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미얀마 불교-불자가 사는 법
23 미얀마 불교-불자가 사는 법
  • 법보신문
  • 승인 2005.07.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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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삶 속에서 구현


미얀마 순례는 아름답고 장중한 불교 유산에 대한 감동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그 감동의 본질은 유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얀마 사람들의 깊은 신심과 투명하고 맑은 마음에 있었다. 이들의 일상은 불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경전에 다름 아니다. 슬픔과 기쁨, 괴로움, 모든 삶의 의미도 온통 불교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지 말고, 선은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는 칠불통계(七佛通戒)의 가르침이 어떻게 이렇게 현실적 삶 속에서 구현될 수 있는지 경이로울 뿐이었다. 부지런히 절을 찾고 보시를 하는 것도 모자라 결혼, 회갑, 생일 등 각종 기념일에는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절과 복지시설을 찾아 참배하고 보시하는 이들의 삶은 불교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순박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여, 미얀마 사람들에게 기념일은 개개인의 기록이라기보다 불자로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자와 포살, 혹은 수행의 날적이(일기)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 이런 까닭에 사찰과 복지시설의 벽과 칠판을 가득 메운 보시자들의 명단은 어쩌면 자비로운 마음들이 모여 일궈 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록물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미얀마 출국을 하루 앞두고 정해진 일정을 벗어나 무언가 의미 있는 곳을 방문하고 싶다는 요청에 산디마 스님은 순례 일행을 이끌고 또 다시 양곤 시내로 향했다. 폐차 직전의 승용차들이 뿜어대는 안개 같은 매연과 뜨거운 태양, 이내 목이 잠기면서 몸이 소금에 절인 생선 마냥 생기를 잃어버린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방문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들뜬 일행에게 이런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차가 도착한 곳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병원이었다. 씨위다다나상가병원. 일행은 황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유서 깊은 유적지나 아름다운 휴양소에서의 ‘즐거운 한때’를 기대한 사람들의 희망이 산산조각 나 버렸으니 그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오늘의 여정은 한낮의 폭염을 뚫고 나선 길이 아니던가. 병원 입구를 지나 관계자들을 만날 때까지 황망한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스님의 병원 방문에는 나름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이곳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병원과는 격을 달리하는 곳이다. 미얀마 사람들의 깊은 신심과 아름다운 자비 정신이 일구어 낸 그래서 어떤 불교문화 유적보다 더 성스럽고 아름다운 위대한 유산이었던 것이다.

씨위다다나상가병원의 ‘씨위다’는 우리말로 ‘삶’ ‘다나’는 ‘보시’ ‘상가’는 스님들의 수행 공동체’로 풀이할 수 있다. 뜻 그대로 스님들을 위한 전문병원이다. 병원은 지난 1940년 미얀마 근대 불교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스승 밍군 사야도(Mingun Jatavan U Narada, 1868~1954)에 의해 설립됐다. 이곳은 스님 뿐 아니라 우리의 사미니격인 틸라신을 비롯해, 불우이웃에 이르기까지 차별 없이 치료의 혜택을 베풀고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병원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스님들을 위한 전문 의료기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은 불자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무주상 보시로 운영되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자비의 공간이다. 그러니까 불자 모두가 주인이면서 또한 관리자인 셈이다. 보시자의 명단으로 장식된 하얀 벽을 뒤로 하고 들어선 병원은 퇴락한 미얀마의 일반적인 건물들과 달리 산뜻했다. 겉면의 페인트도 깔끔했고 대리석으로 장식된 내부도 낙후된 미얀마의 경제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신선했다. 1년 전부터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책임 의사 우조수나인 (61)씨의 안내로 둘러본 병원은 혼잡하고 복잡한 우리의 병원과 달리 많이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사람들은 또 어찌나 살가운지 소름을 돋게 하는 소독약의 냄새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스님은 모두 123명. 이분들을 29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병원 업무의 수납과 관리는 물론 치료에 이르기까지 병원 운영 전반에 정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의사와 간호사 대부분이 다른 병원에서 일하다 봉사를 위해 몇 년 단위로 자원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치료에 대한 열정 또한 남달랐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신심 깊은 불자들이어서 자연 병원은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병원은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정재들로 살림살이에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런 넉넉한 재정 덕분에 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암 수술이 이뤄지고 있으며 의료 수준 또한 미얀마를 통 털어서도 탑 클래스에 속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자랑이다. 그래서 그런지 병원 한편에서는 부족한 병실을 늘리기 위한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 또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의 땀과 정재로 이뤄지는 것은 당연하다. 군부 독재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최근 아파트 건설마저 중단된 미얀마 실정을 감안한다면 미얀마 불자들의 깊은 신심이 일궈 낸 참으로 경이로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넘치는 신심이 형상화 된 또 다른 장면을 찾는다면 안거가 끝나는 음력 9월 15일 이후 한 달간 전국을 들썩거리게 하는 가사불사를 빼놓을 수 없다. 가사 불사는 안거가 끝난 스님들에게 가사를 비롯해, 수행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보시하는 것으로 이 가운데서도 미얀마의 가사 불사는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행사로 이름이 높다. 가사불사 시즌이 돌아오면 전국은 마치 요란한 축제를 방불케 한다. 가정은 가정대로, 마을은 마을대로, 시장은 시장대로, 직장은 직장대로 가사 불사에 온 정성을 쏟는다.

인구의 88%가 불교신자인 점을 떠올린다면 사실상 전 국민이 가사불사에 매달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얀마의 가사불사는 가사만을 보시하는 우리의 전통과 많이 다르다. 미얀마 사람들은 부리다빈이라는 2m가량의 막대걸이에 보시할 물건을 모으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가사는 물론 우산, 부채, 방석, 의약품, 발우, 이불, 모기장 등 수행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이 모여든다. 특히 이 가운데는 선풍기, 커피포트, 보온병, 돈을 접어 만든 꽃 등 다소 이색적인 물품들도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나의 부리다빈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들은 참으로 눈물겹다. 고위 공무원이나 재력가들은 직접 부리다빈을 만들거나 사찰을 찾아 보시를 하지만, 가난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 시장, 마을에서 공동 작업을 통해 부리다빈을 완성한다. 가사 불사가 한창일 때 미얀마의 시장과 직장은 보시 창구를 개설해, 모연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대는데,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의 부리다빈을 일렬로 늘어놓은 모습은 이색적이면서도 장엄하기 그지없다. 특히 가사불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마을에서는 예쁜 처녀들과 총각들을 길거리로 내보내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권선을 하는데, 그 정성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병원을 빠져 나오자 도로는 부리다빈을 싣고 절로 향하는 수많은 차의 행렬로 가득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늘어선 부리다빈. 이들의 행렬에 문득 미얀마 불자들의 삶이 손에 잡힐 듯 잔뜩 다가와 있다.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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