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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라 기도 15년 심원 김두만 거사

기자명 법보신문

20년 기도 업장소멸 후
화두 잡아 철벽 뚫을 터

한여름 삼복더위 속에서 장작 불 떼는 방안에 앉아 본 적이 있는가!

숨막히는 공간 속에서 무릎부터 머리끝까지 상체가 수직이 되도록 몸을 꼿꼿이 세우고 두 발끝으로 땅을 지탱하는 자세를 취하는 장궤합장을 하며 능엄주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해인사 아비라 기도에 동참한 수행인들이다. 1년 중 음력으로 1, 4, 7, 10월 네 번 열리는 이 아비라 기도에 심원(心源·속명 김두만 씨·48세)거사는 1990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해 올해로 15년째를 맞는다. 중국 출장 중에도 휴가를 받아 아비라 기도에 참여했을 정도니 그의 원력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집에서도 매일 예불과 108참회를 하며 기도정진을 하고 있는 심원거사는 아비라 기도 원력 20년을 회향한 후 참선을 하겠단다. 다겁생 동안 쌓인 업장을 녹인 후 화두를 들겠다는 그의 눈빛에는 벌써 선기가 번득인다.

1990년 초 그는 절망의 절벽에 서 있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사업가로서의 길을 걷던 그는 세파의 회오리에 모든 것을 날려야 했다. 남의 말만 믿고 빌려준 돈만도 수억원, 여기에 빚보증 까지 책임져야 했으니 집에서도 한심한 오빠이며 대책 없는 가장이고 멍청한 아들이었다. 어느 날 범어사 청련암에서 한 보살님으로부터 3,000배를 하면 성철 스님을 친견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당대 선지식이라 추앙받는 성철 스님을 만나 꼭 여쭙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재개하면 성공합니까?

그는 대중과 함께 해인사 백련암으로 향했다. 난생 처음 3,000배를 맞는 사람의 심정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끝없는 터널 속을 지나가는 느낌, 세상의 시간도 정지된 듯 했다. 육신의 고통이 그를 항복시켜려 했지만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3,000배를 모두 마치자 성철 스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를 흥분시켰다. 그 순간에도 그는 그가 그토록 하고 싶은 질문을 되뇌고 있었다. “빌려준 돈 다시 받을 수 있습니까? 사업 재개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까?”

대중과 함께 성철 스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섰다. 앉아계신 성철 스님을 보는 순간 그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토록 사무치게 묻고 싶었던 질문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소박함 속에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그에게 단 한마디만을 던졌다. “기도 열심히 해라.” 자신의 고정관념이 송두리째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다. 친견을 마치고 나오자 스님의 카리스마는 청량함으로 다가왔다. 그는 해인사 경내를 걸으며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설정했다. 매일매일 예불대참회문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 능엄주 독송은 물론 차 안에서도 능엄주를 들을 것, 이 원력은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잃지 않을 것.

성철 스님 친견 2개월 후 음력 7월 3,000배 때 인연을 맺은 여륜거사와 함께 백련암 아비라 기도에 참여했다.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원통전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한여름에 웬 장작불입니까? 방바닥은 시커멓게 타 있는데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장궤합장을 한 채 진언을 외우는데 사실 그 때 저도 동참했지만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것인가 하고 의아했습니다.”

한여름 장작불에 무릎 익어

앉은 지 10분도 안돼 땀은 비오듯 쏟아졌고 무릎은 뜨거운 방바닥 열로 인해 익어가는 듯 했다. ‘지옥이 따로 있는가 여기가 지옥’이라는 생각마저 든 그는 산문을 뛰쳐나오려 했지만 이미 차 열쇠도 맡겨진 터라 달아날 수도 없었다. 첫날이 지나고 이틀째를 맞이했지만 고통은 더해만 갔다. 고통이 더할수록 방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도 더해만 갔다. 삼일째를 맞이하며 참으로 묘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해괴망측하게만 생각된 이 기도가 왠지 거룩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육신의 고통이 클수록 내 업장도 두터울 것이라는 참회가 온 몸을 감싸자 고통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뱃가죽이 너무 당겨 말 한 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입에서 법신진언 ‘옴 아비라 훔 캄스바하’가 술술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희열이었다. 세속에서의 그 어떤 기쁨보다도 비교될 수 없는 희열이었다. 결국 그는 생애 첫 아비라 기도를 회향했다.

