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라만상 - 경주 황룡사 달빛 기행

  • 불서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보름달빛 속에서 신라를 느껴봐”

경주 여행전문 ‘신라사람들’의 ‘달빛여행’

다섯 살부터 일흔까지 다양한 연령대 참여

역사 현장 탐방 후 차 한잔과 연주회도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본지가 새로 기획해 연재하는 ‘삼라만상’은 톡톡 튀는 신행 현장을 찾아가 불자들의 생생한 삶과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 내는 코너로, 불자나 사찰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화제성 신행활동을 소재로 한다. 본지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런 신행, 삶과 함께 하는 일상적인 신행, 불자들이 쉽게 동참할 수 있는 신행을 격주로 ‘삼라만상’에 소개해 재미나는 신행 풍토를 조성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3월 30일 오후 7시 20분 경주 황룡사 터. 벌써 주위는 몇 m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하다. 여느 가정에서야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담소를 나눌만한 이 시간, 황룡사 터와 마주 앉은 분황사 매표소 입구에는 60~70명은 더 돼 보이는 사람들이 어둠에 묻혀 있다.

경주 여행 가이드 전문 회사인 ‘신라사람들’이 매월 한 차례 보름달이 뜨는 날이 포함돼 있는 주 토요일 저녁마다 실시하는 달빛 기행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불자들이다. 굳이 종교 색을 띄지는 않지만 대부분 신라시대 때 조성된 불탑이나 사찰, 경주 남산 등이 달빛 기행 코스이기 때문에 참가 대중 대다수가 불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날 기행으로 35회를 맞이한 달빛 기행은 특별한 형식이 없다. 4년째 꾸준히 실시해 오면서도 변변한 자료집이나 프로그램 일정표 따위 하나 없다.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기행을 만들어 가는 ‘스케치 여행’이 달빛 기행의 형식이라면 형식이다.

이날 역시 간략하게 참가자를 확인한 후 30여 명은 분황사로, 다른 30여 명은 황룡사 터로 향했다.

“돌탑 형식은 한국에서 특허를 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황룡사와 함께 신라의 국찰로 평가되는 분황사의 모전석탑은 조직이 세밀한 ‘안산암’을 다듬어서 쌓은 것입니다. 자 안산암을 한 번 만져 볼까요.”

달빛 기행은 여행 가이드 이홍렬 선생의 ‘일반’을 뛰어넘는 ‘독특한 시각의 문화재 읽기’로 진행된다. 문화재에 대한 설명은 학술적이면서도 사실에 입각한 설명보다는 ‘탑을 왜 이렇게 크고 높게 쌓았는가’, ‘왜 돌 웅덩이가 많은가’ 등 평소 불자들이라면 의문을 가졌을 법한 내용에 집중된다.

“왕권이 약했던 선덕여왕이 분황사를 신궁의 의미로 중창하게 되었기에 모전석탑은 현재의 규모보다 훨씬 웅장하고 높았을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분석과 해설이 달빛 기행 나름의 설명 방식이다. 울산에서 왔다는 한 주부 불자는 다음 번에는 꼭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참여해 살아 있는 지식을 체감케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달빛 기행의 재미난 점은 ‘고정된 형식 파괴’ 이외 에도 참가 계층이 특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5살 바기 어린이에서부터 70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 계층이 다양하다.

한 차례 참가 인원이 평균 50여 명에 달한다고 했을 때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이미 달밤에 경주 지역의 문화재를 탐방한 셈이다.

선덕여왕과 김유신, 김춘추 등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인물과 분황사에 얽힌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참가자들은 황룡사 탑 터를 돌았다.

“자 높이만도 80m 였습니다. 아마도 탑 꼭대기에 오르면 서라벌 땅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을 것이고 달빛에 비친 경주의 기와 지붕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눈을 감고 한 번 상상해 볼까요.”

변방의 침략을 불심으로 저지해 보려했던 신라사람들, 그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느끼려 기행 참가자들은 주춧돌 64개가 발굴돼 있는 탑 터를 법당 삼아 걸터앉았다.

눈을 살며시 감으면서. 눈을 감은 불자들 앞에는 곧이어 따뜻한 녹차 한 잔이 놓였고 봄바람을 탄 피리와 기타 연주 소리가 불자들 사이를 헤집었다. 달빛 기행의 백미인 ‘차와 불탑, 그리고 음악’이란 주제의 작은 연주회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날 연주회에는 보름 달빛은 초대받지 못했다. 날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80m에 달하는 탑을 중수할 수 있을 만큼 빼어난 기술력을 간직한 신라사람들을 이번 기행에서 만나 보셨습니까.”

여행 가이드 이홍렬 선생의 의미 있는 질문과 함께 4시간 가까이 진행된 황룡사-분황사 달빛 기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신라사람들 054)748-7707



아들-딸과 달빛 기행 참가한 이상율 씨

"신라인 돼 탑돌이 하니 화목 두 배"



“오늘은 달이 안 떠 아쉽지만 달빛에 비친 경주의 불교 유적은 보는 이들에게 ‘타임 머신’을 타고 신라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경주에는 불탑과 사찰 대신 현대식 건물과 빌딩이 들어서 있지만 밤과 달빛은 그대로이기 때문이지요.”

해마다 10차례 이상 ‘신라사람들’이 주관하는 경주 달빛 기행에 참가하고 있는 이상율(37·경주시 황성동) 씨는 달빛 기행의 첫 째 매력은 ‘참가자들을 신라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옛 신라 사람들 역시 봄이 무르익는 3~4월이면 여기저기 꽃이 흐드러진 사찰 주변에서 달빛을 벗삼아 차도 마시고 지인(知人)들과 함께 합장한 채 탑돌이를 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3월 30일 분황사와 황룡사 터에서 진행된 제 35회 달빛 기행에 딸 가형(8)이와 아들 민형(5)의 손을 잡고 참가한 그는 “신라 사람들도 낮에는 일상에, 그러니까 생업에 종사했을 것이고 밤이 되면 사찰 주변의 평평한 둔덕이나 마루에서 담소도 나누고 떡도 나누어 먹었을 것”이라며 달빛 기행을 가족간의 화목을 돈독하게 할 수 있는 신행 프로그램으로 소개했다.

김 씨는 이어 “늘 책이나 인터넷으로만 봐 왔던 문화재를 자녀들에게 직접 만져보게 하고 체감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달빛 기행과 같은 프로그램”이라면서 “문화재 탐방에는 언제나 자녀와 부모가 함께 하는 것이 좋다”며 나름의 원칙을 내놓았다.



경주=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