글자 한 글자가 보현보살님인 듯 귀중히 정성들여 염송해 본다. 경전을 반복해서 자꾸 읽다 보면 경전 안에 일차적인 해석 외에도 다른 깊은 뜻이 보이게 된다. 아마도 그래서 중국 천태종의 지의 큰스님 같으신 분은 『법화경』 안에 삼층으로 구성된 깊은 뜻이 숨어 있다고 하셨나 보다.

보현보살님의 다라니 부분을 읽어 본다. 깊은 삼매에 들어가 있다 보면 그 삼매 특유에서 나오는 오묘한 신주가 바로 다라니인데 아직 그 삼매에 들어가 보지 못한 중생들에게는 그 다라니를 외움으로써 역으로 그 삼매에 들어가게 해주는 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라니를 한번 염하면 보현보살님과 인연을 맺는 것이고 두번 염하면 보살님과 기타 신중님의 위호를 받는 것이고 계속 염하다 보면 내 마음과 보현보살님의 마음이 만나는 경험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벌써 해가 떴다. 경전을 덮고 학교로 향할 준비를 해야 한다. 멀리서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 나와 노는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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