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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야보스님 해설 - 적멸의 바다를 향해 몸을 던져라

기자명 법보신문
{冶父}惺惺著 정신 차려라!

<보충설명> 야보스님의 송입니다. ‘성성착(惺惺著)’이라는 말은 선문(禪門)에서 ‘정신 차려라!’ 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번뜩번뜩 정신차려서 청정한 경계도 잘 엿보고 곧 시작될 부처님의 설법에도 귀를 잘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說}惺之一字 或以爲了慧 或以爲寂靜 則惺惺者 定慧圓明 寂照不二之 謂也 只如定慧圓明 寂照不二 作麽生道 眼掛長空 手握靈鋒
‘성(惺)’이란 한 글자를 '밝은 지혜'라고도 하고 혹은 적정(寂靜)이라고도 하니, ‘성성(惺惺)’이란 곧 정(定)과 혜(慧)가 원만히 밝아서 적(寂)과 조(照)가 둘이 아닌 것을 말한다. 다못 정과 혜(定慧)가 원만히 밝아서 적과 조(寂照)가 둘이 아닌 것(=>大機大用)을 어떻게 말 하겠는가? 눈은 긴 허공에 걸어두고, 손에는 신령스런 지혜의 칼날을 잡은 모습이로다.

<보충설명> 적(寂), 조(照), 정(定), 혜(慧)는, 모두 언어가 끊어진 체득의 경계이며 우리 본분의 자리인 진리 즉 一着者의 형용입니다.

飯食訖兮洗足已 敷座坐來誰共委 向下文長 知不知 看看平地波濤起
공양을 다 잡수시고 발을 씻어 마치시고 자리를 깔고 앉으셔서 누구와 함께 대화하려고 하시는가? 장차 벌어질 소식을 아는가 모르는가? 조심조심 살펴라. 평화로운 땅에 엄청난 파도가 일어날 것이다.

<보충설명1> 부처님께서 자리를 펴고 고요히 앉아 계신 침묵의 순간 뒤에 21년 동안의 큰 설법이 이어질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선정 뒤에 이어지는 언설과 문자의 큰 파도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조심조심, 정신 차려 살펴야 한다고 야보스님이 한 말씀 거들었습니다. 바야흐로 반야의 설법이 전개되려는 순간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수보리도 되고 아난도 되어야 합니다.
<보충설명2> 誰共委의 '委'는 맡기다, 막히다, 말하다, 알다의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말하다'의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서간문에서도 不委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 때의 '委'는 '알다'의 뜻이므로 '不委'는 '알지 못하겠습니다'로 해석합니다.
<보충설명3> 向: 여기서는 '마음을 기울여~'의 뜻입니다.

{說}入城乞食 收衣洗足 敷座宴座 一一皆是徹困爲人底時節 入城乞食 收衣洗足 且置 只如敷座宴坐 作麽生道 高提祖令發光寒 直得毘耶 口掛壁 這裡 除却上上根 未免一場麽羅 根機莫等 要以多方 接得

입성걸식, 수의세족, 부좌연좌의 낱낱 모습 모두는 중생의 곤(困)함을 뚫기 위한 시절인 것이다. 입성걸식과 수의세족은 접어두더라도 다만 자리를 깔고 편안히 앉은 그 모습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조사의 가르침을 높이 이끌어 그 광명을 꽃피움이 차가우니 곧 비야리성에서 입을 벽에 걸어 둔 것과 같다. 부좌연좌 속에서는 상상(上上)의 근기를 제외하고는 한 마당의 허탈한 심경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근기가 같지 않으므로 반드시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중생을 대접하여 깨닫게 해주신 것이다.

<보충설명1> 祖令은 조사의 가르침으로서 침묵이나 棒이나 喝로서 진리를 표현하고 傳燈하는 가풍을 말합니다. 이런 가풍은 수승한 근기의 사람이 아니면 본지풍광의 그 뜻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상근기 중생을 위해 선정이라는 방편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중근기 중생을 위해 설법을 해주기도 하고 하근기 중생을 위해 그 밖의 여러 가지 방편을 사용하셨습니다.
<보충설명2> 毘耶의 口掛壁은, 비야리 성의 유마거사가 문수보살에게 不二의 법문을 요청받았을 때 침묵으로서 응답해준 일을 말합니다.
<보충설명3> 麽羅는 선정의 부처님 모습만으로는 불법의 큰 뜻을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허탈한 심경을 갖게 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獲鳥者 羅之一目 不可以一目 爲羅 治國者 功在一人 不可以一人 爲 國 所以 黃面老子 曲爲中下 乃下一步 向言說海 橫身而入 東說西說 橫說堅說 所以 道 高提祖令當機用 利物 應知語帶悲 向下文長 正以此 也

