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과 공명하는 삶
대자연과 공명하는 삶
  • 법보신문
  • 승인 2005.05.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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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이 바로 법신이로구나
대자연과 교감하는 삶이 참 삶


바야흐로 봄의 한 가운데에 와 있다. 지난 달 매화, 산수유를 시작으로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이 피어나더니 이제는 철쭉과 영산홍, 수수꽃다리, 미선나무에서 꽃이 피어나고 또 앵두꽃, 복사꽃, 배꽃들도 아름답게 피고 지며 이 아름다운 생명의 4월을 마감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고개를 숙이고 산길을 걷다 보면 제비꽃, 별꽃, 꽃다지, 양지꽃, 민들레, 냉이꽃, 광대나물들이 발 아래 한창이고 또 원추리, 씀바귀, 고들빼기, 냉이, 쑥 등의 봄나물이 봄 기운을 흠뻑 느끼게 해 준다.

또 숲은 어떤가. 4월 초까지만 해도 침묵하던 숲이 중순이 지나면서부터 수런수런 초록이 물들기 시작하더니 몇 일 되지 않아 감쪽같이 숲색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4월 한 달을 보내었다. 물론 바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바쁜 가운데 내 마음을 지켜보듯 대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며 한 템포 늦출 수 있는 여유를 가졌고, 어떨 때는 꽃마리 하나 피어나는 것을 보겠다고 한 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대자연의 변화에 발맞추어 내 마음도 내 온 몸도 봄과 함께 피어났다.

꽃마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수많은 봄꽃들 가운데에서도 꽃마리처럼 작고 앙증맞은 꽃이 또 있을까. 갓난 어린 아이 새끼 손톱보다 더 작다고 하면 얼마나 작을지 짐작이 가려나. 그만큼 작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도무지 이것이 꽃인지 알 수 없을 정도. 모르긴 해도 꽃마리라는 이름은 좀 들어 보았던 사람들도 꽃마리라는 꽃이 우리 주위에 지천으로 퍼져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정신 없이 살고 있다. 우리 곁에 있는 대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며 교감하고 그 소박하지만 깊은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는 생명의 정신이 많이 희미해 졌다. 봄이 오고 온갖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꽃사태를 이루지만 우리 마음 속은 여전히 차가운 겨울이지는 않은가. 산색이 지난 한 달여 동안 완전하게 옷을 갈아 입었지만 그 사실이 우리에게는 별 의미 없이 다가오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나 또한 대자연이란 길동무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전에는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이 자연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이 살았다. 그러나 내 안에 대자연이 깊이까지 들어오고 난 뒤부터 내 삶은 그야말로 확연하게 바뀌었다. 대자연과 공명하는 삶은 그 어떤 깨어있음과도 같은 성성적적한 적요를 가져온다.

이렇게 대자연을 관찰하고 교감하다 보면 어느덧 나 자신이 대자연의 일부가 된 듯 나와 대자연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일체감의 비춤 속에서 본래부터 고요한 대자연의 성품을 바라보게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야말로 '첩첩쌓인 푸른산은 부처님의 도량이요 맑은하늘 흰구름은 부처님의 발자취며 뭇생명의 노랫소리 부처님의 설법이고 대자연의 고요함은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했던 옛 사람의 뜻이 사무쳐 온다. 법신불은 이렇게 늘 대자연으로 나투고 있다. 대자연과 교감하고 하나되는 것이야말로 법신부처님을 늘 우리 곁에서 친견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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