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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의천의 ‘대각국사문집’ 중에서

기자명 법보신문

師弟의 도리에 불교 흥망 달렸다

스승과 제자의 도는 실로 크나큰 인연이다. 그래서 『남산초(南山抄)』에 “불법이 더욱 널리 퍼지고 왕성해지는 것은 진실로 스승과 제자가 서로 협력하기에 달려있다”고 한 것이다.

요즈음 불교가 쇠퇴해지고 지혜의 바람이 몰아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는 스승된 자는 제자를 인도하려는 마음이 없고 제자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행하려는 뜻이 없기 때문이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버리고 등을 진다면 아무리 도를 빛내고자 한들 될 수가 없다. 『발진초(發眞抄)』에는 “출가한 뒤에는 부족한 사람은 나보다 나은 이를 의지하고 범부는 성인을 의지하여야 비로소 스승이 없는 자리에 올라 성불할 수 있다”고 하였고, 『필삭기(筆削記)』에는 “선지식과 수행하는 사람이 서로 만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발심한 사람이 있어도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거나, 선지식이 있어도 발심한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도를 전하고 받을 길이 끊어진다”고 하였다.

이로써 본다면 도 있는 이에게 나아가 의심을 푸는 것은 실로 세상에서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때로는 같은 시대에 살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때로는 시대가 달라 서로 만나지 못한다면 언제 깨달음을 증득하여 생사를 초월하겠는가?

그런데 지금은 부처님이 입적하신지 오래 되어 이미 법이 쇠퇴해진 말세다. 따라서 사람들이 무지하고 어지러운 때라서 건성으로 공부하는 무리는 많으나 뜻을 세운 사람은 적으니, 시작은 있으나 끝맺음이 없다. 그러므로 『정심계관(淨心誡觀)』에는 “말세의 중생들은 마음이 야박하며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혼자 제멋대로 놀아나니 이렇게 법대로 아니하다가는 나쁜 길에 떨어질까 두렵다”고 하였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는 실로 쉬운 것이 아니니라. 내 이제 몇 마디 하리니 그대는 잘 들어라. 도를 얻은 스승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진심이요, 외람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도를 잃고 그 이름만 훔치면 그것은 외람된 것이요, 진심이 아니다. 또 그 제자가 교훈을 받들고 그것을 행하면 의리요, 아첨이 아니다. 그러나 그 법만 취하고 은혜를 저버리면 그것은 아첨이요, 의리가 아니다.

외람된 것과 아첨은 군자가 부끄럽게 여기는 일이다. 이제 만일 내가 그대를 외람되게 인도하면 그것은 내가 그대를 속이는 것이요, 그대가 만일 내게 아첨으로써 구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나를 속이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중에는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만 알고 진심을 모르는 이가 많다. 진실로 스승과 제자가 그 도로써 행하지 않으면 불조(佛祖)의 가르침을 어떻게 전하겠으며, 뒷날의 스승은 무엇을 배워 그 자리에 서겠는가?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아, 나는 그대가 외람된 자인지 아첨하는 자인지 뒷사람의 비판을 기다릴 뿐이다.


의천스님은
의천(義天, 1055∼1101) 스님은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11세에 출가했다. 개성 영통사에서 난원 스님으로부터 화엄을 배우고 30세에 중국으로 건너가 여러 절을 찾아다니며 불법을 공부했다. 귀국 후 개경 흥왕사 주지가 되어 그곳에 교장도감을 두고 송, 요, 일본 등에서 수집해 온 불서 등 4700여 권을 간행했다.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으로 갈라져 대립하던 당시에 교선일치(敎禪一致)를 역설했으며, 천태종을 개창해 선종의 종파를 통합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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