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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썰렁한 축제 타이 위사카 부차

기자명 법보신문

미인대회에 완패당한 부처님오신날

“공공연히 여성 차별하는 불교계가
미녀와 달러에 눈 먼 정부 탓할쏘냐”


“사찰 배경 삼아 발가벗은 사진 찍지 마라!”
타이불교가 발끈했다.

<사진설명>방콕의 한 사원을 배경으로 미스유니버스 참가자들을 찍은 사진을 게재해 논란이 된 방콕 네이션지.

이건 요즘 타이사회를 휘젓고 다니는 미스유니버스(Miss Universe) 행사를 놓고 불교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대목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세계 곳곳에서 몰려 온 이른바 ‘잘 빠진’ 여자들이 때도 장소도 가림 없이 사정없이 벗어제치고는 사진들을 찍어대고, 그걸 또 신문과 방송들은 ‘얼씨구나’하며 매일 1면 톱에 올리는 눈꼴사나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으니.

게다가, 정부와 언론이 5월 31일로 잡힌 이 미스유니버스 결승전을 향해 거의 ‘광기’에 가까운 애정을 쏟아 부은 탓에 지난 5월 22일 크게 한판 벌여보려고 했던 ‘국제 위사카 부차’(Visaka Bucha, 붓다가 태어나고 깨우치고 입적한 날이 모두 8달짜리 음력에서 6월 보름이라 하여 타이에서 가장 큰 불교축일로 꼽는) 행사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으니 ‘근엄한’ 타이불교로서는 한 소리 아니할 수 없었으리라.

어이 할꼬나, 날짜가 비슷하게 잡힌 이 두 행사는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않았던 것을!

무슨 말이냐면, 정신세계를 갈구하는 이 위사카 부차는 벗은 몸뚱아리를 놓고 따지는 도발적인 ‘돈놀이’ 앞에 쨉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부는 도덕이 어쩌고 하면서 소리만 높였지 돈 안 되는 일에 나서지 않았다. 언론은 위사카 부차 행사 준비 과정에서 누구를 초대하니 마니를 놓고 삐걱거리는 불교 집안 불협화음만 나무랐을 뿐, 달리 보탠 것도 없었다.
하니, 불교가 너무 순진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정부와 언론은 이 두 행사를 놓고 일찌감치 수판알을 굴려왔다. 정부는 국제언론들이 한 달 가까이 생중계로 날려대는 이 미녀선발대회를 통한 관광홍보 가치가 1억달러를 넘고 또 직·간접적으로 행사를 위해 몰려드는 외국인 수만명이 뿌려댈 돈이 수천만달러에 이른다며 침을 흘렸다.

탁신 시나왓(Thaksin Shinawatra) 총리는 지난해 이 미녀선발대회 유치를 위해 정부안에 ‘특별조’까지 구성해 사력을 다했다. 마침내 성공한 총리는 몰려온 미녀들을 화사한 얼굴로 맞으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총리는 다시 엄숙한 얼굴로 국민들에게 1인당 하나씩 도덕 맹세를 하라고 몰아치며 ‘국제 위사카 부차’ 행사를 추진했다. 물론 그이는 이 국제적인 종교행사에도 외국인이 참여함으로써 돈이 함께 묻어 올 것이라는 계산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두 국제행사를 동시에 추진한 총리에게 여자를 상품으로 팔아먹는 미녀대회는 국가를 위한 장엄한 도덕진군이었던 셈이다.

‘국제미녀선발대회’와 ‘국제종교행사’, 말하자면 ‘돈놀이’와 ‘정신세계’라는 이 만날 수 없는 적대적 운명을 함께 짊어졌던 타이 사회는 ‘국제 위사카 부차’가 어물쩍 끝나버리자, 이제 눈치 보고 말고 할 일도 없다는 듯 온갖 힘을 다해 미녀들을 모시고 있다. 그 선봉에는 언론이 섰다. 미녀선발대회를 ‘반여성적 상업행위’로 규정해 한물간 일로 치부하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과 상관없이, 타이 언론들은 -한국 언론과 쌍벽을 이루며- 이 미녀들 찍어내기에 온 정력을 다 바치고 있다. 이러니, 여성상품화를 거부하며 미녀 대표를 파견하지 않은 스웨덴의 ‘거룩한’ 이야기 같은 건 아예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이쯤에서 사람들은 다시 불교를 되돌아보게 된다. 타이 불교와 미녀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녀 추녀 따질 것도 없이 타이 불교는 여자라면 질색이다.

