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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기자명 법보신문
‘동물엔 영적인 면 없다’는 기독교
‘주인 반기는 강아지’죽일 수 있나


몇 일전에 내 책상 위로 뜻하지 않은 작은 손님이 찾아왔다. 물을 마시러 잠시 읽던 책을 막 덮으려고 하는데 책장 왼쪽 구석에 눈에 보일까 말까한 깨알만한 크기의 연녹색 벌레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창문을 통해 들어 온 것 같은데 크기가 너무 작아 하마터면 모른채 그냥 책을 덮어 작은 생명을 죽일 뻔한 것이다. 물을 마시고 다시 돌아와 그 이름 모를 연녹색 벌레 손님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벌레나 곤충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탓에 이것 저것 분석하거나 이름 붙이지 않고 그냥 그 작은 생명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몸통은 옅은 연두색에 다리가 여섯개쯤 되는 것 같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책장 위를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돌아다니는데 그 모습을 한 동안 주시하고 있자니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그 작은 생명 안에도 거대한 우주의 신비가 모두 응집되어 숨어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우주 안에 가득한 생명력의 한 부분이 그 벌레를 통해 내 눈앞에서 발현되고 있는 생생한 드라마라고나 할까. 한 15분 정도를 가만히 바로보고 있으니 오묘한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면서, 그 작은 벌레 손님에게 나도 모르게 정(情)이 갔다. 어디든 안전하게 오래 잘 살 수 있는 곳에다가 그 벌레를 놓아주어야 한다 싶어 조심스럽게 벌레가 있는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가 그늘진 나뭇가지 위에다 살며시 놓아주었다.

사실 사람이 무심코 개미나 모기 혹은 다른 살아 있는 동물들을 죽이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작은 벌레들의 모습만 보아도 그 작은 동물 안에 인간과 똑같은 생명력이 퍼덕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한 생명의 불꽃을 인위적으로 꺼뜨리는 일을 그렇게 쉽게는 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에 와서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대학 측의 주최로 학생 환영회 겸 저녁 식사를 모임이 열린 적이 있었다. 학교측에서 조금 비싼 음식을 접대한다는 것이 공교롭게도 생선 요리를 시키는 것이었다. 생선 요리를 하기전 중국에서는 손님에게 일단 생선을 보여주고 그 생선을 요리해도 되는지 허락받는다. 비닐 봉지안에 넣어진 채 펄떡거리는 생선을 보니 애처롭기 짝이 없고 인간들의 한끼 식사를 위해 그들의 몸에 칼부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를 믿는 어떤 이들은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동물은 육체만으로 존재할 뿐 인간과 같은 영적인 부분은 없다고 말한다. 아마 그러기에 기독교에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있어도 살생하지 말라는 계명은 없나 보다.

하지만 집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직접 키워 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물이 육체만으로 존재한다는 의견에 선뜻 동의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주인이 오면 저렇게 반가워하고 주인이 화를 내면 무서워하고 주인이 외로워하면 그 마음을 알고 곁에서 달래주는 그런 강아지를 영이 없으므로 죽여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는 그 말을 나는 별로 믿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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