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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은 윤회 벗는 지름길

기자명 법보신문

염불 전법사 혜명화 박 복 순 씨

<사진설명>염불에서 삶의 가치와 희망을 발견했다는 박 씨. 새벽부터 밤까지 염불정진하는 그의 마음 속에는 늘 '나무아미타불'로 꽉 차 있다.

cafe.daum.net/yunhwasaegae

달아, 서방까지 가시나이까.
무량수불 앞에 말씀 아뢰소서.
다짐 깊은 부처님께 두 손 모아
원왕생(願往生) 원왕생
그리워하는 사람 있다고 아뢰소서.
아아, 이 몸 남겨두고
48원이 이루어질까.
-신라 광덕 스님


2004년 6월 18일, 바윗덩이처럼 단단하던 추교생(50·도안) 씨가 갑자기 시름시름 앓더니 몸져누웠다. 아내 박복순(48·혜명화) 씨는 처음 감기려니 생각했지만 열은 40도를 오르내리고 혈압은 40으로 뚝 떨어졌다. 약을 먹여도 소용없었을 뿐더러 나중에는 물 한 모금 삼키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대구에서 가장 크다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며칠 간 정밀검사를 실시한 의사는 이런 병은 처음이라고 난감해 하며 그저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하지만 추 씨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됐고 나중에는 뼈에 살가죽이 얹혀 놓은 것 마냥 야위어갔다. 병원 측도 원인불명의 병에 당혹해 했고 주변의 가족들은 이제 추 씨가 더 이상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했다.

그러나 아내 박 씨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겪고 있는 이 난관은 자신과 남편이 과거 삶에서 알게 모르게 지은 업의 결과라고 믿었다. 그리고 뭔가 중요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고 어떤 일이 생기든 오직 부처님의 뜻에만 따르겠다고 내심 다짐했다. 박 씨는 의식이 가물가물해져 가는 남편의 곁에서 아미타 염불을 하면서 남편에게도 지극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당시 출판 유통업을 하고 있던 박 씨는 남편의 곁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낮에는 출근해 거래처를 다녀야 했고 20여 명이 넘는 직원들도 관리해야 했다. 박 씨는 남편의 병이 갈수록 악화됨에 따라 20여 년간 계속해 왔던 사업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불경기에 남편도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때마침 거래처의 한 사장이 직원들이 계속 일을 해줄 수 있도록 보장해 주고 책값은 원가로 계산하는 선에서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이익이냐 손해냐를 떠나 모든 게 부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

첫 정토법문에 눈물이 주르륵

박 씨는 병원, 회사, 거래처를 오가는 숨 가쁜 일상에도 마음속에서는 한 순간도 나무아미타불이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바쁘고 힘들수록 염불의 울림은 컸고 이로 인해 마음은 바다 속처럼 고요해졌다. 박 씨는 그런 자신을 돌아볼 때면 스스로도 놀랍고 대견했다. 불과 반년 전에만 해도 이런 자신의 모습을 전혀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 씨가 절에 다니기 시작한 건 90년대 초. 참선과 절수행은 많이 했지만 염불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1996년 6월 시어머니가 박 씨를 불러 3일 뒤에 갈 것이라며 손때 묻은 『왕생예참집』을 건네주었다. 그 책은 시어머니가 얼마나 읽었던지 닳고 닳아있었다. ‘저렇게 정정한 분이 설마 돌아가실라고…’ 내심 믿기지는 않았지만 시어머니는 정말 정확히 3일 뒤 세상을 떠났고 그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도 편안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염불도 훌륭한 수행인가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박 씨가 염불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 2월이었다.

대구 법왕사 백고좌 초청법회가 있는 날. 박 씨는 늘 그렇듯이 법회 시작 한 시간 전에 가서 500배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날 법사는 경주 미타사 법장 스님. 평생 염불 수행을 해 온 노스님이었다.

