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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들의 딸 박경임 씨

기자명 법보신문

제가 베푼다고요?
도움받는 거랍니다

‘내가 무수한 억겁 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죄 참회하옵고 어렵고 힘든 모든 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깊이 깊이 발원합니다.’
새벽 3시, 서울시 상계동에 사는 박경임(선행화·50) 씨는 늘 그렇듯 경전을 펼쳐들었다. 세상의 깊은 정적을 흔들며 그의 독경소리가 맑게 울려퍼졌다. 천수경을 천천히 독송한 그는 이 세상 생명이 있고 없는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발원한 후 이번에는 염주 한 알에 ‘관세음보살’을 한 번씩 빠르게 염송해 나갔다. 이어 광명진언, 반야심경, 화엄경약찬게를 독송하고 자신이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는 발원문을 읽어내려갔다.

또 무주구천을 떠도는 영가들을 위해 금강경을 독송한 그는 다시 오래된 백팔대참회문을 펼쳐 놓고 한 배 한 배 정성껏 절을 올렸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자신을 믿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고 그들이 이 공덕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 큰 도를 이루기를 기원하며 새벽기도를 마무리했다.

10년간 새벽마다 경전독송-108배

명절 때건 아플 때건 심지어 해외성지순례를 할 때조차 박 씨는 지난 10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았다. 불교와 인연이 닿은 게 너무 좋고 고맙고 그 말씀들을 내 안에 하나하나 새겨야겠다는 신념에서였다.

불교를 전혀 모르던 어린 시절, 박 씨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그런데 중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늘 이상한 꿈을 꾸곤 했다. 산속에서 황금색으로 은은히 빛나는 사찰이 보이는가 하면 부처님이 정좌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옆집 할머니가 건네준 백팔대참회문을 읽어보고 너무 좋아 밤새 그 내용을 옮겨 적어 주변에 나눠주기도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연 사흘 간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가사장삼을 입은 스님이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반복되는 꿈에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 싶었지만 놀라운 것은 나흘 째였다. 누군가 대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보니 꿈속에서 보았던 스님이 문밖에 합장하고 서있는 게 아닌가. 주인집을 찾아왔다는 스님에게 꿈 얘기를 했더니 전생부터 이어온 깊은 불연(佛緣)이라고 했다.

박 씨가 가족들의 눈총에도 아랑곳 않고 절에 다닌 것도 이 때부터다. 낯선 부처님께 처음 절하는 어색함도 잠깐, 그는 이내 어릴 적 고향집을 찾은 것 마냥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틈틈이 절을 찾아 법문도 듣고 염불도 했다. 한 번은 주지 스님과 그 절 신도의 장례식에 갔는데 다른 사람들이 독송하는 금강경 소리에 엄청난 환희심이 밀려왔다.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영가들을 위해 평생 금강경을 독송해줄 것을 다짐했고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불교를 믿으면서 박 씨의 표정은 가을 박속처럼 환해졌다. 박 씨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도 놀라워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평생 다른 종교를 믿어오던 어머니가 절에 다니기 시작했고, 친동생과 동서들도 불교에 호감을 갖더니 불자가 됐다.

후원금 모아 불우이웃에 전달

94년 봄, 박 씨는 불교단체에 참여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가난했지만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의 선한 부모님. 어린 시절 행여 누군가 동냥이라도 오면 무엇 하나 채워주려 했던 모습을 지켜보며 박 씨도 나중에 어려운 삶을 돕겠다고 다짐해 왔었다.

그러던 어느날 동사무소에서 박 씨에게 연락이 왔다. 형편이 어려워 꼭 도와주고 싶지만 호적상 자식이 있어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는 분이 있는데 도와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박 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오히려 이런 분들이 있으면 더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박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 시작했던 옷 수선 일을 수익사업화(?) 했고 후원자들을 하나 둘 모집했다. 그 중에는 박 씨에게 옷 수선을 맡겼던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까지 매월 20만원씩 후원하고 있는 동국대 석림회 스님들을 비롯해 도봉산과 경북 영천의 스님도 있었다. 그렇게 모을 수 있는 돈이 한 달 평균 백만 원. 그는 동사무소에서 20여 명의 노인들과 소년소녀가장들을 추천받아 그들의 필요에 따라 현금이나 혹은 쌀, 미역, 떡, 기름, 국수, 고춧가루 등 물품을 사서 전달했다. 또 서대문의 한 재가불자가 매달 쌀을 제공하겠다고 해 그곳에서부터 쌀을 짊어지고 와 이집 저집 배달했다. 처음 어려운 형편에 이웃 돕는 일을 썩 달가워하지 않던 남편의 눈을 피해 박 씨는 남편의 잔업이 있는 날 딸아이의 손을 잡고 쌀을 나르기도 했다.

“어디서 주는겨?”
“절에서요.”
“그럼, 선상님은 누구여?”
“그냥 선행화라고 하면 되요.”

받는 사람들의 종교를 따지지 않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장애자 할머니에 식물인간이 된 자식, 여러 명의 손자들을 키우는 앞 못 보는 노인도 있었다. 또 남편을 간암으로 떠나보낸 30대의 젊은 여인이 어린아이 넷을 데리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집 등등. 박 씨는 쌀과 물품을 전하고 그들의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며 어둡기만 했던 노인들의 표정이 밝아져 갔고, 처음 외면하던 아이들도 반갑게 맞아주곤 했다.

백중 때면 돌아가신 분 위해 연등도

“선(행화) 선상, 고마워. 이 은혜를 어찌 갚을꼬. 내가 죽어서라도 이 은혜는 꼭 갚을꺼여.”
“애기 엄마 땜에 내가 살어. 그리구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해. 담 생에 애기엄마가 늙으면 내가 도와줄게.”
그분들의 감사표현이 박 씨를 오히려 부끄럽게 했다.
“고마운 건 오히려 저예요. 밝게 사시면 그게 갚는 거지요, 뭐.”

노인들이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베푸는 게 아니라 그분들로부터 크나큰 베품을 받고 있음도 깊이 깨달았다. 97년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도움을 받았던 한 여성은 병이 호전되면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려진 아이 두 명을 맡아 키우고 있기도 하다. 또 요즘 쌀 배달을 돕고 있는 이도 한 때 박 씨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다.

“저는 그저 심부름꾼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를 귀여워해주시고 축원까지 해주시니 오히려 복 받은 셈이죠.”

‘늘 쩔쩔 매지만 부처님 일인지라 절로절로 된다’는 박 씨. 그러나 돈을 꼭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을 때는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무언가 싸들고 다음 번 찾아갔을 때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으면 힘이 쭉 빠지고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것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다. 박 씨가 백중 때면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하얀 등을 밝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 넓지 않은 오래된 주공아파트. 그러나 사람들은 박 씨의 집을 법당이라 부르곤 한다. 벽 곳곳에 붙어있는 경전구절과 녹음기에서 늘 흘러나오는 스님들의 법문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마음의 위안과 편안함을 얻는 까닭이다.

아무리 혼탁한 물이라도 맑고 깨끗하게 한다는 화엄경의 수청주(水淸珠), 그는 혼탁한 세상을 맑히는 우리시대의 수청주다.

도움주실 분 : 제일은행 255-20-073695(박경임)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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