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나옹 스님의 ‘고루가’ 중에서
④ 나옹 스님의 ‘고루가’ 중에서
  • 법보신문
  • 승인 2005.05.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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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해골이여, 어리석고 완악하구나
이 마른 해골은 몇 천 생 동안, 축생이나 인천(人天)으로 허덕였던가. 지금 진흙구덩이에 떨어졌거니, 반드시 전생에 마음 잘못 썼으리. 한량없는 겁 동안 성왕(性王)에 어두워 6근은 이리저리 흩어져 푸르고 누런데 치달렸으리니. 다만 탐욕과 애욕만을 가까이 할 줄 알았거니, 어찌 머리 돌려 바른 광명 보호했으랴.

이 마른 해골은 매우 어리석고 완악하여 그 때문에 천만 가지의 악을 지었지만 하루아침에 없음과 있음이 공임을 꿰뚫어 보았더라면 촌보(寸步)도 떼지 않고 벗어난 몸 찼으리라. 그 당시의 좋은 시절 등지고, 이리저리 허덕이며 바람 좇아 날았으리.

권하노니 그대는 빨리 머리를 돌려 진공(眞空)을 굳게 밟고 바른 길로 돌아가라. 모였다가 흩어지고 떴다가 가라앉나니 저승이나 이승이나 마음 편치 않으리. 다만 한 생각에 능히 빛을 돌이키면 단박 생사 벗어나 뼛속 깊이 들어가리. 머리에 뿔이 있거나 뿔이 없거나 삼도를 기어 다니면 어찌 능히 깨달을 수 있으리오. 세세생생에 자꾸 씨앗을 그르치면 처음도 끝도 없는 괴로운 곳에 낳으리 3도의 고통스러운 과보를 어떻게 떠나리.

문득 선각(先覺)들의 교훈을 의지하면 여기에 비로소 그 잘못을 알게 되리라. 혹은 어리석거나 혹은 탐욕과 분노로 곳곳에서 혼미하여 번뇌의 먼지(‘妄塵’)를 뒤집어쓰네. 축생이나 귀신의 세계도 마음이 지은 것이요, 천당도 지옥도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 성인들은 본래 마음을 크게 깨달은 사람이다.

머리뼈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졌거니, 본래의 그 면목은 어디 있다 할 것이오. 생전에도 그르치고 죽어서도 그르쳤거니, 세세생생에 또 거듭 그르치라.

만일 한 생각에 무생(無生)을 깨달으면 그르침이란 원래 그르침이 아니네. 추한 데도 집착하고 고운 데도 집착하여 집착하고 집착하면서도 깨닫지 못하였네. 단박 한 소리에 얼른 몸을 뒤쳤으면 눈에 가득 허공이 모두 떨어졌으리라. 혹은 그르거나 혹은 옳거나 시비의 구덩이에서 항상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죽은 뒤의 백골무더기 깨닫지 못했거니, 당당한 데 이르러도 자재하지 못하도다.

이 마른 해골이여, 한번 깨달으면, 광겁(廣劫)의 그 무명도 단박 재가 되리라. 이때부터는 항사(恒沙)의 모든 불조와 백천의 삼매 따위도 시기하지 않으리라. 시기하지 않거니 무슨 허물 있으랴. 생각하고 헤아림이 곧 허물이니라. 만일 반(盤)의 구슬처럼 잘 운용하면, 겁석(劫石)도 그저 잠깐 지나가리라. 법도 없고 부처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또 물건도 없거니, 이 경지에 이르면 그것은 무엇인가. 경계도 비고 마음도 고요하면 본래 아무 것도 없나니 여기에 이르러 분명한 이것은 무엇인가.

추울 때는 불을 향해 나무 조각 태우고 더울 때는 그늘로 가 음지에서 쉰다. 세상 모든 일은 그대로가 진실이라, 일마다 물건마다 부처의 참뼈이네.


나옹혜근은

고려말 고승으로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해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선사에게서 득도했다. 1348년(충목왕 4) 원나라에 가서 연경(燕京)의 고려사찰인 법원사(法源寺)에서 인도 승려 지공(指空)의 가르침을 받았다.

선사는 견문을 더욱 넓히기 위해 중국 각지를 편력하며, 특히 평산 처림(平山處林)과 천암 원장(千巖元長)에게서 달마(達磨)로부터 내려오는 선(禪)의 요체를 배워 체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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