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보림선원 7일 철야정진 현장
정릉 보림선원 7일 철야정진 현장
  • 법보신문
  • 승인 2005.01.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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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하나 붙들고
206뼈마디 저림 속
‘수마’와 사투

괴로운 첫 울음은
인생살이 시작이요
서글픈 끝 놀람은
이 세상을 등짐이니
들뜬 마음 가라앉혀
보리도를 밝혀내어
부처땅에 들어가는
동업보살 되고지고.
-백봉거사의 동업보살의 서원 中


1월 5일 새벽 3시30분 정릉 보림선원 법당. 그동안 정진했던 여러 도반들과 함께 예불을 마친 후 마지막 삼배를 드리던 최은미(43)씨는 갑자기 가슴 밑바닥에서 무언가 울컥 솟아오름을 느꼈다. ‘아! 나도 해냈다.’ 처음 두렵고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마침내 해낸 것이다. 지난 7일간 단 한숨도 안 자고 밤낮으로 정진했던 시간들이 마치 한 순간이었던 양 영상처럼 스쳐지나갔다.

최 씨에게 이번 7일 철야정진은 참으로 각별했다. 새파랗게 젊은 자신과 두 아이를 남겨 두고 갑작스레 세상을 뜬 남편. 이후 그는 하루하루를 마치 생살을 잡아 뜯는 듯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했다. 살 속 깊이 저미어드는 아픔에 죽음을 떠올렸던 것도 하루에 수십 번씩. 하지만 남편의 49재를 지내며 알게 된 불교가 삶의 크나큰 위로가 됐고, 다시 몇 년 후에는 이곳 보림선원과 인연이 닿아 참선수행까지 하게 됐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이번 7일 철야정진에 참여한 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었던 것이다.

의정부에서 통신회사에 근무하는 조희수(38)씨는 ‘멋진’ 연말연시를 보내고 싶어서 이번 정진에 참여했다. 가족과 보낼까 혹은 전통사찰을 찾아 기도로 새해를 맞을까 고민하던 중 이번 보림선원의 철야정진을 알게 돼 선뜻 마음을 낸 것이다. 평소 수행에 관심이 많아 십수일간 하루 10∼13시간씩 염불을 하기도 했고, 사찰에서 실시하는 3000배 정진에도 여러 차례 동참했었다. 그런 조 씨에게도 이번 정진은 두려움 자체였다. 일주일간 잠을 안 잔다는 게 사실 범부로서는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보림선원이 지난해 12월 30일부터 1월 5일까지 실시한 제62회 동계철야정진은 30대에서 80대까지 세대를 넘어선 청신남(淸信男)·청신녀(淸信女)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일주일 철야정진은 1973년 한국의 유마거사로 칭송받은 백봉 김기추(1908~1985) 거사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올해가 33년째다. 밤을 새워가며 하는 고된 정진은 인간의 욕망과 타성을 조복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깊은 선정의 세계로 이끌 수 있고, 특히 일상에서의 정진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백봉 거사의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여름과 겨울, 두 번 열리는 철야정진은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오직 화두를 붙들고 씨름해야 하는 혹독한 정진이다. 그런 까닭에 수십 번 참여했던 구참들도 일주일 철야정진이 벅차기는 마찬가지지만 특히 처음 참여하는 신참들에게는 극기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206개 뼈 마디마디가 모두 저려오고 신경세포가 없는 머리카락과 손발톱조차 아파올 정도다. 또 수마(睡魔)는 8만4000개 땀구멍으로 쉴 새 없이 쳐들어와 나중에는 화두는커녕 머리 속이 멀건 죽처럼 흐릿해지기 일쑤다. 나중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불쑥불쑥 밀려드는 거센 잠과의 싸움은 늘 고통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간혹 벌떡 일어나 뛰쳐나가거나 멀쩡히 앉아있는 것 같다가도 고목나무 쓰러지듯 쿵 쓰러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참선한지 10년 정도 했지만 이렇게 며칠씩 잠 안자며 정진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별의별 번뇌망상이 요동치더니 나중에는 그저 편히 잠 한번 자봤으면 하는 마음만 남더군요. 여럿이 하니까 했지 혼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했을 것 같아요.”(김점옥 씨.)

“73년 첫 회부터 시작해 이번이 58번째 일주일 철야정진입니다. 참 오랫동안 해왔지만 아직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예요.”(전근홍 씨.)

