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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의 불교미술인을 찾아서 - 손연칠

기자명 법보신문

최고 예술을
꿈꾸는 사람
신라·고려를 보라!

<사진설명>석굴암 본존불 재현에 여념이 없는 손연칠 씨는 "김대성의 꾸짖음을 듣고 있다"고 말한다. 그 꾸짖음은 "보살도를 행하라"는 것이다.

손연칠은 동국대학교 불교미술과 1회 졸업생이다. 대학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하고 또한 부처님을 만난 그는 이를 선택한 이래 지금까지 줄곧 불교미술의 전통을 계승하고 이를 독자한 조형체계 속에서 융화해내려는 다양한 시도를 선보여온 작가로 기억된다. 인간문화재인 석정 스님에게 불화를 사사했으며 오랫동안 불화 연구에 몰두했다. 불화를 연구하면서도 단지 불화를 그리는데 급급해하지 않고 이 땅의 수많은 불상을 연구하면서 한국 불타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경주서 신라미술 체현

불화의 현대화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가 그의 고민인 셈이다. 불교이미지란 결국 시간과 시대의 변화 앞에서 매번 새로운 양태로 환생하는 것이 마땅하다. 신라의 불교이미지와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 불교이미지들이 각각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이 시대의 불교이미지가 또한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는 정통 한국회화의 근원이 되는 불교미술이라는 뿌리로부터 새로운 싹을 틔우려는 지난한 시도를 전개해왔다. 1995년에 감로화(甘露畵)의 형식을 응용해 만든 작업은 그 독특한 시도와 성과로서 주목받았다.

불화에서 터득한 채색기법뿐만 아니라 칠보기법에서 추출해낸 동유화 기법을 사용하는 한편 한국적 금박기법까지 아우르면서 그가 그려낸 불화이미지는 무척 자생적인 기법의 구사와 응용, 색채감각이나 질감표현,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구성 방식 등에서 주목되는 작품이었다.

당시 그의 작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천수천안관세음’(千手天眼觀世音)이란 그림인데 금박을 바탕으로 한 대형화면에 여러 개의 성난 부처의 눈들을 그리고, 그 눈동자 속에 현대사회의 온갖 비리와 끔찍한 현실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함축적이면서 간결한 구성에 오늘날 관세음상의 도상이 새롭게 해석된 그림이었다.

그런가하면 다른 작품들은 수도(修道), 전법(轉法), 출가(出家), 사문유람(寺門遊覽), 정각(正覺) 등의 제목을 단 그림들로서 금박과 추상적인 구성 등으로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그림이었다.

이후 한 동안 그의 그림을 접할 기회가 드물었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의 작업실을 가게 되었다. 경기도 용인 동림리의 한 커다란 창고 건물에서 그를 만났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반가운 만남었다. 작업실은 예상했던 것과는 무척 다른 모습이었다. 그림은 없고(다만, 몇 개의 수묵인물그림이 있었는데 그것은 동양화를 전공한 그의 아들이 그려놓은 것이었다)금불상 하나가 가운데에 놓여있고 양쪽으로 석굴암 본존불을 찍은 대형 사진 두 장이 걸려있었다. 마치 법당을 꾸민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의 설명을 듣는 순간 너무 이외라 놀랐다.

그를 볼 수 없었던 몇 년간 그는 온통 석굴암 본존불을 재현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다 바쳐왔던 것이다. 고려불화를 재현하다가 끝내 한국불상의 최고의 경지인 석굴암 불상의 재현까지 나간 것이다. 전통적인 동양화 정신과 불교미술의 접목을 시도한 그는 불화와 불교미술의 전통이 단절된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이를 복원하고 해석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고려와 조선시대 불화를 거쳐 지금 이 시대의 불화를 어떻게 제작할 것인가가 그 위에 덧씌워진 또 하나의 고민이었다. 이 시대의 불화와 불상이 전통의 맥을 이으면서도 오늘의 필요로 환생하기 위한 여러 시도는 지난하고 어려운 일인데 반면 그것에 대한 불교계의 이해는 무지한 편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스님들 대부분이 전통미술에 대한 안목과 불교미술의 계승과 현대적 수용에 대한 인식이 무척 고답적이거나 보수적인 것이다.

현대 한국불교미술계는 그런 의미에서 좋은 전통의 이론적. 정신적 맥락에서 벗어나 있거나 키치화 되어 있다. 대부분 일본불상(목불상)의 아류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사진설명>천수천안 관세음 | 해인사 아미타 후불탱화 | 해인사 미타원 천정벽화

조선불상 집착현실 안타까워

한국불상의 최고의 경지는 단연 반가사유상과 석굴암 본존불이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스님들, 불교계는 비례도 맞지 않고 수준도 떨어지는 조선시대 불상에 눈이 익어 그 모습의 재현만을 고집하거나 그 격이 떨어지는 수준에 만족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까 진정으로 훌륭하고 수준높은 우리의 전통과 불교이미지에 대해 무감하다는 것이다.

고려불화의 재현과 이의 새로운 해석에 치중했던 그가 비로소 불상에 눈을 돌리고 이를 재현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한 이유의 일단이 여기에 놓여있다.

경주 동국대학교 미술대학에 재직하면서 경주에 자리한 그가 신라불교미술의 정수를 체현하게 된 것도 그런 인연일 것이다. 비로소 경주에서 그는 눈을 떴다고 한다. 경주라는 공간이, 그곳의 수많은 불교미술의 걸작들이 그의 개안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는 비로소 그곳에서 깨달았다고 한다. 한국미술의 특질이 바로 이 불교미술에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불교미술을 깊이 있게 공부할 필요가 있음 또한 깨닫는다. 한국미술의 최고의 경지는 그에 의하면 다보탑, 석가탑, 석굴암, 반가사유상 같은 것들이다. 중국미술이 와전성의 추구에 가닿은 흔적이고 일본은 완벽성에 대한 강박이라면 한국미술은 완숙성에 다름 아니라고 말한다. 그간 한국미술의 특질이 어리숙 하고 좀 못나고 소박하고 무심한 것이란 믿음은 식민주의의 소산이고 왜곡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 미술계는 통상 한국미를 그런 시각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재현하고 지극한 경지로 오독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불교계 역시 조선시대의 불상이나 이미지에 자족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그는 회화전공자지만 조각작업에 뛰어들었다. 왜냐하면 현재 조각하는 사람들이 석굴암 본존불의 재현에 미치지 못하고 이를 할 생각도 안하는 형편에 자기라도 해야 했던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 재현에 혼신

석굴암 본존불이 요 몇 해 동안 그의 화두인 셈이다. 그는 살던 아파트까지 팔아 이곳 작업실로 내려와 작업에 투자하고 있다. 조각의 기초부처 스스로 터득해가며 석굴암 본존불에 대한 연구와 이해에 수년을 보냈다. 몇 번을 해도 실패했고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깨달았다. 예를 들어 얼굴도 가만 보면 좌우가 대칭이 아니다. 부처의 특징은 지혜와 자비다. 그 둘을 한 몸에 한 얼굴에 지닌 이다. 지혜는 날카로운 예지며 자비는 부드러운 용서와 화해다. 지혜와 자비란 두 덕성을 한 얼굴에 표현하기 위해 한쪽 볼은 통통하게 표현했고 다른 한 쪽 선은 다소 예리하고 날카롭게 표현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 하나 본존불의 이해를 거듭하고 그것의 재현에 관한 다양한 시도를 현재 하고 있는 그의 작업실 공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 본존불의 재현과 싸우는 그의 노고를 증거해 주는 뜨거운 곳이었다. (미술평론·경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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