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세상 열어가는 여몽 이지영 씨
금강경 세상 열어가는 여몽 이지영 씨
  • 법보신문
  • 승인 2005.01.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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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독송에 업장 무너지니
금강경만 살아 꿈틀거려
‘그래! 괴롭고 서러운 세상, 경전이나 실컷 읽고 죽자.’

95년 2월 20일 여몽(如夢) 이지영(44) 씨는 죽기로 결심했다. 출가자의 꿈을 접고 선택해야 했던 결혼, 하지만 잇따른 제왕절개 출산의 후유증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까닭 모를 남편에 대한 미움과 증오는 커져만 갔다. 남편 또한 집에만 들어오면 짜증을 냈고, 여기에 시댁과의 깊은 갈등은 그로 하여금 삶이 지옥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삶 자체가 지옥일 때 공부

이 씨는 업장소멸이나 하고 죽자는 생각으로 금강경을 손에 쥐었다. 통도사 덕도 스님의 간곡한 당부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금강경을 읽고 또 읽었다. 세살, 네살 된 두 아이들에게 밥 주고 씻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금강경 속에서 살았다. 금강경이라는 안식처에서는 시간과 공간개념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자신의 경 읽는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남편이 오는 것도 모를 때가 많았고, 심지어 삼중바닥 냄비가 타도 모를 지경이었다. 이렇게 몇 달이 흘렀다. 시댁 식구들의 불만은 물론 친정 언니들까지도 그런 이 씨에게 더욱 더 따가운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그는 흔들렸다.

“일시의 화목을 위해 공부를 그만두는 것은 물거품과 같을 뿐, 이곳에 참회도 있고, 미래도 있고, 화합도 있고, 악연을 좋은 인연으로 바꾸는 힘도 있어. 한 삼년만 부지런히 해봐. 그러면 그대가 만지는 물건도 편안함을 느끼고, 그대가 하는 말을 듣는 이도 편안함을 느끼고, 그대를 보는 이도 편안함을 느낄 게야.”

덕도 스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이 씨는 스님 말대로 금강경 공부를 계속했고, 하면 할수록 그 속에 빛이 있음을 조금씩 확신하게 됐다. 간혹 너무 힘들거나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 때면 ‘하기 싫은 놈에게 굴복되면 또다시 고통의 굴레에 얽매이고 말거야’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럼에도 망상은 봄날 비온 뒤 잡초 자라듯 했지만 이를 좇지 않고 다만 경만 계속 읽으려 했다. 간혹 산란해 도저히 공부할 수 없을 때는 바깥이 훤히 보이는 곳에 앉아 자신의 몸에 금강경 사구게(四句偈)를 들려주었다. 한자음을 들려주고, 그 뜻을 들려주고, 그렇게 계속 반복하기를 15분 정도 하면 번뇌와 어지러움은 어느새 잦아들곤 했다.

하지만 영양부족으로 그의 얼굴은 노랗게 떠갔고, 책을 오래본 탓인지 사물이 둘로 보였다. 이러다가 눈이 머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지만 ‘죽기로 작정하고 시작한 공부 이쯤이야?’하고 밀고 나갔다.

손가락서 피 터져도 정진

이런 그가 1만독을 돌파한 것은 그해 11월. 불과 9개월만이었다. 하지만 처음 기대처럼 확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동안 문제들의 원인이 오로지 자신에게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의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문제였고, 내가 변해야 가정도 세상도 바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어떤 유혹과 경계에도 끄떡없이 공부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금강경에 푹 젖었다는 점이다.

이 씨는 경전을 눈으로 보면서 귀로 자신이 읽는 경전을 듣되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그러나 바윗덩이 같은 업장 때문일까? 눈이 괜찮아질 무렵 이번에는 갑자기 숙변이 쏟아지더니, 어느 순간 멀쩡한 손가락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나중에는 손톱마저 빠져버리고 손가락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피가 솟구치기도 했다. 이 씨는 개의치 않고 경전을 독송했다. 스승도 “업장이 소멸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의 손길에 경전은 닳아갔고 붉게 물들어갔다. 하지만 고통보다는 묵은 체증이 씻겨 내려가듯 한없이 시원함이 느껴지고는 했다. 그렇게 또다시 1년가량 지나자 새 손톱이 나오기 시작했고 언제 아팠느냐는 듯 멀쩡해졌다.

이후 공부에 속도가 붙어갔다. 하루하루 망상이 스러져갔고, 처음 30~40분 걸리던 독송 시간이 줄어 나중에는 10분, 5분, 2분, 1분…. 결국 한 호흡에 금강경이 모두 흘러갔다. 안 읽었나 싶어 책을 보면 이미 읽었고, 또다시 의심을 하면서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그가 금강경을 삼키고 금강경은 그를 삼킨 것이다.

금강경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고요한 마음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했고, 그토록 미웠던 남편과 다시 사이가 좋아진 것은 물론 아이들이 아플 때 경전을 읽고나면 씻은 듯 낫고는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돈이 꼭 필요할 때면 어디선가 돈이 생겼고 여러 오해들도 실타래 풀리듯 저절로 해결됐다.

이 씨가 아이들에게 경전 공부를 하도록 한 것은 그의 자녀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그는 네 마디씩 끊어 불러주면서 아이들이 따라하도록 했다. 지훈이와 은하는 자유롭게 뛰놀면서 엄마를 따라했고 이렇게 한번 완독하는데 꼬박 1시간 30분씩 걸렸다. 금강경은 엄마로서 애들에게 줄 수 있는 ‘평생의 자산’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중학교 1학년인 큰 애와 초등학교 6학년인 작은 애가 착하고 성실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것도 오랫동안 경전을 독송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실제 지훈이는 금강경을 한 번 독송하는데 2~3분이면 가능할 정도로 대단히 능숙하다.

시간의 장벽을 뛰어 넘은 이 씨는 요즘 화두참구에 전념하고 있다. 화두를 잡으려고 해서 잡은 게 아니라 금강경 5149자가 어느 순간 ‘이뭣고’로 전환된 것이다. 집에 있을 때도, 시장을 다닐 때도,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말 할 때도 화두는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그런 이 씨가 지난해 9월초 ‘마음에 해 뜰 무렵(cafe.daum.net/mindprajna)’이라는 카페를 인터넷에 띄웠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지만 서로가 힘이 되어 함께 나가자는 취지에서였다.

수행 관련 홈피 개설

여기에는 큰스님들의 좋은 말씀을 비롯해 그가 지금까지 수행했던 과정들이 상세히 소개돼 있으며, 금강경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잘 설명돼 있다. 이 때문일까. 불과 몇 개월 남짓한 기간에 회원이 670명을 넘어섰고 금강경을 공부하겠다는 네티즌들도 잇따르고 있다.

때론 스승이 되어 때론 친구가 되어 삶의 무게에 아파하는 사람들에 길을 일러주고 함께 나가고 있는 이지영 씨. 이런 그가 초심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수행은 현실이랍니다. 이 괴로운 현실은 내가 수행할 때 비로소 행복으로 바뀔 수 있어요. 그러면 주변 환경도 그에 따라 모두 좋게 변합니다. 방법도 모르고 스승이 없다고요? 그건 단지 핑계일 뿐예요. 자신이 아는 만큼 몸으로 실천하세요. 먼저 공부하지 않으면 아무리 눈 밝은 선지식이 곁에 있어도 알지 못한답니다. 그러나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길을 일러주는 스승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죠.”
부산=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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