이렇듯 힘든 과정임에도 참가자 대부분이 혹독한 정진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데는 이곳 보림선원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있기때문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하루 7번 진행되는 설법이다. 백봉 거사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를 주로 듣지만 하루 한 번 이상은 보림선원 선원장 묵산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 백봉 거사의 도반으로 그와 법거량을 나누며 교우하기도 했던 스님은 매일매일 법문으로 수행자들을 격려하고 이들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이 몸뚱아리가 내 관리물은 될지언정 실제로는 내 것이 아니에요. 눈이 아닌 눈을 통해 보는 그놈, 귀가 아닌 귀를 통해 듣는 그 놈이 참다운 주인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아니라고 부정하더라도 부정하는 그 놈이 바로 온 우주의 주인공입니다.”

보림선원의 또 다른 특징을 꼽는다면 옛 화두를 그대로 참구하기보다 새로운 화두, 즉 ‘새말귀’를 참구하도록 권유한다는 점이다. ‘새말귀’는 백봉 거사가 주창한 것으로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을 하도록 하는 무상법신을 보고 듣고 알아차려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즉 ‘일상’에서 떠날 수 없는 재가불자들이 운전할 때는 법신으로서 운전하고, 일할 때도 법신으로서 일하고, 참선할 때도 법신으로서 참선함을 깨닫는 등 ‘허공으로서의 나’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법문과 재가불자들의 근기에 맞는 화두가 참가자들이 하루하루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정진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고 있다.

“지난 7일은 내게 참선이 주는 평온함과 함께 운명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어요.”(최은미 씨.)

“이전까지만 해도 참선은 스님들이나 하는 것으로 이생에서는 복덕이나 많이 쌓자는 퇴굴심(退屈心)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듭니다.”(조희수 씨.)

이들 외에도 “헛된 욕망에 끄달리지 않을 것 같다” “매일 아침마다 즐겁게 참선을 할 생각이다”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속속 떠오른다”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마음자리를 이번 정진기간 중에 찾았다” 등 나름대로 뿌듯하고 보람에 겨운 것은 한결같았다. 이 때문인지 모두들 피곤하고 지쳐보여야 할 듯싶지만 오히려 맑고 생기가 넘쳐난다.

새벽예불과 아침공양을 마치고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하나둘 발길을 돌리는 그들의 어깨 위로 차가운 겨울밤의 별빛들이 영롱하게 부서지며 바람에 씻기우고 있다. “생활의 노예가 되거나 주인이 되는 것도 모두 이 ‘마음’에 달렸습니다. 자기 자신이 온 세상의 주인공임을 부디 잊지 마세요.” 대중을 향한 선원장 묵산 스님의 마지막 법문이었다.

보림선원(www.borim.co.kr)은 7일 철야정진 외에도 매주 토요일마다 철야정진도 실시하고 있다. 02)914-6187
이재형·박주미 기자




백봉 김기추 거사는

한국의 유마거사 칭송
재가인 수행열풍 견인

백봉 김기추(1908~ 1985) 거사〈사진〉는 한국의 유마거사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50세를 훨씬 넘어 불교에 입문했지만 용맹정진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 20여 년간을 후학지도와 중생교화에 힘쓴 선지식이다. 일제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차례 수감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으며 해방 후에는 학교를 설립해 교육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백봉거사가 수행을 시작한 것은 1963년 6월, 그의 나이 56세 때다. 충남 심우사에서 우연히 무자(無字) 화두를 접한 그는 용맹정진을 하던 중 다음해 정월 『무문관』의 ‘비심비불(非心非佛)’이라는 글귀를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때 방광(放光)을 하고, 때마침 종소리에 ‘홀연히도 들리나니 종소리는 어디서 오나/ 까마득한 하늘이라 내 집안이 분명허이/ 한 입으로 삼천계를 고스란히 삼켰더니/ 물은 물 뫼는 뫼 스스로가 밝더구나’란 오도송을 읊었다.

이후 재가불교단체인 보림회를 결사한 뒤 금강경과 유마경을 중심으로 재가수행열풍을 일으켰고, 남녀노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대중을 오묘한 불교의 세계로 이끌었다.

전창열 변호사, 명호근 쌍용양회 부회장, 고려대 장순용 교수, 성태용 건국대 교수, 김진태 강릉지청장 등을 비롯한 1000여 명의 재가자들이 그로부터 참선을 배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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