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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을 꿈꾸며 무욕의 미소를 빚다

기자명 법보신문

조각가 김은현

무심히 그려넣은 선
깨달음의 정점인 듯
적멸의 순간인 듯

부처의 미소는 화두다
모든 미소의 절정이며
모든 미소의 극치다


김은현이 도조로 만들어 놓은 인물상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만들어지고 조각된 것이라기 보다는 살아서 몽상에 잠긴 듯한 미소다. 미소란 사전 정의에 의하면 “소리내지 않고 가볍게 웃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감정을 표출한다. 눈, 입, 관자놀이, 입아귀 등이 관련된 신체적 움직임인 미소는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인간적인 표현일 것이다. 인류가 가진 특수한 기호이자 사람들마다 고유하게 나타나는 표현인 미소는 언어와는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인류가 가진 특수한 기호

침묵 속에 감춰져 있는 바를 무언의 표정으로 드러내는 미소는 살아가는 내내 우리와 함께 하는 일종의 ‘하위텍스트’이다. 흙을 빚고 주물러 인간의 얼굴을 떠올리고 이를 불로 구워내 만든 이 도조는 특정한 이의 얼굴이기 이전에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누구의 얼굴도 아니지만 결국 모든 이의 얼굴로 다가온다. 날렵하고 경쾌한 선이 머리카락과 눈썹, 눈 그리고 코와 입술의 라인을 만들었다. 무심하면서도 더없이 세련되고 경쾌한 선은 흙의 물질성과 질료성을 일거에 휘발시킨다. 오로지 미소가 모든 것을 대신해 자존한다. 작가가 무심하게 그려놓은 선은 마치 이름 없는 도공들이 옹기나 그릇의 표면에 아무렇게나 휘갈긴 선들의 자치를 연상시킨다. 무욕과 무목적성의 순연한 장식 말이다.

이 얼굴은 작고 아담하고 풍성하다. 아울러 조각과 회화의 접점에서 진동한다. 흙덩어리의 육체성이 응축되어 있는데 밋밋한 부위에 순간 얼굴의 윤곽이 떠오른다. 대부분 길고 가는 눈이 감겨있고 마치 잠을 자는 듯, 꿈을 꾸는 듯, 몽상에 잠기거나 참선에 들 듯, 적멸의 순간인 듯, 깨달음의 정점인 듯 그렇게 멈춰있다. 작가는 그 얼굴들에 별 같은 이름들을 달아줬다. ‘처음 마음’,‘나 아닌 것이 없다’,‘기쁨’ 등이다.

얼굴은 풍부한 표현과 미세한 차이를 담고 있는 장소이다. 그런 면에서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다. 그 풍경은 개인성을 드러내고 유일성을 표현하는 최선의 수단이기도 하다. 김은현이 빚고 그린 얼굴은 여인일까. 나는 마치 중국 한의 무덤에서 출토된 토용들의 얼굴상을 떠올려본다. 성의 구분은 다소 모호하지만 분명 소녀나 여인의 상을 짐작케 한다. 침묵으로 절여진 공간에 그 미소만이 구름처럼 떠있다. 그래서 미소는 부표와도 같다.

“미소란 땅 위에 하늘이 잠시 나타나는 것”(크리스티앙 드 바르티야)이자 유토피아를 향해 열린 마지막 창이다. 가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저 미소를 올려놓는 나를 깨닫는다.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부처의 얼굴을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도 자욱하다. 얼굴의 관자놀이나 머리카락 부위에 슬그머니 새겨놓은 문양은 그것이 불상으로부터 기원하고 있는 형상임을 조심스레 알리는 표식 같다.

사실 부처는 아름답지도 않다. 그는 젊지도 않고, 언뜻 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으며, 짧은 머리에 둔중한 몸집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그런데 그는 늘상 미소를 짓고 있다. 마치 미소 자체만을 구현하고 있는 형상인 듯 도 하다. 부처는 항상 가수면의 상태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형국으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그 미소는 그것을 보여주는 자의 모습을 완전히 탈바꿈시키기에 이른다. 그가 부처이기 위해서는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둔중한 몸에 스며 있는 그 미소는 그의 몸에 가벼움과 탄력을 부여한다. 미소가 나이와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그 부동자세 속에 희망과 꿈, 믿음과 약속에 대한 상념을 불어 넣어준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다. 웃음인지 무표정한 것인지도 애매하다. 눈을 감고 유일무이한 인사와도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존재가 바로 부처다. 부처의 얼굴은 미소에 의해 승화된 이상적인 얼굴일 것이다. 그 미소짓는 얼굴은 약속을 변치 않고 지키리라는 확신을 은연중 심어준다. 보는 이들은 그 미소에 응답하고 순응하고 약속한다.

