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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설선대법회 원 융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좌선=면죄부’
‘어림없는 소리
‘이 생에 마치지 못 하면
‘밥중’이요 ‘골동품’일 뿐!


<사진설명>원융 스님은 법석에서 "옛 조사들이 걸어온 이 길에 올라야 생사를 해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범어사 10대 선사 초청 설선대법회가 회향을 향해 가고 있다. 4월 23일 범어사 보제루에는 평소 대중법회 법상에서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해인총림의 원융 스님이 여덟 번째 법주로 나서 4천여 사부대중을 위해 ‘화두는 조사공안’이라는 주제로 법문을 설했다. 원융 스님은 “간화선이 ‘조사선’의 최상승 도리를 이은 수행법”이라며 “현대사회에 맞는 새로운 화두를 바라기 보다 기존의 조사공안 중 하나를 택해 목숨을 걸고 참구하라”고 강조했다. 이날 법문을 요약 개재한다. 편집자 주

포수 덫에 걸린
맹수가 살려 몸부림치듯
목숨 건 일전으로
화두 들어야 소식있어

8식은 ‘제8마귀’
여기에 주착하면 착각도인
백척간두 진일보 하듯
오매일여까지 정진해야



중국의 원안 선사는 “화두라야 비로소 탄탄한 관문에 도달한다”고 했습니다. 조사관문은 문 없는 문인 ‘무문관’입니다. 항우 장사가 쇠망치로 때려도 안 부서지는 문이고, 십지보살도 열 수 있는 문이 아닙니다. 오로지 부처님 법을 철저하게 사무쳐 깨달은 묘각지 보살이라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부를 점검할 때 화두 공안으로 점검을 합니다. 구경도리에 요달하는 것도 화두를 깨쳐야만 가능합니다. 화두를 깨치지 않고 팔만대장경과 이론서를 외우고 읽어도 아무런 소용없고 오로지 화두를 깨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조계종은 부정할 수 없는 육조 문하생들입니다. 지금 당장 화두가 없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이미 참선 문중에 들어온 것입니다. 따라서 화두가 없으면 지금이라도 배워서 화두를 생명으로 삼고, 부처님으로 삼아 정진해 가야 합니다. 화두만 제대로 깨쳐 요달하면 부처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불한다는 말은 하면서 진정으로 성불한 것이 무엇인줄 모릅니다.

법당에 부처님 32상 80종을 모셔놨는데 여러분은 부처님하고 똑 같은 상호를 갖춰야만 부처가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냥 중생 그대로 자성을 요달하면 부처가 된 다는 것을 모른다 말입니다. 혹 안다 해도 믿지를 않습니다.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원오극근 선사의 이야기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원오극근 선사는 “마치 포수들이 놓은 덫에 걸린 맹수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덜컥 올가미에 걸린 맹수가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덫은 더 조여 옵니다. 다리가 끊어질 정도로 점점 조여 오지만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칩니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어서 끊고 도망을 쳐야 살지 걸렸으니 죽는 수밖에 없다고 포기하면 포수가 바로 잡아버립니다. 바로 그 맹수처럼 화두를 들라고 한 것입니다. 옛 스님들도 생사의 올가미로부터 뛰쳐나와 오로지 살 수 있는 한 가닥 길은 화두를 깨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화두를 깨쳐야만 생사를 해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화두를 타파 하지 못하면 생사해탈을 못한다 하는 것입니까? 증도가에 “법의 재물을 덜고 공덕을 없앰은 심의식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음이라.”(損法財滅功德 莫不由斯心意識)했습니다. 모두가 심의식의 장난입니다. 여기서 심의식이란 제8식인 ‘아뢰야식’을 말합니다.

수행을 통해 이 아뢰야식 경계까지 오면 도인인 줄 착각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미세 망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이것마저도 버리지 못하고 주착해 버리면 마치 자신이 도인 경지에 올라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는 도인행세만 하려 듭니다. 그래서 ‘마삼근’을 말씀하신 동산 선사는 이를 두고 ‘제8 마귀’라고 한 것입니다. 바로 이 심의식 경계를 초탈해야만 생사해탈 도리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 8식까지도 초탈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화두타파입니다.

그러니 폼 잡고 좌선해서 호흡 고르고, 앞 뒤 둘러보고, 체면보고 할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 덜커덕 덫에 걸려서 ‘아차’하는 이 순간을 놓치면 내가 포수한테 잡혀 죽게 돼 있는데 앞 뒤 옆에 돌아볼 겨를이 없단 말입니다. 체면불구하고 거세게 달려들어 이 오랏줄을 끊고 도망쳐야 합니다. ‘화두만 깨치면 성불한다’는 조사 스님들의 말을 믿고 하루라도 빨리 정진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화두가 없으신 분들은 유나 스님께 달려가서 화두 달라고 조르셔야 합니다.

