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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기자명 법보신문
태국 바다에서 해일과 만나는 순간

낙원도 지옥 ‘무상(無常)’도리 느껴


하필이면 그때 나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위에 떠있었다. 수마트라에서 시작된 지진의 여파로 해일이 일어날 때 나는 인도양이 바라보이는 태국 남단의 섬, 홍 아이랜드 (Hong Island)라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연말 수업이 없는 짬을 틈타 잠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고 그래서 궁리 끝에 생각해낸 곳이 바로 태국 남단의 조그만 섬이었다. 주위분들에게는 남방불교 순례겸 해서 잠시 다녀온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북경의 건조한 겨울 바람과 공해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따스하고 오염되지 않은 바다와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인도양의 섬과 내가 처음 만남을 가지는 바로 그 시간이 하필이면 세계 3대 재앙의 하나로 손꼽히는 해일이 불어 오는 순간이 될줄이야.

내가 기억하는 그날 아침은 청명한 파란 하늘의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크라비(Krabi)라는 해안 도시에 하루를 숙박한 뒤 다음 날 아침 일찍 섬으로 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해변으로 가서 태국 어부들이나 해변가 주민들이 주로 타고 다닐 것 같은 기다란 모터보트에 올라탔다. 그런데 같은 배를 타고 가기로 했던 독일 여행객들이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20분이나 늦게 배가 떠났다. 배를 타고 약 40분 정도 가니까 목적지인 홍 아일랜드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배가 섬에 가까이 다가가기 바로 직전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로부터 해일이 불어닥쳤다.

해일이 불어 올 때 내가 탔던 배가 섬 뒷부분에 있어서 해일이 파도의 큰 울렁임 정도로 그냥 지나갔는데 섬 앞쪽으로 배가 다가 가자 상황은 참으로 참담했다. 섬 해변가에서 놀던 사람들 중 두명이 사망하고 세명이 실종되었으며 여러명의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하자 우리는 바로 부상자 두명을 실고 다시 육지로 뱃머리를 돌려야만 했다. 부상자 중 한명이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쳐 바로 치료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배가 다시 육지에 도착하기까지 난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별의미가 없게 보였고 생로병사(生老病死) 자체가 고(苦)라시던 부처님의 말씀이 나의 골수까지 사뭇쳐 느껴지는 듯 했다. 오른쪽 다리 하나를 거의 잃어버리다시피 한 부상자의 손을 붙잡고 “괜찮아질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육지에 도착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그 순간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두번째 해일이 곧 불어 올 것이라는 선장의 말에 겁을 내는 승객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관세음보살님을 찾았고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부상자를 빨리 후송하는데 온 정신을 솟았다.

우리의 목숨은 참으로 부서지기 쉬운 것이다. 운이 좋아 나는 별탈이 없었지만 낙원과 같았던 곳이 한 순간에 눈앞에서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나니 남아 있는 생을 좀더 후회없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민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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