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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사·진흥원 ‘제 1회 청소년 명상캠프’ 현장

기자명 법보신문

아! 종이 한 장에도 우주가 담겨 있었구나

7월 21일 오후 3시 괴산 다보수련원. 가마솥더위에도 50여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학부모들이 모여들었다. 학교와 학원으로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쳇바퀴 같은 일상의 틀을 벗어나 고요한 산사에 머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것. 서울 불광사와 대한불교진흥원이 7월 21일부터 24일까지 실시한 ‘부모와 함께 하는 제1회 청소년 명상캠프’는 여러 면에서 독특했다. 어른들의 수련회마냥 원리원칙의 사찰 생활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들 흥미에 부합해 그저 놀고 즐기는 수련회도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다. 지금, 여기에 관심을 가진다.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적극 경청한다.…’

몇 가지 규율에서 나타나듯 이번 수련회는 철저히 자신의 감정과 그 뿌리를 보도록 하고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심성을 갖도록 하는데 맞춰져 있었다. 그 3박4일의 수련회를 따라가 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시간이다. 수행지도교사는 먼저 생명의 역사가 35억년이 되었고 지금 앉아 있는 사람들은 10달 동안 뱃속에서 성장해 오늘에 이르렀음을 일러준다. 10명씩 조를 이룬 뒤 한 사람이 ‘당신은 누구십니까’를 질문하고 나머지 9명이 돌아가며 대답한다. 그렇게 질문이 모두 끝나면 다시 두 사람씩 마주 앉아 질문한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것이 진짜 당신입니까?’를 다시 반복해서 묻는다. 정답은 없다. 다만 ‘아하! 바로 이게 나구나’라는 탄성이 나오면 바로 정답이다. 익숙한 것에 대한 생경함. 반복되는 질문에 아이들은 때때로 말문이 막히기도 일쑤였지만 자기가 누구인지를 마치 화두처럼 간직했다.

#관계명상
종이 한 장이 각각의 손에 쥐어진다. 이 종이가 어디에서 와서 내 손에 있는 걸까. 나무, 물, 햇빛, 바람, 나무를 자르는 사람, 이를 가공하고 파는 사람 등 자연의 모든 존재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여기에 이른 것이다. 매일 보고 만지는 종이 한 장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각각 종이에 대해 명상하며 먼저 관련된 단어 9개를 적는다. 또 각각의 조에서 10명이 적어낸 단어들 가운데 중요한 개념을 아홉 개를 찾아 설명하고, 그 개념을 팀별로 그림과 노래로 표현한다. 이 명상은 자연스럽게 깊은 사유로 이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내가 이 땅에 태어나는데는 그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했을까. 부모의 육체를 빌려 피를 받고 살을 받아 이 땅에 났다. 그리고 가족과 이웃의 사랑과 배려로 먹고 움직이지 않았던가. 삼라만상이 모두 나의 은인이다.

#목탁·절명상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창조할 줄 아는 존재. 스스로 창조자인 자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준다. ‘어린왕자’ ‘샘물펑펑’ ‘해바라기’ ‘편안함’ ‘자유인’ ‘행복보살’ ‘해피 맘’ 등등. 태양이나 비바람이 아무런 조건 없이 만물에 흩뿌리듯 인간의 참다운 덕목도 사랑, 감사, 거줘 줌 등이다. 이에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관세음보살을 정성껏 염하며 발원한다. 아이들이 두드리는 목탁소리가 한여름 밤 논두렁에서 노래하는 개구리들의 합창 같다.

이어 내가 그동안 얼마만큼 내 판단에서 모든 사람들을 판단하고 미워했던가. 미워했던 분들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참회의 절과 감사의 절을 올린다.

#유서 쓰기
이제 잠시 후면 죽는다. 갑작스런 죽음 앞에 무엇을 할 것인가. 장사익 씨의 ‘하늘가는 길’이란 노래가 비장하게 흐른다. 모두들 남기고 싶은 글을 쓴다. 연신 눈물을 닦아내는 어른들도 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엄마, 그동안 말 안 듣고 놀기만 해서 죄송해요.’ ‘동생아, 그동안 내가 너를 너무 괴롭혔던 것 같애. 정말 미안해.’ 등등 회한과 아쉬움이 유서 속에 담겨있다. 서로서로 손을 잡으며 상대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삶을 다짐한다. 깊어가는 밤, 멀리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살갑다.

#사물 긍정적으로 보기
핸드폰을 하나 꺼낸다. 그 핸드폰의 좋은 점들을 하나씩 이야기한다. ‘디자인이 보기 좋다’ ‘기능이 다양해서 좋다’에서부터 ‘멀리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고맙다’ ‘많은 사람들의 주소를 기록할 수 있어서 고맙다’ 등. 다음에는 자기의 좋은 점 50가지를 꼼꼼히 적어본다. ‘코가 이쁘다’ ‘착하다’ ‘축구를 잘한다’…. 자연에 대한 감사는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과 감사로 이어진다.

#불꽃 명상
“행복해지고 싶다면 목표를 세우세요. ‘뭐가 되고 싶다’고 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 나는 어땠고 몇 년 뒤 나는 뭐가 되기 위해 지금부터 하루에 몇 시간 무엇을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목표가 이루어집니다.” 김남선 수행지도교사의 말이다.

모두들 풍선을 받아든 뒤 그것이 터질 정도로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런 뒤 자신의 소원을 각자 적어 넣는다. 또 서운했거나 괴로웠던 일들도 하나씩 쓴다. 절 아래 공터에는 커다란 불꽃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아이들은 그 불꽃에 풍선을 던져 넣으며 근심은 사라지고 목표를 이뤄지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한다.

#세상 속으로
한예연(언주초 6)=“언니가 여기가면 마음도 비울 수 있고 정말 좋다고 해서 왔습니다. 갈 때가 되니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권세익(목동중1)=“처음에는 채식만 하는 것도 싫었고 이상한 벌레들이 많아 싫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벌레가 별로 무섭지 않고 친근감이 생겼어요.”
정길숙(학부모)=“유서를 쓰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죽는다니 소중한 게 무엇인지 돌아보게 됐고 그저 부끄러움만 앞섰습니다. ”

4일간의 수련 생활. 집에 돌아간다는 생각에 아이 어른할 것 없이 하나 같이 밝은 표정이다. 버스에 모두 오르자 기사는 차를 몰아 굽이진 언덕배기로 멀어져 갔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 기다릴지라도 ‘나’를 찾으려 했던 이 아이들은 마음과 몸을 돛대 삼아 삶의 쪽배를 힘차게 저어가리라.
괴산=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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