수좌 사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화두만 한 공덕 갖고도 염라대왕한테 안 끌려간다.”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원오극근 선사 법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평생 총림에서 이가 누렇고 머리가 허옇도록 살면서 이 도리를 모르면 총림의 골동품일 뿐이다.” 골동품은 가치는 있지만 용처가 없습니다. 또한 선가에서 일컫기를 ‘총림의 뒷방승’이요, 뒷방승이 ‘총림의 밥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도리 끝내 못해 마치면 밥중이라 이 말입니다. 저도 내일 모레 칠십인데 ‘밥 중’소리 안들을 수 없을 것 같아 참 걱정입니다. 선방에서 참선한다고 면죄부 있다 생각하면 절대 안 됩니다. 화두를 든 이상 목숨 걸고 열심히 하라는 얘기입니다.

제 변명 같긴 하지만 이 공부에도 시절인연이 있습니다. 대혜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성이 뜻을 알고자 할진대 마땅히 시절인연을 관찰하라. 시절이 당도하면 그 뜻은 저절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금생에 저도 숨넘어가기 전에 한 소식 할 스님이 있을 것이라는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중국 원나라 고봉 스님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15살에 머리카락을 깎는데 머리카락 떨어진 자리에 하얀 좁쌀 같은 것이 잔뜩 떨어지는데 가만히 보니까 모두 사리인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도인이었던 것입니다. 고봉 스님처럼 선근 공덕이 아무리 많아도 시절이 있어야 익는 법입니다.

15살에 출가한 고봉 스님은 21살에 선방에 들어가 설암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화두를 드는데 잠이 하도 와 몸 하나도 주체를 못한데 이르자 3년 동안 해 마치지 못하면 죽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서서 참선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고봉 스님은 오조 법연 선사의 사구게 말후구인 “백년 삼만 육천 날에 되풀이하고 되풀이한 놈은 바로 이 놈”을 보고 한 소식 얻었습니다. 고봉 스님은 그 때 이른 경계가 어떤 경계인지도 모르면서 누구한테 점검도 받지 않고 구경각에 이른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몇 해가 흘러 설암 스님이 점검해 볼 마음을 먹고 물었습니다. 저 놈이 한 소식 하긴 했는데 어떤 살림살이인지 모르겠거든요. 설암스님이 “일간호호시(日間浩浩時)적에도 일여(一如)하냐? “예.” “그럼 꿈에서도 일여하냐?” “예.” “그러면 잠에 푹 들어서 꿈도 없을 때도 일여하냐?” 그땐 캄캄하거든! 고봉 스님은 “아무것도 없습니다”했습니다. 설암 스님은 이에 “아직 깨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몽중일여엔 이르렀지만 오매일여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봉 스님은 여기서 더 정진해 인가를 받았습니다.

간화선은 분명 최상승법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는 불성이 있습니다. 지금 화두를 드시기 바랍니다. 나태한 마음으로 드는 것이 아니라 간절하게 화두를 들면 분명코 시절인연이 닿아 한 소식 얻을 것입니다. 옛 조사 스님들이 걸어 온 길입니다. 여러분들도 그 장정에 올라 생사를 해탈하시기 바랍니다.

글·사진=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원융 스님은

원융 스님은 1938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스님은 1972년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성철 스님의 법맥을 이어 받은 스님은 지금까지 30년 넘게 해인사 선방에서 참선수행 중이다. 스님은 2004년까지 7년간 조계종 기본선원의 교선사를 맡았으며, 좬서장좭 강의로도 유명하다.



질 의 응 답

<사진설명>4000여명의 대중이 청법가를 부르며 원융 스님을 향해 합장하고 있다.

