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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교도가 된 한국인

기자명 공종원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에 따라 우리 국민 가운데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현저히 늘어났다. 특히 한국팀이 숙원이던 월드컵 1승에 이어 8강을 이루자 국민의 축구열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전국 주요도시의 그럴사한 광장이나 운동장은 틀림없이 우리 축구팀을 응원하는 자발적인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만원을 이루고 이들의 응원구호와 함성은 그러지않아도 무더운 여름밤을 뜨겁게 달구곤한다. 우리 축구팀이 대전에서 이탈리아팀과 맞붙은 18일밤은 특히나 그랬다.

축구 경기를 보며 이렇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온 국민이 지속적으로 일치 단결해 열광하고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응원한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그런 응원을 통해 대부분의 우리국민이 이토록 한마음이 되어 즐거워한 적이 별로 없었다는 소리도 들린다. 오죽이나 기쁨에 목말라 있고 좋은 일에 굶주렸으면 이렇게 축구를 통해 온 국민이 희열을 느끼고 열광하게되었는지 우리를 되짚어보는 이들도 있다.

따지고 보면 지난날 우리의 국가발전이 눈부셨던 것이 사실이고 보릿고개 때마다 굶어죽는 국민이 부지기수였던 시절을 극복한 우리의 장한 업적에 스스로 만족했던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랜 군사독재의 질곡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게된 것도 우리 국민의 위대한 업적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발전의 신화 속에서 자만하던 우리는 IMF 구제금융이라는 국가파산사태에 직면해야했고 민주화를 이뤘다고 으스대던 사이에 언론장악 획책세력의 준동에 홀려 전대미문의 언론위축과 자기 분렬의 수렁에 빠져야했으며 정권의 오만 독주속에 대통령아들들의 비리를 목격해야했고 진보와 개혁을 가장한 극좌파세력의 정권장악 음모라는 위기 속에 국가안보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했던 것이다.

그런 시기에 치러지는 월드컵은 자칫 국민을 우매한 대중으로 몰아갈 위험이 있었다. 독재정권이 흔히 사용하던 스포츠, 스크린, 섹스의 3S조장 정책으로 이번에도 국민의 이성이 마비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월드컵을 통해 한층 성숙한 정치의식을 보이고 문화의식을 온세계에 보여 주었다. 붉은 악마의 거리응원이 질서정연하게 또 열정적으로 치뤄졌을 때 세계인은 한국인의 문화수준에 경악했고, 그 와중에서 치뤄진 지방선거도 추호의 혼란없이 치뤄져 당당한 민주시민의 주권의식과 부정부패청산 의지가 표출된 전례없는 여당참패 기록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 때문에 나는 이번 월드컵이 한국인의 축구이해와 사랑만을 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의식과 정치의식을 함께 키워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축구는 원래 유럽인과 남미사람들의 스포츠였다. 그리고 그들이 축구 때문에 미치고 축구 때문에 전쟁을 할 정도로 축구를 사랑하고 즐긴다고 할 때 우리는 이 축구의 광풍이 우리를 전염시키지 말기를 은근히 원했다. 그래서 정몽준 의원이 일본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월드컵 일본유치를 깨고 공동개최를 성사시켰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돈도 없는 우리의 지나친 욕심이며 도박이라고 비아냥댔다.

하지만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만이 아니라 엄청난 수익을 낳는 스포츠 산업이란 것을 이제는 우리도 조금씩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축구교 신도입니다”라고 말하는 체육학과 교수의 말이 밉지만은 않게도 됐다. 한국팀이 승승장구하면서 우리 국민가운데 축구교 신도들은 많이 늘었다. 그렇다고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문화의식과 정치의식이 튼실하다면 축구는 우리 국민을 살 맛나게 하는 활력소가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공종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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