새를 잡는 것은 그물의 한 코이나 한 코만으로는 그물이 될 수 없고,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공로는 한 사람에게 있지만 한 사람만으로는 나라가 될 수 없다. 그래서 황면노자께서는 중하의 근기를 위해 곡진하게 한 걸음 내려 언설의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지고 東에서도, 西에서도, 橫으로도, 竪로도 설하셨다. 이런 까닭으로 말하건대 “조사의 가풍을 높이 이끌어 大機大用에 알맞게 하였으니,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에 자비의 말씀이 스며져 있음을 마땅히 감지하라.” 하였으니, 부좌이좌 아래의 긴 설법이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然 慈尊 伊麽施設 要之利害 不細 還知得利害也未 入城乞食收衣宴座 以至東說西說橫說豎說 善權方便 卽不無 據實而觀 人人分上 如靑天白 日相似 本來無爲無事 盡大地 都盧是淸平世界 黃面老子 向淸平世界上 施設戈甲 可謂無事中起事

그러나 자비로운 세존의 이러한 시설(施設)이 요컨대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는데 그 것이 상세하지 않으니 도리어 利로움과 害로움을 알겠는가 아닌가? ‘入城乞食收衣宴座로부터 東說西說橫說竪說에 이르기까지 좋은 방편이 없지는 않지만 실상에 의거하여 관찰해보면, 사람마다의 분상에 청천백일(靑天白日)과 같은 것이 있어서 본래 함도 없고 일 삼음도 없어서 눈앞에 보이는 모든 대지(大地)가 다 맑고 평등한 세계지만, 황면노자께서 맑고 평등한 세계를 향하여 창이니 갑옷이니 시설(施設)하시니, 일 없는 가운데 일을 일으켰다 할 수 있다.

<참고> 서장에 보면 묵조선을 공부했던 李參政이 부처님이 오도하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산을 내려오는 모습을 송(頌)하여 대혜스님에게 바친 내용이 나옵니다.

出山頌(李參政)
眼皮盖盡三千界 鼻孔盛藏百億身
箇箇丈夫誰是屈 靑天白日莫謾人
눈꺼풀은 삼천대천세계를 다 덮고,
콧구멍은 백억의 몸을 담아서 감추었도다.
낱낱 모두가 장부인데 누가 누구의 설법을 듣겠는가?
청천백일인데 세존이시여, 사람들에게 거짓말 마십시오.

<보충설명1> 盛藏의 ‘盛’은 담는다는 뜻입니다.
<보충설명2> 이 詩는 석굴암 柱聯에도 씌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법신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법신의 자리에서는 四海의 큰 바다도, 더 나아가 아무리 큰 우주라도 물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李參政은 “이 크나큰 진리를 갖추고 있는 낱낱 장부에게는 옳고 그름, 나와 남 等을 설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부처님은 언설의 바다에서 是是非非를 조장하십니까? 부처님의 언설은 결국 진리의 그림자이니 거짓말일 뿐입니다.”라고 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상근기의 사람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 우리 같은 중하근기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뱁새가 황새걸음을 쫓기 어렵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어 우리도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챙기면서 공부해 나가야 합니다.

所以 道 看看平地波濤起 又古人 道 澄澄性海 湛湛智源 文字言詞 從 茲流出 則黃面老子 向大寂滅海 繁興言說波瀾 要之言說波瀾 初非外來 終不離於大寂滅海 敷座處 如末薦得 向言說海 薦取 始得 所以 道 看 看平地波濤起
그런 까닭으로 야보스님은 “조심조심 살펴라. 평화로운 땅에 파도가 일어난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고인이 말하기를 “맑고 맑은 성품의 바다와 담담한 지혜의 근원이여! 문자와 말들이 모두 여기에서 흘러 나왔노라.” 하였으니, 이는 곧 황면노자께서 대적멸의 바다를 향하여 언설의 파란을 번성하게 일으키신 것이다. 요컨대 언설의 파란이 애초부터 밖에서 온 것도 아니고 마침내 대적멸의 바다를 떠난 것도 아니니, 만일 자리를 펴고 앉은 禪定에서 거듭 거듭 깨닫지 못하면 언설의 바다를 향하여 거듭 거듭 취하여야 비로소 얻는다. 그래서 이르시되 “조심조심 살펴라. 평화로운 땅에 파도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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