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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지 않은 이유

기자명 법보신문
일체가 苦라 했으나 느끼지 못하고
無明의 눈으로 만물 살피기 때문


북경의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씩 아찔한 순간들을 접하게 된다. 어떻게 된 것이 길을 건널 때 보행자보다 자전거가 우선이고, 자전거보다 자동차가 우선이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마음대로 누를 수 있는 중국의 현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보기가 좋지 않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내 눈앞에서 벌어진 자동차 사고를 목격하고 말았다.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거리를 지나던 애가 차에 치인 것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데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고 놀랬던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다행히 빨리 구급차가 와서 병원으로 아이를 싣고 갔다.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소 그 가르침을 잘 실행하지 않는다. 삶이 고(苦)이고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멸(滅)하므로 빨리 집착을 버리고 이생에서 당장 수행하라 하신 말씀을 한 귀로 듣고 그냥 넘긴다.

왜 그런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론상으로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본인의 생활에선 그 가르침이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삶이 고(苦)라고는 했지만 편할대로 편해진 현대인의 삶을 볼 때 부처님이 말씀하신 고(苦)가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다. 또한 내 삶의 대부분을 나의 노력에 의해서 어느 정도 통제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더욱 더 수행을 미루거나 게을리 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인연이 되어서 멸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어느 선까지는 컨트롤할 수 있으므로 그리 급하거나 두려워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삶을 살다 보면 이러한 우리들의 믿음이 한 순간에 깨지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나처럼 난데없이 교통사고를 목격한다든지, 갑자기 뜻밖의 병을 얻어 아프다든지, 생각지도 못한 자연 재난이 나에게 발생했을 때 삶은 더 이상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닌게 돼버린다. 그야 말로 나와 상관없이 인연에 따라 왔다가 인연에 따라 멸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삶이 고(苦)라고 말씀하신 것도 사실은 한순간 한순간마다 자신의 몸이나 느낌, 마음의 변화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느낄 수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苦)는 단순한 고통을 이야기하신 것이 아니라, 만물이 항상 인연에 따라 변화하므로 어느 것도 우리가 귀의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동시에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100번 정도 반복해 먹으면 고통이 되듯이 세상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궁극적으로 우리를 영원히 만족 시켜줄 것은 없다는 뜻도 된다.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처음 보았을 때 참 좋아보였던 사람이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니 성가스럽다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러한 마음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종잡을 수 없이 계속 변화하는 마음을 ‘나’라는 존재가 중간에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 마음이 항상 변하므로 전혀 신뢰할 만한 구석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결국 우리가 수행하지 않고 미루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자세히 직시하지 않고, 무시 이래로 버릇처럼 가지고 온 무명(無明)의 눈으로 만물을 흐리뭉텅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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