“여러분, 죽는 게 두렵습니까? 죽는 것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법을 모르고 죽는 걸 정말 두려워하세요. 아무리 작은 돌이라도 물에 가라앉지만 아무리 큰 돌도 큰배에 실으면 물에 뜰 수 있습니다. 불자님들,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는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정토법문.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박 씨의 가슴 속에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첫 마디에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니 나중에는 수도꼭지라도 틀어 놓은 듯 눈물과 콧물이 펑펑 쏟아졌다. 부끄러운 생각도 없었고 닦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날 이후 박 씨는 완전히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나무아미타불’ 출근해서 직원들과 만날 때도 ‘나무아미타불’ 전화할 때도 ‘나무아미타불’ 시장에 가서도 ‘나무아미타불’…. 부득이 소리를 낼 수 없을 때에는 속으로 염불을 했다. 처음 염불을 할 무렵 망상이 들끓었지만 박 씨는 이에 아랑곳 않고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세계를 떠올리며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소리내 일심으로 불렀다. 두 달여 지났을까. 입으로 나오는 염불소리가 귀를 통해 몸 안에서 맑게 퍼짐을 느꼈다. 한 여름 잡초 자라듯 무성하던 망상도 한 풀 꺾였다. 다시 몇 개월이 지나서는 설거지를 하려 수도꼭지를 틀면 물소리가 염불소리가 되어 들리기도 했고 길을 걷다가 허공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염불로 남편 소생…가족 모두 염불

한 번은 염불을 하던 중 깜작 졸았는데 신비한 꿈을 꾸었다. 까마득히 높은 절벽의 난간에 서있다가 미끄러졌다. 끝없는 추락과 공포, 마침내 진흙 구덩이 같은 수렁에 머리를 부딪친 후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데 그 와중에 박 씨는 아미타불을 떠올리며 염불을 했다. 그 순간 자신의 몸이 빛으로 변해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꿈을 깬 박 씨는 이런 게 죽음일거라고 생각하며 번잡한 일을 다 내려놓고 염불정진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편 추 씨가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한 달 가량 입원해도 차도는커녕 병세가 계속 악화되자 박 씨는 마른 장작개비처럼 뼈만 앙상한 남편을 집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통보리를 삶아 계속 먹이는 한편 작은 방을 하나 비워 염불당을 만들어 밤낮으로 염불을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처음 고열로 물도 삼키기 어려웠던 남편이 미음을 먹기 시작하더니 일주일 만에 체온과 혈압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진설명>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남편 추교생 씨는 이제 박 씨의 가장 든든한 도반이다.

박 씨는 물론 남편 추 씨도 부처님의 가피라고 믿었다. 쓸데없는 욕심이나 반연(攀緣)일랑 다 내려놓고 이제는 부부가 염불에만 전념하라는 부처님의 뜻임을 확신했다. 이들 부부는 새벽부터 밤까지 염불만 했다. 식단도 채식으로 다 바꾸고 오신채도 철저히 금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동생도 염불을 시작했고, 직장암으로 고생하던 박 씨의 어머니도 하루 1만5000번씩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수행자가 됐다. 특히 박 씨는 저녁때가 되면 어머니와 함께 108염주를 목에 두르고 1~2시간씩 운동장을 돌며 큰 소리로 고성염불을 했다. 처음 부끄럽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경전의 말씀대로 자신이 부르는 ‘나무아미타불’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더 불연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이런 가운데 박 씨는 지난해 11월 가행정진을 위해 경주 미타사에서 100일 정진에 들어갔다. 한겨울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시작되는 정진, 정토업 닦아 아미타불 친견하기를 발원하며 새벽 3시부터 밤 9시까지 굶주린 아이가 어미에게 매달리듯 간곡하게 염불하고 또 했다. 그렇게 100일 정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꿈에서도 염불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색영롱한 무지개와 함께 붉은 기운이 퍼지더니 25분의 보살님들과 붉은 가사를 입은 아미타부처님이 나투신 게 아닌가. ‘아! 부처님, 거룩하고 거룩하셔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환희심 나누려 염불 홈피 개설

박 씨가 남편 추 씨와 함께 다음 카페에 연화세계(cafe.daum.net/yunhwasaegae)를 개설한 것도 이 때쯤이다. 소위 말하는 ‘컴맹’이지만 이렇게 좋은 정토세계를, 우리의 참 생명인 아미타부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쉬우면서도 수승한 염불의 세계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자신들이 써 내려가는 경전 말씀과 염불행자 및 큰스님들의 감로법문이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의 빛이 될 수 있기를 발원하며 오늘도 글자판을 힘차게 두드린다.

대구=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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