한국 불교에서는 비록 ‘형식적’이나마 여자를 인정한다면, 타이 불교에서는 형식이나 본질 가릴 것도 없이 여자는 무조건 개념 밖이다.

예컨대, 한국 선방 수자들이 “비구니는 정진에서도 깨달음에서도 한계가 있다”고 대놓고 말해왔던 일그러진 전통 관념이 비구니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타이 쪽으로 넘어오면 그나마도 ‘선망’이 되는 꼴이다.

“비구들이 불교 가르침을 벗어나 엉뚱한 경쟁심으로 비구니를 무시하든 말든 어쨌든 한국 불교는 양성이 공존하지 않느냐. 우열이란 건 성의 차이라기 보다 기회의 문제일 뿐이고….”

스리랑카에서 계를 받고 돌아와 타이에서 유일한 비구니로 살아가는 불교철학자인 담마난다(Dhamarticlenda) 스님, 법명보다는 속명인 찻수만 까빌싱(Dr. Chatsumarn Kabilsingh)으로 더 잘 알려진 그이는 “세상의 반인 여성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이미 종교적 가치를 상실했다는 뜻”이라며 타이불교를 질타했다.

<사진설명>타이의 유일한 비구니 담마난다 스님이 탁발을 나서고 있다.

팟차리교수(실파콘대학)는 “비구니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건 불교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노예처럼 다뤄왔던 타이 전통에서 비롯된 악습이다”며 남근중심주의와 불교가 공모한 결과로 풀이했다.

이렇듯 타이 불교가 비구니를 인정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여성성 자체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월경 중인 여성 출입금지’
심지어 이런 팻말을 써 붙인 사찰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건 한마디로 종교의 상위개념인 모성 자체를 부정하는 엄청난 반역인 셈인데, 지구상에서 가장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또 반여성주의자로 낙인찍힌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Taleban)도 이런 천박한 문구를 들이댄 적은 없다.

실제로 지난해말, 타이 북부 치앙마이의 도이 수텝이라는 유명한 산상사찰에서 벌어진 일을 본보기로 들어보자. 한 여성 상원의원이 사원 내 특정지역 출입을 금지 당하자, “헌법이 규정한 남녀평등과 종교자유를 부정한 차별이다. 법정으로 가서 따지겠다”고 대들었다.

불교도 질세라, “말이면 다냐. 이건 성차별이 아니다. 불교전통이다”고 되받아쳤다.

당사자인 도이 수텝 쪽은 “옛날 옛적, 생리 중인 한 여자가 사원 내 성수(聖水)에 몸을 담근 뒤 온통 박테리아로 물들었다. 그로부터 여성출입을 금지 시켜왔다”며 반격했다.

그 무렵, 성 평등을 외쳐왔던 제법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그 상원의원이 자기 신분을 믿고 너무 날뛴다”는 식으로 깔아뭉갰다. 그러니 타이 언론을 비롯한 시민들 반응도 대개 불교 입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흘러 결국 사건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런 타이 불교 여성관을 놓고 보면, 불교와 미녀선발대회의 관계가 좀 명확해진다. 비록 국제 위사카 부차가 미스유니버스와 부딪친 ‘흥행’에서 참패당해 속은 좀 상할지 몰라도, 여자를 팔아먹든 말든 그런 건 불교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뜻이 되고 만다. 다만, 성스러운 사찰을 배경으로 발가벗은 사진만 찍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러니, 보는 이들에겐 의문이 하나 생길 법도 하다.

“사찰 안도 아니고 그저 배경을 걸고 적당히 벗고 사진 한판 찍는 게 뭐 그리 해가 될까? 완전히 발가벗은 개는 사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해도 상관없지 않는가? 오, 여자가 사람이었던가?”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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