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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과 대자연의 길

기자명 법보신문
마음 비울 수 있는 모든 것이 숲길
존재가 그대로 숲인 동시에 자연이다


장마 때가 되니까 깊은 감성에 잠기는 때가 잦아진다. 처마 아래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홀로 조용히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다보면 시간이 그만 딱 멈춰서는 듯 아무런 바램도 없이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냥 그냥 지금 이 순간에 머물게 된다.

떨어지는 비소리를 온 몸으로 깊이 느껴 보았는가. 또 이런 날 축축하지만 생기어린 정신을 깨우는 메시지가 담긴 그런 숲 길을 거닐어 보았는가. 숲 속에서 나 또한 동떨어진 한 사람이 아니라 숲과 하나가 되어 숲 그 자체로써 남게 될 때 그 때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숲이란 자연이란 그대로 우리의 스승이고 선지식이다. 숲 길을 걸을 때 마치 어머님의 품 속에서 처럼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런 깊은 평화를 맛보며 숲 길을 거닐을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삶 속에서 과연 얼마나 되는가. 때때로 살며 살아가며 무겁게 짊어지고 가는 그 모든 짐들을 잠시 내려두고 호젓하게 또 가볍고 평온한 마음으로 숲 길을 거닐을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겐 과연 있기는 한가?

그런 길을 만들어 보라. 그런 시간을 만들어 보라. 잠시 모든 삶의 짐을 비워두고 숲의 생명들을 관찰하며 길을 걷는 나의 내면을 관찰하며 다만 걷기만 할 수 있는 그런 나만의 숲 길을 가져 보라.

물론 숲 길이란 꼭 숲 속의 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 마음 속을 비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많은 것들 그 모든 것이 다 나의 숲 길이 될 수 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숲이기 때문이다. 존재가 그대로 숲이며 자연이고 야생이다. 내 안의 야생성, 자연성, 본성을 일깨워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숲이며 스승이고 선지식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안의 이기적인 탐욕과 집착, 온갖 번뇌를 비워주며 그 내면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본래의 자연적인 성품을 발현시켜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스승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대자연의 숲 길 또한 수행의 길과 다르지 않은 좋은도반, 길벗들의 본향이다.

빌딩 숲 속에 있더라도 고층 아파트 안에 살고 있더라도 참선, 염불, 간경, 주력 등 수행의 숲 길을 걷고 있다면 그 속에서 깊은 내면이 깨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대자연의 숲 길을 거니는 일과 수행의 길을 걷는 길. 그 길은 결코 다른 두 갈래길이 아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스님들은 대자연 속에서 나무며 풀들, 숲 속의 풀벌레들이며 짐승들과도 벗하며 친구로 살았고 숲 속이야말로 가장 좋은 수행의 처소, 아란냐로써 수행자의 길에 좋은 도반이 되어 주었다.

수행의 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대자연의 길을 걷게 된다. 수행자의 내면은 맑게 비워져 있기 때문에 대자연의 변화며 아름다움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이 욕심과 집착으로 꽉 차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도무지 돈과 명예 등만 관심이 있지 대자연의 고요한 변화와 진리가 그 안에 담길 수 없다.

수행의 길과 대자연의 길이 둘이 아니게 내 안에서 파도치고 있는가.


법상 스님 buda1109@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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