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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유심안락도』 저자 논쟁

기자명 법보신문
진찬(眞撰) 두고 韓·日 30년 논란

'가택설' 주장에 "사상적으로 원효의 것" 반박


신라 정토사상을 이해하는 지침서로 알려져 있는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의 진짜 저자는 누구일까.

1960년대 이전까지 학계에서는 『유심안락도』가 『무량수경종요』, 『대승기신론』과 함께 원효의 대표적 저술로 믿어왔다. 이는 『유심안락도』의 전반부에 『무량수경종요』의 문장이 상당수 인용돼 있을 뿐 아니라 일본 승려 장서(長西, 1184∼1128)의 『정토의빙경론장소목록(淨土依憑經論章疏目錄)』에서도 『유심안락도』가 원효의 저서로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14년 5월 경주에서 원효의 입적(入寂) 연대가 686년으로 기록돼 있는 ‘서당화상탑비’(誓幢和上塔碑)가 발견된 이후 이에 대한 연구가 뒤따르면서 ‘『유심안락도』를 저술한 사람이 원효가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는 인도 승려인 보리유지(菩提流支)가 706∼713년에 번역한 『대보적경발승지락회(大寶積經發勝志樂會)』와 707년 번역한 『불공견색신변진언경(不空견索神變眞言經)』의 문장이 인용돼 있는『유심안락도』의 제작시기가 원효의 입적 이후라는 점에서 비롯됐다. 즉 원효의 입적 이후 20년이 지나 번역된 문장을 원효가 인용했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1960년 일본 무라모찌(村地哲明) 박사는 「『유심안락도』 원효작설의 문제」라는 논문을 통해 “원효의 생존연대가 나타난 ‘서당화상탑비’가 발견됨으로써 『유심안락도』를 더 이상 원효의 저술로 볼 수 없다”며 “『유심안락도』는 원효의 입적 이후 후대의 특정인이 원효의 이름을 빌려 저술한 가택(假宅)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심안락도』를 원효의 저술로 믿었던 국내학계에서는 일본학자의 주장에 대해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동국대 안계현 교수는 「원효의 미타정토왕생사상」(역사학보 16권 1961년)이라는 논문을 통해 “『유심안락도』에는 원효의 『무량수경종요』와 동일한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원효와 비슷한 시대의 인물이었던 당(唐) 가재(伽才,∼648∼)의 『정토론(淨土論)』과도 동일한 부분이 상당수 발견된다”며 “이런 이유로 『유심안락도』가 후대의 인물에 의해 전적으로 가택된 것이라기보다 내용의 일부분을 후대 인물이 바꾸어 놓은 것(換置)으로 보여질 뿐『유심안락도』의 진짜 저자는 여전히 원효”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안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유심안락도』를 ‘원효의 저술로 볼 수 없다’는 일본학자들의 반론도 거세게 제기됐다. 일본 미나모도(源弘之) 박사는「조선 정토교의 연구」와 「신라 정토교의 특색」이라는 논문을 통해 “서당화상탑비를 통해 『유심안락도』는 원효의 저술이 아닌 것에는 틀림없지만 사상적 측면을 검토하면 중국과 일본의 정토신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라특유의 사상이 발견된다”며 “이는 『유심안락도』의 저자 및 저술시기가 원효의 입적 이후 후대 신라인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일본 오찌아이(落合俊典) 박사는 「『유심안락도』의 일본 찬술설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유심안락도』의 진짜 저자는 일본의 밀교승 또는 정토승”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논쟁의 범위를 확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본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동국대 고익진 교수는 “『유심안락도』는 원효의 『무량수경종요』를 인용, 부연, 보완(增補改編)하는 있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유심안락도』의 제작목적이 8∼9세기 신라사회에서 원효의 정토사상을 재선양하려는 의도로 보여 비록 제작시기가 원효의 입적 이후라도 넓은 의미에서 그 저자를 원효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동국대 보광 스님은 “『유심안락도』에 나타난 정토 사상을 검토하면 『유심안락도』의 제작시기가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며 “따라서 7세기 인물이었던 원효 스님의 저술로 보기보다는 원효 사상을 계승하려는 후대 특정인에 의해 가택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1960년∼90년대까지 30년이 넘도록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제기됐던 『유심안락도』 저자 논쟁은 7∼9세기 당시 신라 정토사상의 연구를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유심안락도』가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저술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추가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한다는 데 학자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권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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