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TBMSG - “카스트 깰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불교”
⑨ TBMSG - “카스트 깰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불교”
  • 법보신문
  • 승인 2005.07.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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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불교단체 기행
2500여년전 석가모니 부처님은 모든 존재가 불성을 가진 존재라고 천명함으로써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철저하게 부정했다. 이는 인도 브라만 계급의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힌두사회의 관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도에서 불교가 소멸하고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쇠망과 부활을 반복하는 중에도 중생을 얽매는 카스트 제도는 면면히 이어져왔다. 지금도 수많은 인도인들은 카스트의 한계로 인해 자신의 직업과 결혼, 거주 공간 등 삶의 대부분이 제한된다.

카스트의 네 계급 안에도 속하지 못하는 가장 천한 계급인 불가촉천민들은 여전히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천대받으며 살고 있다. 손도 대서는 안될 만큼 더럽고 천하다는 이 사람들에게 다가가 당신이 곧 부처라고, 그러므로 佛法에 귀의해 당신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라는 사람들이 있다.

인도에서 발발한 불가촉천민 불교해방운동과 TBMSG(범세계불교교단우의회)가 바로 그것이다. TBMSG는 암베드까르 박사에서부터 시작된 인도 불가촉천민 해방운동을 지원하는 단체이자 현재로서는 이 운동의 직접적인 주체로 활동하는 국제NGO이다.

TBMSG 운동의 기원은 불가촉천민 출신의 근대 정치가 암베드까르 박사의 불교해방운동에서 비롯된다.

불가촉천민 신분인 소년 빔라오 암베드까르는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끊임없는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그와 그의 형은 교실 뒤쪽에 자리 한 장을 펴놓고 조용히 앉아 있어야 했다. 공책을 교사에게 건내줄 수 없었으며 물을 마실 때에도 신체적 접촉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위에서 입에다 부어 주었다. 우연히 개인 소유지에 잘못 들어가면 매질이 뒤따랐고 그 지역 이발사는 그들의 이발을 거부했다.

불가촉천민 해방운동

영국군 소속의 직업 장교였던 빔라오의 아버지는 자식들에 영어, 수학 등의 교육을 시켰고, 그 지역 사회개혁가 가에크와드의 경제적 지원으로 1913년과 19123년 사이에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런던대학에서 이학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독일 본대학에서 연구를 계속 했다.
암베드까르 박사는 인도에 돌아와 정부 각료, 신문사 편집장, 대학 교수, 법과 대학원 원장, 선출직 공무원 등의 직분을 역임했다. 1946년 인도의 헌법 기초가 그에 의해 수립될 정도로 막강한 정치가로 성장했다.

“불교만이 유일한 해방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택 소유에 제한을 받거나 구타를 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등 계급적 폭력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그것은 그가 불가촉천민인 한, 그의 조국이 힌두교에 기초한 카스트 사회 속에 존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암베드까르 박사는 편견 없는 힌두교인의 호의도, 영국의 계획성 없는 지원도, 자신과 같은 고립된 불가촉 천민들의 노력들도 인도사회에서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직 대중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사회 혁명만이 이러한 폭력과 편견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카스트를 전면적으로 깨뜨릴 사회 혁명의 주체에 불교가 있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1951년 공직에서 물러난 후 본격적인 불교 운동 시작. 1955년 랭군으로부터 되돌려 받은 불상을 봉헌하는 모임에 참가한 불가촉천민 군중들에게 암베드까르는 스스로 불교인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1956년 나르푸르에서 치러진 야외 개종식에 38만명의 불가촉천민이 개종했고, 그 이튿날까지 거의 50만명이 불교에 귀의했다. 하지만 바로 6주 후에 암베드까르가 사망했다.

하지만 암베드까르가 죽은 뒤에도 불가촉천민들의 개종은 계속되었다. 그들의 귀의와 수계, 그리고 다수의 불교인들 사이에 여전히 작용하는 카스트 차별의 부정적 영향을 불식시키려고 암베드까르가 특별히 첨가한 22가지 특별서약을 맹세하는 개종의식을 거쳤다. 지도자를 잃은 불교해방운동은 큰 위기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베드까르가 죽었을 때 우연히 나그푸르에 있는 불가촉천민 불교공동체를 방문한 상가락시타 스님이 암베드까르의 추모식을 주재하면서 지도자를 잃어버린 추종자들은 새로운 연결고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후 1977년 로카미트라 법사가 마하라시트라 주에 등장하면서 이 담마운동은 국제적인 NGO운동으로 확대 전개된다.

1972년 인도를 여행하는 도중 상가락시타 스님이 주도하는 불가촉천민 개종식 현장을 접하게 된 로카미트라 법사는 이 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암베드까르 불교인들과 함께 불법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그는 영국을 떠나 불가촉천민 공동체에 합류하게 된다.

TBMSG는 담마운동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이자, 합법적으로 이 운동을 구성하고 있는 행정상의 기구로 발족됐다.

로카미트라 법사가 이끄는 TBMSG의 활동은 이제 개종운동을 넘어서 ‘공동체 건설’로 확대 전개되고 있다.

‘올바른 생계수단’ 전달

현재 TBMSG는 인도 20여개 도시의 센터와 2개의 지방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탁아소, 유치원, 취학 아동을 위한 호텔식 아파트, 모자 보건을 위한 프로그램 및 성인을 위한 글자 교실과 직업훈련과정 등을 운영하고 있다. TBMSG 활동의 기본틀은 인도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천대받는 이들에게 ‘올바른 생계수단’을 전달하는 것이다.

“저희가 추구하는 일은 어쩌면 큰 바다의 물방울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수의 불가촉 천민들이 스스로에 대한 존귀함을 깨달음으로써 그들 외의 불가촉천민들 또한 스스로를 다시금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들의 인식변화는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카스트 제도의 뿌리를 서서히 뽑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암베드까르 박사와 상가락시타 스님, 그리고 로카미트라 법사로 담마운동이 전개되는 동안 인도 내 2억 불가촉천민 중에서 2500만이 불교로 개종을 했고, 그들은 스스로를 더 이상 untouchable(가까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닌 불성을 갖춘 존재라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이들의 활동을 낙수물이 바위를 뚫어가고 있는 모습으로 비유하곤 한다. 세계 각국의 NGO단체 또한 TBMSG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참여불교 재가연대가 TBMSG 지원에 동참하고 있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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