“한 화두 깨치면 1700공안 타파”
- 흥 수 스님

Q 화두가 조사공안이라면 선지식 스님께서 납자들을 제접 하실 때 이시대의 화두를 직접 제시해 주시면 좀더 확고한 믿음으로서 눈 밝은 공부인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님의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A 의정이 돈발해서 간절하게 화두를 참구할 수 있느냐는 당인의 신심과 원력여하에 달려 있다. 화두를 한 순간도 끊어짐이 없이 간절하게 하는 것이 요령이다. 끊어짐이 없는 것은 의심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의심이 들리는 경지다.
요즘처럼 무인지경에서 근기 살피고, 심천 살피고 할 수 없다. ‘1700 공안’ 운운하지만 ‘조주무자(趙州無字)’, ‘간시궐(乾屎獗)’,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 ‘일구읍진 서강수(一口汲盡 西江水)’, ‘마삼근(麻三根)’ 등 종문의 대표적인 한 화두만 깨치면 다른 화두도 다 통하게 되어 있다.
옛날 조사 스님과 공부하는 참선납자 사이에는 법을 묻고 대답하는 기연(機緣)이 있었다. 고봉, 대혜 스님처럼 법을 확철히 요달한 도인이라야 공안을 말하고, 주며, 새롭게 생산할 수 있다.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화두를 얘기하는데 그런 경지가 아니라면 새로운 화두라고 적용할 수 없다.

Q 간화선을 최상승선이라고 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지요?

A ‘최상승 도리’, ‘조사선 도리’라는 명칭은 좬육조단경좭에서 유래된 말이다. 좬육조단경좭에서 “최상승법을 의지해서 수행하면 결정코 성불한다”는 말씀이 있다. 즉 육조 스님 문하에서 전승되는 참선을 최상승법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데, 화두 참선이 옛날 조사스님들이 참구해서 깨친 그 법, 그 바탕, 그 전통을 그대로 전승하는 법이다.
전통은 겉으로 흐르는 흐름만 보지 말고, 속에 흐르는 지하수맥도 볼 줄 알아야 한다. ‘황무지’라는 시를 쓴 T.S 엘리어트는 “전통은 밖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고 안으로 흐른다”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간화선 참선법이 육조 스님 당시, 내지 그 이전과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는 좀 다를지언정 깨침의 구경법을 말하는데 있어서는 일치하므로 ‘조사선 도리’를 계승하는 참선법인 것이다.


“적적에만 머물면 구경각 요원”
- 김윤환 거사

Q 선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말하지만 대혜종고 스님도 좬서장좭을 남겼기 때문에 오늘날 간화선이 성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경전을 읽어서 믿음을 깊이하고 예비지식을 갖춘 뒤에 수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보십니까?

A 단적으로 말해서 공부 방법을 거꾸로 한 것이다. 좬서장좭의 요지는 삿된 법은 꺾어서 무너뜨리고, 바른 법을 드러내는데 있다. 바른 법은 조상공안인 화두를 확철히 깨쳐서 자성을 요달하는 것이다. 대혜 스님께서 삿된 법이라고 한 조동묵조선은 “번뇌망상 일으키지 말고 무조건 그냥 쉬어라”고 강조했기 때문에 질타한 것이다. 우리 종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침으로써 생사해탈법을 찾으려는 것인데 자성을 깨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냥 조용한 곳에서만 머무르려 한다면 이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사람 버리고 법 버리는 법이다.
참선하는데 있어서 지식, 문자는 차라리 모르는 것만 못하다. 이 문중에서는 미련한 놈이 최고인데 말짱 영리한 놈밖에 없다. 머리, 문자, 글, 지식으로서 해결하려고 하니 큰 문제다.
깨달음의 지름길로 가는 간화선을 목숨 떼어 놓고 한번 해보라. 좋은 도리가 나온다.

Q 간화선이 유행하기 이전 당나라 조사들이 행하였던 참선 수행의 방법은 어떤 것입니까. 아울러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A 화두가 생기기 이전의 참선법은 스님들마다 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달마 스님의 벽관이다. 그 다음 ‘신심명’을 저술한 삼조 승찬 대사께서는 본분 도리에 입각해서 참구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다. 사조 도신 대사는 여래선 도리를 말씀하셨는데 요체는 일행삼매다. 하나에 초점을 맞춰서 옮겨가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육조스님이 단경에서 말한 일행삼매의 내용은 ‘직심불착’, 곧은 맘으로 행하되 법, 진, 망, 일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육조스님 문하로 내려와서 마조, 백장, 황벽, 임제 스님 이렇게 연결되는 대조사 스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신 내용이 여래 청정선이다. 여래 청정선이 우리 종문에 화두가 생기기 이전에 전통적으로 내려온 참선의 내용이고 이념이다. 후대에 조사선과 여래선 도리를 두고 ‘여래선은 얕고, 조사선은 깊다’고 오해를 하는데, 종문의 바른 참선법은 여래청정선이었다. 여래선이 곧 조사선이고, 조사선이 가장 수승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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