부처의 육신은 그 미소 아래 사라진다. 모든 물질적인 우연성과 몸의 무게를 미소가 벗겨낸 것이다. 마치 미소에 나타나 있는 환희가 근심과 삶의 고통에서 그를 해방시켜 준 것처럼, 인류에게 가장 고귀하고도 완벽한 희망을 전해주는 무욕과 선한 본성을 위해서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부처의 미소는 애초부터 해탈과 평정, 현자가 된 인간의 숭고한 자기집중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다른 미소와는 달리 부처의 미소에는 대상이 없다. 목적도 없고, 객체도 주체도 없다. 그러니까 부처는 스스로 빛을 발한다.

부처의 미소에 다가가는 것은 타자, 곧 우리들의 몫이다. 필요를 느끼고 그 미소에 빠져드는 것도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 우리가 충분히 오랫동안 다가간다면, 그리고 그렇게 집중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어떤 각성의 상태, 무아(無我)라고 표현할 수 있을 내적 인식의 상태를 읽을 수 있다.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미소는 일종의 화두다. 자신의 구원과 관련된 미소이다.

결국 부처의 미소는 모든 미소의 정수이고 절정이며 극치다. 우리의 모든 미소들은 오직 거기에 이르기를 꿈꾼다.

김은현은 적당한 크기로 자신의 손아귀가 허용하고 납득하고 감당할 만큼의 양을 주무르고 만지작거려서 얼굴, 두상을 빚어놓았다. 흙을 꼬박 밀면서 재료와의 교감을 나누다가 문득 얼굴을 부풀려놓은 것이다. 흙 그 자체를 최대한 존중한 자리에 약간의 개입, 최소한의 인위적 자취만을 남긴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손에 가장 익숙한 것이 얼굴이라 얼굴 형상을 남긴 것이다.

더없이 무심하기도 하고 그지없이 소박하면서도 한 얼굴이 지을 수 있는 평화와 휴식, 안온과 정신적인 충만함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수식과 치장을 거둔 자리에 그저 흙이 손과 만나 응고되고 결정화된 형태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미소만으로도 이 얼굴은 충일하다. 미소가 수수께끼와 같다는 것은 무엇보다 미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소는 눈에 보이며, 따라서 따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미소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만, 흔히 각종 수식어들이 뒤따르는 분석의 칼날을 피해간다. 미소는 아름다운 문명의 가장 소박하고도 가장 이상적인 이미지다. 그래서 모든 종교적 도상과 성상의 피부에는 미소가 얹혀져있다.

표현 절제 - 인위성 최소화

불상 및 모든 종교적 성상의 표정에서 만나는 경건함과 엄숙함, 따스함과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후광처럼 번지는 이 얼굴 앞에서 오래도록 서있었다. 이 작가는 흙을 반죽하는 과정에서 공기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차단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흙덩어리를 치댄 결과 자연스럽게 형성된 형태를 가다듬지 않고 그것에 충실하여 최소한의 얼굴 형상만 나오도록 손질을 가했다, 이 작고 아담한 크기에서 형태의 요철은 물론 중량, 양감, 질감 등이 촉각적으로 감촉된다. 표현의 절제를 통해 인위성을 최소화한 결과 형태는 단순, 소박하지만 원만한 표정을 통해 조화와 안정이란 미적 특질은 물론 종교적 차원의 여러 의미 역시 자연스럽게 고양되고 집중되어 있다. 이 미소는 하나의 약속이다. 김은현의 미소를 띤 두상 역시 우리에게는 신비스럽고 자비가 담긴 미소에 다름 아니다.
(미술평론, 경기대교수)

하루에 한 번은 꼭 『금강경』을 독송한다는 김은현 씨. 그의 작품에 배인 미소가 어디서 창출되는지 알 수 있을 것같다. 사진= 채한기 기자

김은현은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지었다. ‘처음 마음’, ‘나 아닌 것이 없다’, ‘기쁨’ 등이다. 그의 작품에 이름을 지어보자. 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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