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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불교단체 기행-⑦ 대만 자제공덕회

기자명 법보신문

병들고 아픈 내 벗들에게
慈悲喜捨의 꽃 뿌리리라

쓰나미가 남아시아 일대를 강타하고, 집과 가족을 잃은 수많은 이재민들이 망연자실한 채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스리랑카 해변에 노란 조끼를 입은 한 무리의 대만인들이 도착했다. 이들의 손엔 의약품과 쌀자루가 들려있었고, 이들이 입은 옷엔 자제(慈濟) 즉 자비로 세상을 구제한다는 마크가 찍혀 있었다.

<사진설명>자제공덕회의 구호 봉사단은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재난이 발생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사진은 스리랑카 쓰나미 재해 현장의 자제 봉사단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사상 초유의 강진이 발생한 인도네시아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여진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에도 아랑곳 없이 자제공덕회 봉사자들은 각종 구호품과 함께 인도네시아 재해지역으로 출발했다. 2001년 미국에서 9·11이 발생했을 때에도 가장 먼저 도착한 이들이 바로 이들 자제공덕회 봉사단이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세계 최대 불교 봉사단

세계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재난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당장 짐을 싸고 타이페이 공항으로 달려가는 자제공덕회 회원들.
이들은 “불교는 세상을 외면하는 소극적인 종교”라는 일부 사람들의 비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적극적인 봉사활동과 사회사업을 펼치는 것으로 이름 높다.

세계 전역을 누비는 봉사활동, 스님들의 자급자족적 생활, 유럽·미국·아시아 전역에 분포돼 있는 1만5천명의 자제위원, 사업비 전반을 1달에 두 번씩 공개하는 투명한 경영은 세계 곳곳의 자발적인 자제 후원자가 400만명에 이르도록 만들었고, ‘자제공덕회=불교 사회봉사의 모범적인 모델’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켰다.

대만 자제공덕회는 1966년 증엄이라는 한 비구니 스님이 창설한 단체이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세상을 달리하자 증엄 스님은 가난과 죽음 그리고 질병이라는 중생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스님이 후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사업을 펼치겠다는 발원을 세우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30명 5원씩 보시로 시작

1963년 인순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증엄 스님은 1966년 ‘가난한 이를 돕고 부유한 이를 교육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자제공덕회를 창립했다.

이 단체의 창립은 30명의 주부가 하루에 5원(한화 약 140원 정도)씩 자발적으로 보시금을 모으는 대나무 저금통 운동과 함께 시작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제공덕회라는 단체가 대만 사회는 물론 세계 속에 대만 불교, 대만인들의 파워를 상징하는 단체로 성장할 줄은 몰랐다.

보통 대만 자제공덕회 하면, 전국민이 거의 불자인 나라의 부유한 불자들이 펼치는 적극적인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자제공덕회가 만들어진 40여년전 대만은 대부분의 국민이 불자인 나라도 아니었고, 국민당 정부를 따라온 본토인이나 현지 섬사람들은 가난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도와줘야 할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에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사업과 봉사단을 스님이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한 가난한 원주민 고산족 임산부가 난산으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보증금 8천원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자제공덕회를 세웠다”는 증엄 스님의 뒷 이야기를 들어봐도 당시 대만 사회가 얼마나 어려운 사회였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자제공덕회가 설립된 1966년부터 빈민자들을 대상으로 의료무상사업을 실시하기 시작해 1972년에는 빈민의료검진 시설을 화련시에 건립했으며, 지금까지 이 사업은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대만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했고, 자제공덕회 또한 대만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봉사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만 불자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졌기 때문에 자제공덕회 또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제공덕회는 불자들의 공양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사업을 통해 자체적으로 운영비를 마련, 독립적인 운영을 해오고 있다.

자제공덕회에 소속된 스님들은 대중 공양도 받지 않으며, 탁발도 하지 않는다. 대신 양초, 병뚜껑, 단주 제작을 비롯한 수공업과 농사일 등을 통해 자급자족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포교사와 비슷한 자제위원들은 모든 일체 경비를 자부담 원칙으로 하며, 모금활동과 자원봉사로 자제공덕회를 운영한다. 이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세계 400만명의 후원회원에게 모든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쌀이든 의약품이든 학교든 가리지 않고 마구 퍼주는 이들이지만 미국에 있는 자제위원이 대만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봉사자 교육’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단 한푼도 지원받을 수 없고 일체 경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할 정도로 자신에게는 엄격한 곳이 자제공덕회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지계 정신에 기반을 둔 투명한 경영, 지속적인 사회복지사업, 1만 5천명의 자제위원, 400만명의 후원자 등을 기반으로 자제공덕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봉사단체로 급성장했다.

인간에 대한 존경 최우선

자제공덕회의 사업은 크게 8대 사업으로 집약된다. 자선, 의료, 교육, 문화, 국제구호, 골수 기증, 환경 보전, 지역사회개발 사업이 그것이다.

자제공덕회가 직영하는 5개의 병원과 종합대학, 방송국에는 약 2천명의 직원이 소속돼 있다.

1994년 개교한 자제의학원을 통해 전문 의료인력 배출하고 있으며, 1993년 설립된 자제골수등록회에는 미국과 유럽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골수 은행이 설치돼 있다.

자제공덕회의 국제구호활동은 앞서 언급한 대로 재난을 당한 곳이라면 스리랑카든 인도네시아든 중국 본토이든 가리지 않고 5대양 6대주에 걸쳐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증엄 스님은 전문적인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봉사활동을 펼치는 자원봉사자들이나 봉사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경’임을 강조한다.

“유명한 의사를 갖는 것은 쉽지만 양심 있는 의사를 갖는 것은 쉽지 않다”며 인도주의적 학습을 강조한 스님의 메시지는 자제공덕회가 이 땅에 구현하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사람의 손이 1000명의 손을 움직인다”는 증엄 스님의 믿음은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손길이 되어 이 땅에 자비희사(慈悲喜捨)의 꽃을 뿌리고 있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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