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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태고보우의 『태고화상어록』 중에서

기자명 법보신문

그대들 목숨이 호흡 간에 있는 줄 아는가

어떤 납자가 조주 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조주 스님은 ‘없다’고 대답하셨는데, 그 ‘없다’는 말은 마치 쇠에 대면 쇠가 금이 된다는 묘약과 같아 삼세 부처님네의 면목을 뒤집어 낸다. 그대들은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만일 믿을 수 없겠거든 그 큰 의심 밑에서 마치 만 길의 벼랑에서 떨어질 때처럼 몸과 마음을 모두 놓아버리고, 또 아주 죽은 사람처럼 아무 헤아림도 생각도 없이 어찌할까 하는 생각을 아주 버리고 다만 ‘없다’라는 화두만 들되, 언제 어디서건 화두를 목숨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의 눈과 화두를 한 곳에 매어두고 다만 정신이 분명하고 산뜻하여 자세히 참구하여야 한다. 비유하면 어린애가 어머니를 생각하고 주린 사람이 밥을 생각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을 생각하는 것과 같아서, 쉬려하여도 쉴 수 없고 생각하고 또 생각할지니라.

만일 이런 진실한 공을 쌓으면 곧 힘을 더는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니 그것은 바로 힘을 얻는 곳으로서 화두가 저절로 성숙하여 한 덩어리가 되어 몸과 마음이 단박 비어 움직이지 않고 마음의 가는 곳이 없어질 것이다. 부디 털끝만큼도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네 면목이 어떤 것인가’ 또 조주 스님이 ‘없다’고 말한 뜻은 무엇인가. 잘 돌아보아 이 말에서 무명을 쳐부수면 물을 마시는 사람이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다. 그래도 깨치지 못하거든 다시 정묘한 기운을 더해 다만 화두를 끊어지지 않게 하되 의심이 있고 없음과 재미가 있고 없음을 생각하지 말고, 바로 큰 의심으로 화두를 들어 오로지 잊지 않고 항상 맞서야 할 것이니 다닐 때에도 그저 그러하고 앉았을 때에도 그저 그러하며 죽을 먹거나 밥을 먹을 때에도 그저 그러하고 남과 이야기할 때에도 그저 그러하며 일체의 행위와 동작에 있어서 다 그러하면 성취하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그대들은 지·수·화·풍 사대로 된 더러운 몸이 찰나 찰나로 쇠해 감을 아는가. 그대들의 목숨이 호흡 사이에 있고 부처님과 조사님네의 세상에 나오심을 만났으며, 이 세상에 나와 위없는 가르침을 들은 줄을 아는가.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는 사이에도 화두를 점검하되 24시간 동안 간단이 없는가.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시비를 일삼지 않는가. 남의 허물을 보거나 남의 잘못을 말하지 않는가. 언제나 노력하여 나아가는가. 좋은 시절이 이르렀을 때에도 자기를 돌이켜보는가. 이 생에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는가. 일어서거나 앉아서 편할 때에도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런 것이 참선하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니 진실로 참선하는 이들은 모름지기 이렇게 공부해야 할 것이다.


태고보우는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 스님은 고려말 고승으로 19세부터 ‘만법귀일(萬法歸一)’ 화두를 혼자서 참구했고 26세에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했다. 그 뒤 불경을 열람하면서 깊이 연구하였으나, 불경의 연구가 수단일 뿐, 진정한 수행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참선에 몰두했다. 1333년 가을 성서 감로암에서 죽기를 결심하고 7일 동안 정진하다 홀연히 깨친바가 있었다. 이후 후학들을 지도하다 1347년 7월에 중국 석옥청공선사를 만나 깨달음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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