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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미와 해인사 - 아름답고도 무서웠던 수행도량

기자명 법보신문
유랑적 기질을 발휘하여 시간만 나면 쏘다니곤 해서 계절에 따라 두어 번 들른 곳도 여럿 있건만 어찌된 셈인지 해인사는 그 뒤에 다시 가보지 못했다.

대학 4학년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12월의 끝이었다. 진학을 하려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자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여행이라도 떠나야겠다고 그나마 마음을 다잡았다. 겨울에는 물론이고 여름에도 늘 볼이 발그레해 연꽃 같았던 불심 깊은 선배가 소개해주어 해인사를 찾을 수 있었다. 잘 아는 스님이 해인사의 회계 스님으로 내려가 계신데, 찾아가면 원하는 만큼 묵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내 기억에는 그해 겨울도 여기저기 얼음이 꽝꽝 얼고 고드름이 추녀에 드리운 매서운 추위였다. 동안거에 들어간 산사의 한적한 경내에 거칠 것 없이 휘몰아치던 바람이 체감온도를 더 낮추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늦가을의 설핏한 찬 기운에도 엄살이 심한 편인데, 나는 그 추위가 시원하기만 했다. 마음이 답답한 탓이었을 것이다.

도착해 보니, 감로사의 중3, 고3 학생들이 졸업기념으로 내려와 있었다. 생각지 않은 동행을 만나 나는 그 학생들과 일정을 같이 했다. 그래서 첫날은 저녁 공양을 마치자마자 1,080배를 하게 됐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죽비가 사정없이 어깻죽지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때까지 절을 했다. 절을 하면 업장이 소멸된다고 했다. 1,080배를 마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 학생들과 미끄러지고 잡아주며 겨울 가야산에도 올랐다. 다들 잠든 밤에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교교하게 쏟아지는 달빛을 내다보며 스님들 몇과 말차를 마시기도 했다. 새벽이면 도량석을 도는 염불과 목탁 소리에 잠이 깼다. 머물던 내내 사찰은 방문객도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경내에서 마주치는 스님들은 눈빛도 예사롭지 않아 마음이 한없이 조심스러워졌고, 어쩌다 방문을 열면 면벽하여 선(禪) 삼매에 든 스님들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스님이 산을 타고 오른 좁은 길을 가리키며 이 길을 따라가면 백련암이 나오는데 그곳에 호랑이같이 무서운 스님이 계시다고 했다. 그분을 한번 뵈려면 삼천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스님이 절을 하고 한번 뵙겠냐고 물었다. 대개는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간다고 했다. 무소유의 청빈한 삶, 장좌불와 수행 등으로 기억되는 성철스님! 입적하셔서 세상이 떠들썩해지자 그때서야 나는 삼천배를 하고 성철스님을 뵈었다면 어땠을까 되돌아봤다. 내게 해인사는 한 스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생일대에 목숨을 걸고 해볼 만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용맹정진하는 도량처였다. 눈빛이 형형하여 쉬이 범접하기 어려워 보이는 기골이 장대한 스님들이 ‘목숨을 걸고’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선 수행하는 곳. 내 마음에 해인사는 정진하는 스님들로 가득하여 아름답고도 무서운 절로 오래도록 남아 있다.

도서출판 '산처럼' 대표
윤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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