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정념, 바르게 명심하기

기자명 법보신문
  • 불서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마음 평정-통찰력 성취’ 돕는 곧은 생각

신병 교육대의 어떤 교관은 이제 군대의 훈련에 어느 정도 적응되었다고 자만하는 듯한 군인들에게, 그 자만심을 불식시키기 위한 색다른 훈련법을 강구했다. 교관은 수영복 차림으로 저마다 몸매를 자랑하는 처녀들이 즐비한 해변으로 군인들을 데려고 갔다. 행렬을 흩트리며 소리지르는 군인들을 방관하던 교관은, 군인들에게 바닷물을 가득 채운 양동이를 머리에 이게 하더니, 그들을 그 처녀들 사이로 행진하게 했다. 행진의 도착 지점에는 물을 흘린 양에 따라 가혹한 기합을 줄 험악한 훈련 조교들이 대기하고 있다.



추구하는 바 효과적으로 달성

짐작컨대, 이 훈련에서 기합을 면한 군인은 거의 없었을 듯하다. 사실은 우리도 매일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물을 많거나 적게 흘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오늘 꼭 잊지 않고 해야 할 일, 오늘 특별히 주의할 일 등을 마음에 새기면서 하루를 시작하지만, 이 명심은 자신도 모르게 발생한 다른 관심이나 잡념에 쉽게 뒤섞여 버리곤 한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는 개별적인 중요한 일에 부닥치면 그때마다 그 일에 전념하여 목적을 달성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필요한 것을 명심하여 잡념에 빠지지 않는 노력의 효용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명심의 상태가 특별한 경우에만 잠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그만큼 더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정념이다.

명심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인간의 심리적 속성은 한결같은 명심의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인간의 심리 활동은 하나를 생각한다면서도 잡다한 상념에 뒤섞이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잡념을 차단하는 집중의 방도가 필요할텐데, 이것이 바로 정념이다. 번뇌가 되는 잡념이 차 오르지 않도록 바른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정념이다. 이러한 정념이 없으면 번뇌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그래서 중아함경에서는 물병에 물이 바닥나서 텅 비게 되면 곧바로 물을 채워 두듯이, 정념의 물을 병 속에 가득 채워야 한다고 비유한다.

마음이라는 병에 항상 가득 채워야 할 정념의 물은 신뢰할 수 있으면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유익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것을 포괄적으로 표현하여 ‘바른 법’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정념은 항상 바른 법을 마음에 새겨, 잊지 않고 혼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앞에서 예를 든 군인 이야기의 원본은 잡아함경에서 정념을 설명하는 비유이다.

어떤 사람이 기름이 가득 찬 납작한 그릇을 머리에 이고서 미녀들 사이를 걸어갈 때, 한 방울이라도 흘려서 머리를 적시면 당장 목을 베어 버린다고 칼을 뽑아 든 자가 대기하고 있다. 정념이란 이때 미녀들에게 한눈파는 일이 없도록 머리 위의 기름 그릇만을 생각하는 것을 가리킨다.



몸과 마음상태 반성하는 것

정념의 명심이 추구하는 것은 다른 관념과 뒤섞여 혼동하지 않도록 경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떠올릴 수 있는 직관적 통찰력이다. 그래서 이런 통찰력이 가능하도록 인식의 영역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 정념의 임무라고 한다. 즉 정념은 마음의 평정과 통찰력을 성취하도록 돕는다. 정념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잡념의 요인들을 감시하면서, 그 요인들 밑에 위장되어 있는 장애들을 붙들어 이것들이 유해한 작용을 일으키기 전에 내쫓는다.

불교에서는 전통적으로 명심의 대상을 네 가지로 제시하는데, 이것을 4염처(念處)라고 한다. 4염처는 일찍이 불교에서 기본 명상법의 하나로 중시되었으며, 대념처경(大念處經)에서는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수행자에게 4염처란 육신(身), 감정(受), 마음(心), 온갖 현상(法)이 무상한 것이라고 사실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정념이란 바른 관점을 마음 깊이 새겨서 잊지 않고 반성하는 태도라고 이해할 만하다. 이 점에서 정념은 바른 억념(憶念)과 같다. 입보리행론에 의하면 동요하기 쉽고 유혹되기 쉬운 마음을 제어하는 것으로서, ‘몸과 마음의 상태를 반성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