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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현장의 생애 8

  • 불서
  • 입력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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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기-혜소, 율사상 체계화

대승계율 성립과정에도 영향 끼쳐




현장의 유식학설은 원측과 규기(자은대사 기)라는 두 거목에게 계승된다. 두 사람을 따로 거론하는 이유는 원측과 규기 사이에 유식학설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있고, 또 양자가 현장 이후에 서로 다른 학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원측은 신라 왕손으로 성은 김(金), 이름은 문아(文雅)였다. '원측(圓測)'은 자(字)이다. 원측은 3살 때 출가하여 15살 때(628년) 당나라로 유학한다. 법상(法常), 승변(僧辨)에게서 유식사상을 배웠는데, 이 두 사람은 진제의 맥을 잇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원측도 진제 계통의 섭론학에 정통했다.

645년 현장이 귀국하자 원측은 다시 현장에게서 호법 계통의 새로운 유식사상에 접하게 된다. 658년 당 고종이 황태자를 위해서 서명사(西明寺)를 짓자 현장은 50여명의 대덕과 함께 잠시 이 절에 머문다. 원측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다음해 현장은 옥화궁으로 거처를 옮기지만, 원측은 현장과 동행하지 않고 거의 줄곧 서명사에 머물며 유식사상의 전법에 힘쓴다. 이 때문에 원측은 '서명대사'란 별명을 얻는다. 원측은 진제와 현장 양자를 다 '삼장법사(三藏法師)'로 존중하여 양자 사이에 논란거리가 생길 때마다 자주 진제의 학설과 현장의 학설을 회통시켰다. 이 점에서 현장의 학설만을 배타적으로 계승한 규기와는 대별된다.

규기라는 뛰어난 제자가 있었기 때문에 현장의 유식학설은 '법상종'이라는 하나의 종파로까지 성장한다. 규기는 현장의 역장에서 주로 필수(筆手) 역할을 맡았다. 현장이 번역한 불전 가운데 「성유식론」, 「변중변론(송)」, 「유식이십론」, 「이부종륜론」 등이 규기가 필수로 참여한 것이다.(「개원석교록」) 「성유식론」이, 세친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10명의 논사들의 주석을 망라해서 번역한다는 원래의 역경 목표에서 벗어나, 호법의 학설을 큰 줄기로 삼아 다른 논사들의 주석을 취사선택하는 정도에 그치는 현재의 체제를 갖추게 된 것도, 현장이 규기의 간언에 따랐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법상종'의 성립은 자은대사 기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법상종은 달리 '자은종(慈恩宗)'으로도 불린다.

원측의 학계 즉 '서명법계(西明法系)'는 도증(道證)-태현(太賢)(또는 大賢)으로 이어지다 쇠락한다. 규기의 학계 즉 '자은법계(慈恩法系)'는 혜소(慧沼)-지주(智周)로 이어지다 중국 내에서는 쇠락의 양상을 보이나 한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명맥을 보존한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 사람은 혜소이다. 혜소는 「성유식론요의등」을 지어, 규기의 설을 해설·보충하는 한편 원측과 도증 등 서명법계의 이설(異說)을 하나하나 논박하였다. 자은법계와 서명법계의 논쟁이 결국 자은법계의 승리로 끝나게 된 데는 혜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이 때문에 혜소의 「성유식론요의등」은 규기의 「성유식론추요」, 지주의 「성유식론연비」와 더불어 '유식삼소(唯識三疏)' 또는 '유식삼대부(唯識三大部)'로 불린다.

법상종은 불과 오륙십 년밖에 세력을 떨치지 못했지만 불교계는 물론이고 중국 사상계에 끼친 영향은 의외라 할 정도로 컸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기로 하자. 남산 율종의 창시자 도선(道宣)은 현장의 역장에 참여하여 윤문(潤文)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당시 계율은 「사분율」을 근간으로 하였지만 '계체(戒體)'(계를 받은 후 생기는, 선을 지향하고 악을 멀리하는 힘)의 본질에 관한 해석에서 많은 이설이 공존하고 있었다.

도선은 현장의 유식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능가경」, 「섭대승론」을 전거로 삼아, '계체'란 알라야식에 내장된 종자라고 하는 '심법계체론(心法戒體論)'을 주장하였다. 「사분률」은 본래 소승율이지만, 이를 대승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돌파구를 유식사상에서 찾은 셈이니, 동아시아에서 대승계율의 성립과정에 유식사상이 관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이종철(한국정신문화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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