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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길 벼랑에 매달린 [br]그 손을 놓아야 대장부!

기자명 법보신문

이뭣꼬 수행 觀海 조호정 거사

용맹정진 해야
수행 참맛 알고
평상 화두 잡아

“죽은 다음 공부하라”
혜암 스님 말씀
뼈에 새기며 정진


해인사 관음전에서 성철 스님이 내려오고 있었다. 60대에 접어든 관해 조호정 거사(69)는 성철 스님을 보는 순간 땅바닥에 엎드려 삼배를 올리고 여쭈었다.

“적수단도(赤手單刀) 살불살조(殺佛殺祖)라 했는데 단도를 쥔 자는 누구입니까?” 성철 스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은 채 그를 지나쳤다. 첩첩산중의 한밤중 호랑이 눈처럼 타오르는 성철 스님의 안광만 느껴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해인사 방장 혜암 스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올렸으나 혜암 스님은 “더 정진하라”는 한마디만 던졌고, 백양사 방장 서옹 스님은 “대부정”이라 했을 뿐이다. 답답했다.

임제가풍의 대표문구인 ‘적수단도 살불살조’! 『임제록』을 들추지 않더라도『선가귀감』만 펼쳐보면 접할 수 있는 이 선구는 수행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터. ‘살불살조’의 뜻을 모를 리 없었을 관해 거사는 분명 선지식으로부터 한마디 들어야 가슴이 뚫릴 것 같았을 것이다. 관해 거사는 더 정진해 갔다. 혜암 스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수행의 깊이를 더해야 선지식들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개구즉착(開口卽錯)입니다. 선구 하나만 풀리면 모든 게 실타래 풀리듯 모든 게 술술..... 잠시 착각에 빠졌던 겁니다. 세분의 선지식이 보여주신 그 뜻을 이제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일찍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경남 김해에서 출생한 어린 조호정이 들었던 한마디다. 독실한 불자였던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허황옥의 동생 허보옥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장유암에서 불공을 올렸다. 조호정 집안 어른들은 섣달 그믐날이면 장유암에서 철야 불공을 올리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와 설을 맞이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15살이 되면서 ‘죽음’과 마주했다.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사춘기의 가슴에 다가온 ‘죽음’은 단순히 ‘어머니를 잃은 슬픔’만을 전하지 않고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연세대 상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1960년 4월 19일 해병대에 입대했다. ‘5.16혁명’ 당시 소대장이었던 그는 격동의 한국사를 온몸으로 느끼고는 월남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장에서의 수많은 죽음을 보았던 그에게도 죽음은 어느덧 공포로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법회 시간이었다. 당시 김성근 군법사는 장교와 사병, 기술자 가족들로 이뤄진 가정법회를 이끌었다.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맺은 불교와의 인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 생활과, 죽음, 그리고 불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서로 엮여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셋이 아닌 하나였다는 사실은 훗날 알 수 있었습니다.”

해병대 소령으로 제대한 그는 1971년 김성근 군법사와의 인연으로 삼보법회에서 불교활동을 시작했다. 삼보회에 몸담은 거사들과 함께 그는 운허, 관응, 탄허 스님 등 당대 최고강백을 초청, 감로법문의 법석을 마련하며 정법선양에 힘을 모았다. 그는 운허 스님의 『능엄경』강의를 듣고서야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문을 풀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의문을 품었다. 상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서구식 합리 사고로는 불교의 인과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따라서 그의 불교교리 탐구열은 높아만 갔고 그에 따른 신심 또한 돈돈해 갔다.

그런 그가 ‘이제 수행을 하겠다’고 발심한 것은 그의 나이 45세가 되어서였다. 대각사에서 혜암 스님을 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혜암 스님이 그의 그릇을 짐짓 알아보고 “화두 있느냐?”고 물어왔다. “아직 없습니다”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혜암 스님은 종이 한 장 꺼내 한 자 적어 주었다. ‘시심마’.

이후 관해 거사는 당시 영암 스님이 지도하고 있던 봉은사 시민선방을 비롯해 선학원 시민선방, 전강 스님과 송담 스님이 주석했던 용화사, 정일 스님이 머물렀던 우이동 보광사. 백봉 김기추 거사의 선기가 꿈틀거렸던 정릉 보림선원 등의 선방에서 정진해 갔다. 이즈음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스님으로 유명했던 수덕사 혜암 스님도 만나 지도를 받았다.

관해 거사는 해인사 달마선원에서 철야정진 했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종교법인으로 등록한 삼보회는 1991년 초대 이사장으로 관해 조호정 거사를 추대했다. 따라서 관해 거사는 5년 동안 삼보회 활동에 매진하느라 자신을 돌볼 수 없었다고 지금에야 털어놓았다.

“수행과 일상사가 다른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 때 선방에서 목숨 걸고 정진하고 싶었었습니다. 승가의 선객처럼 안거를 나 보고 싶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삼보회에 양해를 구하고 해인사로 내달렸다. 전 종정 혜암 스님이 직접 지도하시는 용맹정진에 뛰어보려는 일심 때문이었다.

“오후 불식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기에 저도 처음엔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식의 힘이 그토록 클 줄은 몰랐습니다. 재가불자 모두 혜암 스님을 믿었기에 군소리 없이 따랐습니다. 일정 프로그램을 마치자 대중 전원은 이 자리서 ‘다시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간청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도인과 도량, 도반과의 인연은 참으로 중요하고도 소중한 것입니다.”
관해거사는 해인사 재가선원과 용화선원에서 만도 7안거와 5안거를 보냈다.

이러한 경험을 한 그였기에 지금도 수행인이라면 누구나 용맹정진을 해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행의 참맛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밥 안 먹고, 잠 안 잔다고 되나? 용맹정진과 깨달음의 상관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재가불자는 수행을 한다 해도 습이 남아 있는 게 사실 아닙니까? 용맹정진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정화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용맹정진을 해야 수행정진의 용기를 북돋우고 그 힘으로 평생 동안 화두를 놓지 않습니다.”

그에게 수행최대 고비는 어떤 때였을까? 그는 이에 대해 최대고비 보다는 가장 중요한 시점을 짚어주었다.

“화두가 잘 안될 때입니다. 당장 그만 두자니 지난 수행여정이 너무도 아깝고, 계속 하자니 화두는 들리지 않을 때. 바로 이때가 최대고비이면서 가장 중요한 때라고 봅니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공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된다고 했습니다. 이 공부는 1식, 2식, 3식 등이 하는 게 아닙니다. 제8식이 하는 것입니다. 초발심을 잃지 않고 정진해 가는 도중 자연스럽게 공부되는 것입니다. 행주좌와가 안 된다고 포기하시는 분도 많은데 3년만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분명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뭣고’ 수행만도 20여년인 관해 거사이건만 지금도 혜암 스님이 하신 말씀을 잊지 않고 있다. “공부하다 죽어라 하는데 나는 아니야. 죽은 다음에 공부해야 해!” 관해거사는 스님의 이 한마디 속에 ‘상신실명’(喪身失命)의 깊은 뜻이 함축돼 있다고 전했다. 크게 한 번 죽어야 크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천길벼랑에 매달린 손을 놓아야 장부라 하지 않았던가!(懸崖撒手丈夫兒)

지금도 관해거사는 인천 용화사 앞에 작은 방 하나를 얻어 정진하고 있다. 삼보정사와 용화사를 오가며 성성적적의 삶을 이어가는 69살의 관해 조호정 거사. 그의 인생역경과 수행여정을 올곧이 담은 그의 눈빛에서 매화 한 송이를 보는 듯 했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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