<사진설명>심원 거사는 15년전 성철 스님으로부터 받은 '일원상' 앞에서 지금도 기도한다.

기도 중 불보살 현신은 마일 뿐

성철 스님으로부터 불명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또 한 번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성철 스님으로부터 불명을 건네받는 순간 자신의 불명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심원.(心元) 이상했다. 함께 불명을 받은 도반들은 모두 ‘현’이나 ‘청’으로 시작되는데 자신만 ‘심’으로 시작됐다. 성철 스님이 말씀하셨다. “니 아비라 기도하믄서 3일째까지 욕 많이 했제? 다신 아비라 기도 안한다코 맴도 묵고 그제? 심원이 무슨 뜻인지 알제?” 또 한번의 충격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 순간은 지금도 아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성스러운 순간이었다.

이후 심원 거사는 자신이 세운 원력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갔다.

“성철 스님이 생전에 108참회와 아비라 기도를 하라고 하신 것은 분명 업장을 어느 정도 녹인 후 참선의 길로 들어서라는 뜻일 것입니다. 저는 큰 스님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그는 108참회와 아비라 기도를 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직감하고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나 사람과 자연을 보는 눈이 무엇보다 예전과는 달라져 있음을 알고 있었다. 기도 정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3년여가 되면서 꿈에서나 기도 중에 나투는 불보살을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성철 스님이 그런 것은 다 마(魔)이니 속지 말고 정진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그런 마는 아예 없습니다.”

이제 참선의 길로 들어섬직도 한데 심원 거사는 화두를 잡지 않고 있다. “저는 성철 스님을 친견한 직후 아비라 기도 20년 원력을 세웠습니다. 스스로 세운 원력이니 꼭 회향하고 싶습니다. 20년의 아비라 기도 정진이 참선 정진에도 큰 보탬이 되리라 봅니다. 적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심원 거사의 원력은 현재 다른데 있다. 본인 자신 보다 아비라 기도를 다른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다. “제가 3,000배는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3,000배를 마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비록 제가 아비라 기도에 입재해 회향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모셔 온 분 만큼은 회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자리이타 삶 배워 행복해

얼마 전 성도재일에 맞춰 심원 거사는 난생 처음 3,000배에 도전하는 불자를 인솔했다.

그 중에는 고3의 아들 김강률 군도 포함돼 있었다. 모두 3,000배를 회향하자 그는 자신이 처음 3,000배와 아비라 기도를 회향했을 때 보다 더 큰 기쁨을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타인을 위해 작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인 듯 싶습니다.”

성철 스님의 뜻을 순수무구의 마음으로 받아 정진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엿보며 우리 수행 풍토를 다시 한번 반조해 보았다. 그의 이러한 마음이 성철 스님이 전한 발심의 원력이요, 신심이요, 증도의 시작이 아닐런지.
부산=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아비라 기도 영험담 한 편

자동차 충돌 7m 날라
호수에 떨어졌지만 생존

1995년 삼흥피혁 중국지사에 근무하던 그는 통역인과, 경리, 운전수와 함께 아우디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차안에는 아비라 기도 육성 테이프가 내장돼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운전수 외에 다른 두 사람이 있기에 틀지는 않은채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사거리에서 운전수가 주춤주춤 거렸다. 오른쪽 차도 주춤주춤했다.

순간 심원 거사는 이상한 예감에 휩싸였다. “우리가 멈춰야 하는데…”주춤하던 운전수가 페달을 더욱 힘껏 밟았다. 상대 차 운전수도 가속을 붙였다. 아악... 하는 순간 오른쪽에서 달려오던 차가 자신이 타고 있는 승용차를 들이 받았다. 약 7m를 공중에서 날라 길 옆 호수로 떨어졌다. 3명은 사망했고 심원 거사만 살아남았다.

“확실히 기억하지만 차가 충돌할 때 아비라 기도 육성 테이프가 돌아갔습니다. 호수에 떨어지는 순간에도 아비라 기도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는 희미하게 멀어져 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한 순간 한 찰나에 일어났지만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듯 세심하게 느껴졌습니다.”기절해 있던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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